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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07. 2022

여름에 뭐해?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몽글몽글 맺히는 걸 보니 이제 여름인 줄 알겠다.  

내가 보낸 많은 여름 중에 아무런 꺼림도 없이 일주일 동안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지냈던 여름이 생각이 난다. 일주일 후에 집에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봤을 때 내 피부는 돼지 족발의 그것과 견주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변색되어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희열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려 시크하게 웃음 지었다. 그러다 피부가 벗겨지고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나는 여름이 좋았다. 그래서 ‘여름’이란 말을 들으면 ‘열정’이나 ‘젊음’, ‘자유’ 같은 단어들이 생각난다. 이것저것 재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계절에 뛰어들어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여름마다 젊음이 내게 부여해 준 특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준비할 것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주일은 고사하고 잠깐 해수욕장에 가더라도 준비할 게 많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도 써야 하고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도 자주 발라줘야 한다. 아니면 화상을 입어 피부과를 가야 하니까. 무엇보다 하던 일도 조정해야 하고 가족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때처럼 일주일씩이나 인파로 북적대는 해변에서 텐트 치고 지내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어느새 고요를 즐기는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가끔 차를 몰고 그때 젊음을 불태웠던 그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차를 주차하고 맨발로 햇볕에 뭉근하게 데워진 뽀송뽀송한 모래밭을 걷는다. 그러면서  하얀 파도의 포말 위에서 하릴없이 날개를 퍼덕이는 갈매기들과 파도타기에 여념이 없는 수많은 젊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숙한 젊음 속에 있는 나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해변을 걷다가 모래사장을 벗어나 수돗물에 발에 묻은 고운 모래 알갱이들을 씻어내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여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마음 편히 혼자만의 고요를 즐기면 된다. 이런 일을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피부를 조금도 그을리지 않고도 여전히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을 수 있다. 다음 여름을 기약하면서……  





        

칫솔질할 때 불편한 느낌이 들어 혀를 입천장에 갖다 대어 보았다. 피부가 헐었는지 따갑기까지 하다. 어제저녁까지 이상이 없었고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입천장이 가엾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차가운 얼음을 입안에 넣고 있을 생각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내 입천장에 상처를 안긴 물건이 생각났다. 범인은 바로 냉장고 속 쮸쮸바였다.  

    

나는 여름만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서 500원짜리 쮸쮸바 만 원어치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냉장고 속에서 쮸쮸바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고 책을 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내가 여름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다. 나는 다른 아이스크림보다 쮸쮸바를 더 좋아한다. 일단 입에 물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베어 물지 않고 오래도록 조금씩 단맛을 빨아먹는 것도 좋다. 어떨 때는 내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드는 것도 좋다.


하지만 올해는 만 원으로 지난해처럼 스무 개를 집어 들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100원씩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스크림은 400원에서 500원이 되었고 100원이 더 비쌌던 쮸쮸바는 500원에서 600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쮸쮸바 네 개를 잃었고 그만큼 안타깝다.          






새벽에 SNS 알림이 떴다. 직접 전시회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 그 뒤로 꾸준히 안부를 묻고 있는 작가님이 내 아이디를 연결해서 작품을 올렸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지은 ‘홍매화’라는 시에 아름다운 매화 그림이 조화를 이룬 시화 작품이었다. 요즘에는 예전처럼 자주 시를 짓고 있지 않아서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시를 짓고 다시 읽을 때마다 혼자 좋아서 웃곤 하였다. 그 생각이 다시 떠올라 작가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매화꽃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매실이 굵어져 어느새 수확까지 마무리되었지만 내 마음을 두고두고 흐뭇하게 할 작품을 선물 받은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여름에 자주 음료로 즐기는 것이 바로 매실청이다.

3일 전에 광양에 주문한 매실 10킬로그램이 도착해 매실청을 담갔다. 매실 꼭지 따는 것이 번거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설탕도 다 녹아서 그대로 3개월만 시원한 곳에 두면 맛있는 매실청이 완성될 것이다. 3개월 뒤에 매실을 건져 내야 독성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


매실청을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여름이면 얼음 하나 띄워 시원한 음료로 마실 수 있고 각종 반찬 만들 때 설탕 대신 넣으면 향도 좋고 감칠맛도 더해진다. 또한 매실은 천연 소화제라고 불릴 정도로 속이 더부룩하거나 소화가 안 될 때 시원하게 타 마시면 속이 한결 편안해진다. 더욱이 비타민이 풍부해서 피부도 매끈해진다고 하니 즐겨 마실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짙어질수록 의자에 오래 앉아있기가 불편하다. 금방 속옷까지 땀이 배어들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나무 구조물을 사용해서 선 채로 키보드를 칠 수 있도록 해두었다. 다리를 어깨만큼 벌리고 서서 쾌적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도 한결 쾌적하다.          



누가 나에게 ‘여름에 뭐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위와 같이 대답할 수 있겠다.

모두들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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