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보라

by 이광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혹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당연한 본능적 호기심이다. 먼저 책 속에서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책으로부터 얻어진 정보는 우리의 궁금증을 완전히 해갈하지 못한다. 활자화된 정보는 지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을 명쾌하게 설득시킬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근본적 호기심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깨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여전히 자신과 삶에 대해 궁금해하며 목말라한다. 이러한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시간적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스스로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으라는 손짓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면 사람의 근원적 호기심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자연을 보는 것이다.


때로는 자연을 멀리서 바라보고, 때로는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보라.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온 감각이 서서히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 자연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자연 속에서 왜 평화로운가? 태아가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도 자연과 보이지 않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고파 울던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듯 사람은 자연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연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손짓할 때 사람은 응답하고 곧이어 자연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탐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어떤 특성이 사람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이 자연을 겉만 보고 판단한다면 어떠한 변화도 알아차릴 수 없다. ‘아름답다. 시원하다. 멋지다.’ 이런 느낌이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자연을 좀 더 예민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풀, 꽃, 나무 등의 식물부터 개미를 포함한 다양한 곤충, 조류, 갖가지 동물, 그리고 흙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은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고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은 엄청나게 놀라운 창조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신비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장소이다.


사람은 창조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연 속에서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알아차릴 때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은 사람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사람이 자신을 들여다보면 쉽게 자신 또한 창조의 한가운데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자신이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임을 알게 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르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자연 앞에 서는 것은 바로 자신이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찾는 행위다. 살다가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퍽퍽하게 느껴진다거나, 삶에 의문이 들 때 자연을 보라.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평화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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