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즐거움

by 이광

운 좋게도 나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탁 트인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뒤로는 멋진 산책로가 있고 일 년 내내 푸름을 품은 산도 있다. 산 중턱에는 거대한 바위가 산에 박혀 있는데 설악산의 어느 봉우리가 생각날 정도로 근사하다. 이런 곳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이 궁금해져서 산을 빙 둘러 나있는 산책로를 걷고 바다가 궁금해져서 바다를 따라 나있는 산책로를 걷는다. 주말에 산에 올라 둘레길을 걷곤 하는데 두 시간 삼십 분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 산길을 걸으면서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그 점 때문에 나는 참 호사스럽게 산책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걷다 보면 이마에 땀방울이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하고 조금 있으면 그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등도 흥건하게 젖는다. 그때 잠시 앉아서 저 멀리 해안선이 만들어낸 절경과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질 때 계곡을 따라 불어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은 금세 땀을 식혀 버린다. 그때 집에서 얼려간 얼음물을 들이켜면 속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끝까지 냉기가 전해진다. 산길은 평평하지 않고 오르막이 있으면 여지없이 내리막이 있고 흙길이 나오기도 하고 자갈이 깔린 길이 나오기도 하고 거친 돌들이 박힌 길이 나오기도 한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삼분의 이는 앞을 보고 가고 삼분의 일은 뒤를 보며 간다. 오르막길이지만 직선으로 잘 다져진 길이라 안전하다. 같은 곳이라도 앞을 향해 걸으면서 보는 경치와 뒤로 걸으며 보는 경치는 아주 다르다.


앞을 향해 걸을 때는 앞에 펼쳐진 경치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역동성을 느낀다. 하지만 뒤로 걸으면서 보는 경치는 나에게서 멀어지기 때문에 이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겸손해진다. 매 순간 시간과 장소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을 잠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래도 가끔 뒤를 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느끼게 될 아쉬움을 줄여 주리라 믿는다.


산책로를 걸을 때 좋은 점이 거의 대부분 그늘이 있다는 것이다. 나무가 없고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는 그늘이 있는 대신에 전망대가 있다. 경치를 전망하기 딱 좋은 곳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외항에 정박하고 있는 커다란 배들도 그곳에서는 레고로 만들어 놓은 장난감처럼 작게 보인다. 그곳에서 조그마한 어선이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역동적으로 내항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달력 사진으로 딱 어울리는 멋진 광경으로 참으로 볼만하다. 두 시간 삼십 분 동안 둘레길을 걸어 처음 시작한 곳에 이르면 그곳에서 벤치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시작점에 웬 벤치가 있는지 궁금할 수 있지만 둘레길을 돌고 난 후에 다시 그 자리에서 서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머리는 상쾌하지만 허벅지는 묵직하고 다리에 힘이 풀릴 때라서 벤치에 자동으로 앉아 쉬어갈 수밖에 없다. 벤치에 앉아 남아 있는 물을 마저 마시며 땀도 식히고 무거워진 다리도 풀어준다. 산길을 걷을 때면 자연의 생명력이 고스란히 내게 와닿는다. 평온함과 상쾌함은 자연을 가까이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다. 그다음 날이면 두 다리는 더욱 단단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종아리와 허벅지에 뻐근함이 묻어있다. 하지만 그 뻐근함이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뻐근함이요, 어제의 나를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뻐근함이다.


명상을 할 때는 보통 조용한 방에 들어앉아 명상을 한다. 하지만 방 밖으로 나가 산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걷기 자체가 명상이 되기 때문이다.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다독여 바르게 삶에 정진하도록 하는데 명상의 목적이 있다. 산길을 걸으며 그 목적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 방 안에서 하는 명상은 정적이라면 산길을 걸으며 하는 명상은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다. 산속을 걸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동네 골목길을 걷는 것도 명상하기에 좋다. 다소 도시 내음과 소음은 있겠지만 도시인다운 산책이 될 것이다. 걸을 때는 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산책이나 명상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그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면서 느끼면 된다. 들리는 대로 그대로 들으면 된다. 주위를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인의 명상법이다. 하지만 주위에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면 그곳이 걸으며 명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그러니 방 밖으로 나가 걷기로 하자. 걸을수록 우리의 삶은 새로워질 것이고, 걸을수록 우리의 삶은 맑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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