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잠시 물러나고 마치 선선한 가을 속의 어느 날이라는 생각이 드는 휴일이다. 아이스커피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베란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름이 되면서 베란다에 의자를 놓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책을 읽고, 밤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별과 나무와 억새의 여유로움이 내게도 스며들어, 생활 속 단순함이 주는 행복을 발견하면서, 한껏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한 충만함으로 신과 조우하고 이 길에서 나에게 주어진 몫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을 보내고 침실로 돌아와 잠을 청하면 잠이 그리도 달콤할 수가 없다.
휴일이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우산은 오늘따라 유난히 화사하다. 한동안 내 시선은 화사한 우산들을 따라서 모퉁이를 돌아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오늘처럼 시원한 날엔 우산을 쓰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싶어졌다. 도중에 비를 피해 차 밑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들을 보게 되면 ‘야옹’ 소리 내주며 아는 척을 하면서. 길가에 비에 젖어 한결 싱그러워져 있을 풀들도 눈에 담으면서. 그들도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온몸으로 막아내느라 수고했을 테다. 촉촉한 빗방울을 머금고 있을 풀잎들에게 마음은 미리 가고 있다.
청소가 마음을 맑게 해 준다는 말이 요즘처럼 마음에 와닿은 적이 없었다. 방을 청소하는 것, 특히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책들의 먼지를 털고 닦는 것은 어쩌면 명상에 가깝다. 탑처럼 쌓인 책들과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집어 들고 천으로 먼지를 닦아낸다. 그런 다음 책을 넘겨 가며 내가 남겨놓은 메모나 밑줄 친 부분을 읽어 본다.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는 것이 지금은 새롭고 흥미롭다. 꺼져버린 촛불을 다시 켜듯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감정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다. 이제 새로 출간된 책을 구입하는 일은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이제는 새 책이 놓일 자리가 없다. 대신에 집에 있는 책들을 이렇게 먼지를 닦아내면서 한 권씩 꺼내어 다시 읽고 있다. 또 가까운 곳에 크고 시설 좋은 도서관이 있는데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곧장 달려가서 읽을 수 있다. 이 또한 참 감사할 일이다.
어제 책장의 먼지를 닦아내면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을 골랐다. 그 책을 읽다가 어느 한 표현이 나에게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저 존재하는 것과 생존하는 것의 차이’라는 표현이다. 살아간다고 다 같은 삶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존재하기에 살아가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생존하려는 삶을 살아가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저 살아가는 삶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적극적으로 생존하려는 삶은 인생의 목적을 갖고 최고의 삶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말한다. 적극적인 삶은 어떤 고난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불평하기보다는 책임지려 하는 삶이다. 또한 인생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의를 갖고 늘 배움을 실천하고 즐기며, 자신을 발전시킴으로써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삶이다. 의미 있는 삶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경험하고 알아가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에 나만의 답을 써 내려가 본다.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는 것이니까. 이처럼 책은 나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해 준다. 조금 더해진 풍성함을 품고 산책을 나가기 위해 우산을 집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