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by 이광

늦은 밤이면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향초를 한 시간 정도 피워둔다. 방 안에 있을 때는 향기에 대해 무디나 밖에 있다가 방에 들어올 때면 확연히 라벤더 향이 코끝에 스미는 것을 느낀다. 잠시 눈을 감으면 마치 사방이 온통 라벤더 천지인 농원에 와 있는 듯하다. 대단지 라벤더 농원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 풍경이 어찌 보면 보라색 구름 위 같기도 하고 보랏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때 한 번 다녀오고 싶은 곳이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온전히 그곳을 즐기지 못하고 마치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둘러 한 바퀴 돌고 나와야 할 것 같아서이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보성 녹차 밭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른 아침이면 산에서 안개가 내려와 미세한 물방울을 머금고 차 밭을 둘러싼 연륜이 상당해 보이는 나무들 사이에 머무는데 이 또한 장관이었다. 때마침 사진을 찍어서 다행히 지금도 가끔 사진 속에서 그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날 차 밭에서 푸름이 무엇인지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푸름도 하나의 푸름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 짙은 푸름에서 옅은 푸름에 이르기까지 한데 어우러져 그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 흰 구름과 푸른 하늘은 배경으로써 믿음직스럽게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녹차를 마실 때면 녹차 향은 여지없이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곤 한다.



언젠가는 한동안 특정 브랜드의 향수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 향수를 맡으면 왠지 남태평양의 한적한 섬에서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서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차가운 물에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낸 후에 그 향수를 살짝 뿌리면 순식간에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휴양지로 옮겨가 흥겨운 음악에 몸을 맡긴 채로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비록 상상이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향기는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향수를 구입하지는 않지만 그 향수병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끔 먼지를 닦아내면서 향수를 맡아보기도 한다. 이처럼 좋은 향기는 사람을 추억의 장소로 데려가 잠시나마 그곳에 머물게 하여 그 추억을 더욱더 공고히 한다.



초를 불어 끄고 자리에 누우니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온몸에 스민다. 오늘 밤엔 꿈이라도 꾸기를 바란다. 좋은 향기 맡으며 꾸는 꿈도 향기로울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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