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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May 15. 2022

선생님에 대한 추억

중학교 2학년 때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과학을 담당하고 계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해서 잘 가지도 않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습관도 생겼다. 우리 팀 실험보고서 작성할 때도 관심 없는 팀원들을 대신해서 혼자 잠도 잊은 채 보고서 작성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셨는지 선생님은 내 실험보고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선생님께서 칭찬을 하시는 날이면 일 년 365일 과학 수업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칭찬만 잘하시는 것이 아니라 체벌도 주저하지 않으셨다. 두꺼운 플라스틱 30센티미터 자를 들고 다니시며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 또는 수업시간에 떠든 학생들의 손등을 가차 없이 내리치셨다. 요즘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때 나로서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체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학생들을 일깨워주기 위한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선생님의 자를 맞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신경 썼던 것이 사실이다. 수학 숙제와 과학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사정이 생겨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을 때는 당연히 수학 숙제를 포기하고 과학 숙제에 열과 성을 다할 정도였다. 그때 나의 장래 희망이 과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을 만큼 선생님의 영향은 매우 컸다. 그렇다 보니 과학 성적이 다른 과목 성적에 비해 월등히 좋게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나의 이런 소중했던 시간들을 망쳐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반에서 나는 40번이었고 41번은 최00이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육성회장이었고 학교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했다. 41번 최00은 아버지 덕택에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나와 최00은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나는 그의 부모님의 초대를 받아 이따금씩 그의 집에서 밥을 먹곤 했다. 그의 부모님은 신앙심도 깊었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하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최00은 학교 공부에는 담을 쌓고 무협지나 성인만화에만 관심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합기도를 해와서 인지 주먹질과 발차기가 특기였고 고등학생들과 싸움을 해도 지지 않아 '무림의 고수'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그가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부모의 압력 때문인지 갑자기 성적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른바 커닝(Cheating)이라고 하는 부정행위를 안 들키고 할 것인지에 몰두했다. 전교 꼴등에 가까운 그는 주위에 앉은 학생 누구의 답안지를 베끼더라도 성적이 오를 거라는 판단을 하고 부정행위를 감행했다. 물론 주위에 앉은 학생들이 답안지를 순순히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험 시간에 감독 선생님의 움직임만 파악하고 있다가 재빨리 옆에 있는 학생들의 답안지를 베꼈다.  


그런데 과학 시험을 치면서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옆에 있는 학생들이 서술형 답을 쓰는 게 더디자 먼저 답안을 작성한 내 답안지를 아예 들고 가서 베끼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그대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감독 선생님은 최00이 부정행위를 한 것을 눈치챘지만 그냥 넘어갔다.


며칠 뒤 과학 시간이 끝날 즈음 과학 선생님은 나와 최00을 부르셨다. 그 이유는 최00이 내가 작성한 실험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베껴 썼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게 되었다. 과학 선생님은 현장에서 부정행위를 적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지만 이어진 선생님의 말씀은 비수가 되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네가 그럴 줄을 몰랐다. 실망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 일에 대해 변명이나 설명할 기회마저 주지 않고 미리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냉혹한 표정을 바라보며 차마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껏 소중하게 쌓아 올렸던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과학 시간이 되면 앉아만 있을 뿐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보면 지난번 선생님의 차가운 표정이 떠올라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41번 최00은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얼마 있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전학가야 했다. 나도 3학년이 되면서 그 선생님과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과학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에서 무감한 과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그때가 가장 아쉽고 속상하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선생님이 자초지종을 듣지도 않고 '이제는 너에 대한 신뢰를 거둬드리겠어.'라고 말하는 듯한 차가운 표정은 두고두고 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지금까지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들을 회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중2 때 과학 선생님이 떠오를 때면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아마도 그때 내가 그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워낙 컸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선생님이란 직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요즘에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더 귀담아듣는 분위기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학교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더 나은 교수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수업 준비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https://youtu.be/z36965M9c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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