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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May 13. 2022

익명의 대화

"엉덩이 주사예요. "라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는 커튼을 치고 나갔다. 엉덩이에 주사 맞을 테니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아, 네."


나는 바지 단추를 풀고 오른쪽 엉덩이를 살짝 내리며 침대에 누우려던 순간 망설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오른쪽 엉덩이에 주사를 맞을 참인데 침대 머리 쪽과 왼쪽면이 벽에 붙어있었고 아래쪽은 캐비닛이 놓여 있어서 눕기도 뭐하고 서 있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오른쪽 엉덩이를 살짝 내리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왼쪽으로 엎드린 자세는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불편한 포즈였다.

그래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일어나 자세를 반대로 해볼까 하던 참에 간호사가 커튼을 열고 들어왔다.  

'그래, 잠깐인데 불편해도 눈 딱 감고 있자.'

주삿바늘이 언제 들어오려나 생각하고 있는 틈에 간호사로부터 '다 됐습니다'란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자세로 말없이 엎드려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를 배려하는 말을 건넸다.

"이 주사는 좀 아파요."

환자를 생각해서 미리 예고까지 해주고 간호사가 참 친절도 하다.  나는 간호사가 예고한 대로 아픈 주사를 맞을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다. 그 불편한 자세를 하고서도.  

'설마 아프다고 하더라도 백신 접종 때만큼은 아니겠지. 또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겠어.'

내가 간호사의 말에 응답도 하기도 전에 주삿바늘이 내 둔부를 뚫고 깊숙이 들어와 꽂혔다. 간호사의 말대로 통증이 약간 느껴졌긴 했지만 그렇게 아프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은 아마도 간호사가 미리 아플 거라고 알려준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는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커튼을 치고 나갔다.  

"고맙습니다."  

나는 커튼 건너편에 있는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일어나 옷을 추슬러 입었다.


그러면서 다른 환자들은 엉덩이 주사를 맞을 때 어떻게 맞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지금껏 다녔던 병원 주사실은 침대에 엎드려서 주사를 맞았던 반면 오늘  병원에서는 주사실 침대 배치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엎드리기엔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엉덩이 주사를 서서 맞는다는 말은 아직 못 들어 본 것 같다. '엉덩이 주사는 이런 자세로 맞아야 된다'라고 정해진 법은 없겠지만 주사 맞는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자세로 맞아야 된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니면 서서 엉덩이 주사를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엉덩이 주사 맞는 자세'를  검색해 보았다.

 

'측위로 누워 무릎을 구부리며 아래쪽 다리보다 위쪽 다리를 더 구부린다.' 이 자세가 가장 이완된 자세라는 설명이 나와있었다.

'그래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세로 주사를 맞아야겠지.'

그런데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아래에 수북이 쌓인 질문댓글이었다.

나처럼 엉덩이 주사를 맞는 자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일단 웃고 또 진지한 댓글들 때문에 또 한 번 웃었다.


어느 질문은 '침대에 눕기 전에 바지와 속옷을 내려야 하는지, 아니면 침대에 누운 다음에 바지와 속옷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참 나.)

그 질문에 이어 '어떻게 해도 자세가 이상하지 않나? ㅠㅠㅠ 수치스럽 ㅠㅠㅠ 내일 또 가야 하는데. 익들(익명)은 어떻게 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글의 제목은 '엉덩이 주사의 자세에 대한 고민'이었다. (뭐 고민씩이나.)

 

익인 1은 '제목이 무슨 일본 애니 제목 같아.'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익인 2가 '누워서 까나 까고 누우나 똑같지 않아?'라는 댓글을 달았다.

곧이어 익인 3은 '댓글이 더 웃긴다.'라고 했다.  

더 웃긴 건 글쓴이의 반응이었다.  

'웃지 마! 나는 진지해. 익(익명)은 어떻게 해?'  

이어서 익인 4가 단 댓글은 '미안 나 사실 엉덩이 주사 안 맞아 봤어.'였다.  

그러자 글쓴이는 "어우 그럴 리가 ㅠㅠㅠ"라고 댓글을 달았다.  

어느 댓글에는 '그럼 서서 맞아봐요.'라는 글도 있었다.


나는 주사실 공간이 협소해서 그럴 때 엉덩이 주사 맞는 다른 자세가 있는지 궁금해서 그냥 한 번 검색해 본 건데 예상과 다르게 올라온 내용이 자못 진지해서 한참 동안 웃고 말았다.


장염과 심한 두통 때문에 며칠간 몹시 앓았다. 하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검색한 글을 읽다가 웃고 나니 두통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나는 비로소 해방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누군가는 저렇게 진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설령 내가 관심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가치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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