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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May 11. 2022

나만의 멍 때리기와 녹색 힐링

 나는 습관적으로 베란다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저 먼 앞산과 뒷산이 겹치는 음영을 바라보며 ‘넋 놓고 있기’, 일명 ‘멍 때리기’를 즐긴다. 될 수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롯이 음영 부분만 바라본다. 점차 몸의 근육은 이완되고 점점 나른해진다.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뿐이다. 희한하게도 이렇게 있다 보면 넝쿨처럼 뒤엉켜있는 잡다한 생각들이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 같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나는 가끔 이렇게 햇빛을 쐬면서 마치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생각 그릇을 비운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 보면 답도 없는 생각들을 말끔히 없앨 수 있다. 멍 때리기 할 때는 시선을 여기저기가 아닌 한 곳에 붙잡아 두는 것이 좋다. 그곳이 번잡스럽지 않은 곳이어야 하는데, 경험상 산등성이의 한 점, 수평선의 한 점, 건물 꼭대기의 한 점 등이 좋다. 한참 동안 이런 시간을 갖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생활이 생기 있어진다. 누워서 잠을 자는 것보다 훨씬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시선을 거두고 화초에 물을 주었다. 어머니께서 파프리카 씨앗을 모았다가 빈 화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심으셨다. 햇볕이 잘 드는 쪽으로 화분을 옮겨 놓고 화분에 물을 충분히 주며 잘 보살피셨다. 그러자 흙에서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왔고 며칠이 지난 지금은 고추 모종처럼 수북하게 자랐다. 예전에는 여름철이면 베란다에 고추 모종 3포기를 사다가 심으셨다. 셋 중에 하나는 도중에 시들어 버렸지만 두 포기는 잘 자라서 고추가 열려 식사 때마다 몇 개씩 따 먹는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어머니께서 고추 모종을 심지 않으셨다.      


언젠가 허브를 종류별로 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길렀는데 얼마간은 잘 자라다가 해무를 몇 번 맞고 나서 죽어버렸다. 그때 어머니는 몹시 속상해하셨다. 그 뒤로는 고추 모종도 다른 식물도 심지 않으셨다. 있는 식물이나 죽이지 않고 잘 기르자고 하셨다. 그런데 파프리카 씨앗을 심으셔서 싹이 올라오고 잎이 나는 것을 보시며 아주 흡족해하신다. 부디 무럭무럭 자라서 파프리카가 열린 모습을 꼭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처럼 비록 조그맣고 여린 식물이지만 사람에게 적지 않은 기쁨을 준다. 식물은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능력이 있다. 일상에서 녹색 식물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평화로워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에서 답을 찾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집 인근에 산행하기 딱 좋은 산이 있다. 지나가다 보면 아침이고 낮이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산에 오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산에 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순히 삶이 여유로운 사람들의 취미일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번아웃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향하게 된 곳이 바로 산이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누가 가자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이 먼저 산으로 향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산길을 오르다 보면 먼저 숨 쉬는 것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스르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지더라도 기분은 오히려 상쾌해졌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새롭게 깨어나는 기분이 들어 시간이 갈수록 삶이 나에게 주는 특권을 호사스럽게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틈만 나면 산에 오르면서 살아있음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새 옷으로 갈아입는 느낌이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삶의 의미를 새롭게 선물해주었듯이 부디 그들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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