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by 이광

주말이면 KBS TV에서 방영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몇 안 되는 장수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보고 있는 시청자가 TV 속 현지를 실제로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데 있다. 또 다른 매력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로그램 담당 피디 혼자서 해외로 떠나 촬영해온다는 것이다. 물론 편집이나 내레이션, 자막, 음악 등의 작업은 방송국에서 진행하겠지만 담당 피디 혼자서 여행 배낭을 메고 현지에서 코디의 도움을 받으며 촬영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면서 더욱 애정이 생겼다. 저 장면을 어떻게 혼자서 찍었을까, 드론 촬영은 아마 이렇게 했을 것 같다 등등 머릿속으로 피디가 촬영하는 모습을 그려보며 시청하는 것은 적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나에게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제약을 받는 시기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시청함으로써 TV로나마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 충족에 약간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은 방송국에서도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재방송을 내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코로나 이전에 다녀왔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여행을 추억하는 일이란 그때마다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되고 만다.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밥 먹을 때도 공부한답시고 책을 들고 있고, 꼭 일 못하는 것들이 놀러 가서까지 일을 붙잡고 있다.’ 이것은 나 스스로를 힐책하는 말이다. 회사 일이든 뭐든 자신이 없이는 안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뭐든지 직접 자기 손으로 마무리해야 비로소 안심하는,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었다. 더군다나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까지 가서도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일 생각만 했던 때가 있었다. 몸은 밖에 있지만 정신은 회사에 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가 한없이 애잔하기도 하다. 그때는 휴식보다도 일을 더 좋아했고 그로 인해 바쁜 생활을 나름 즐기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에 도취되었는지도 모른다. 주위에서 보내는 신뢰의 제스처가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족쇄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순진하게도 넙죽넙죽 받아 가며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여하튼 해외에 나갈 때마다 온전히 그곳에 몰두하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했던 그때가 몹시 후회스럽다. 가끔 컴퓨터에 저장된 여행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사진 속의 내가 가엾다.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때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그곳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었는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내가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때의 내가 무척 안쓰럽다.

다행히 그로부터 머지않아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한 이후로 깨달음이 있어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물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후회할 거리를 만들어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며 살지 않도록 하자.

영화‘어바웃 타임’에서처럼 단 한 번으로도 충만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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