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으면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

포기하면 더욱 풍성해지는 인간관계

by 이광

타인에게 싫은 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나면 나는 몹시 괴롭다. 그래서 중간에서 내가 총알받이가 되기도 했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하고 살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싫으면 싫다고 말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내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결국 서로를 위하는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직장 동료가 갑자기 전화해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일단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무슨 일일까? 얼굴을 보고 싶어 만나자고 할 사이가 아님은 분명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7천 명을 넘은 날, 그것도 밤 8시에 만나 커피를 마시자는 건 어떤 의도가 있어서가 분명하다. 순간 내 마음이 씁쓸했다. 어떤 의도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이라면 좋으련만 직장에서 만난 사이는 퇴사하면 연결된 끈이 얇아지게 되고 결국 끊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이라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간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몇 년 전에 또 다른 동료와의 일이 생각났다. 서로 같은 사업을 하다가 그 동료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나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사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전화는 몹시 불편했다. 그가 자주 나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내용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내가 아무런 말 없이 그의 홍보성 말을 들어줌으로써 혹시 내가 그의 사업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입장을 확실히 전달해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 나는 그 사업에 전혀 관심이 없고 혹시 내가 그 사업에 참여하길 기대해서 전화하는 거라면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다른 일상적인 일로 전화하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나 사업 관련해서 전화하는 거라면 이제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적지 않게 당황한 것 같았다. 잠깐 동안 횡설수설하더니 나중에는 명확하게 내 입장을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전화였다. 만약 그가 전화할 때마다 내 속마음을 차마 말하지도 못하고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면 아마 몇 개월 동안 그런 전화는 예정되어 있었고 결국 서로에게 괴로운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일로 만난 관계라지만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되어버려 마음이 썩 좋지도 않고 왠지 씁쓸한 기분이 쉽게 가시질 않았던 일이었다.


그랬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비록 그의 의도는 뻔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관계가 지금보다 더 소원해질 것이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에게 예의를 표하기로 했다. 따뜻한 캔커피를 주머니에 넣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잠시 후에 그도 도착했다. 나는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고 실내에 들어가지 말고 길에서 잠깐 이야기 나누다 가자고 했다. 그도 동의하고 따뜻한 캔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나 그는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지만 나는 내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나는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그도 일상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이전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 생각을 정확히 밝혔던 것이 오히려 좋은 대화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내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해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었을 것이고 그래도 무덤덤한 나를 보면 괴로웠을 것이다.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나도 역시 괴로웠을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분명히 밝히면 관계의 행방은 전자처럼 관계가 아예 끊어지거나 후자처럼 예상 밖의 긍정적인 관계로 진척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명확히 표현했을 때 끊길 인연이라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득을 위해 이어갈 인연이라면 하루라도 일찍 단절되는 편이 서로에게 이로울 것이다. 우리 서로의 삶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넓히려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적당히 가지치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관계를 확장하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 상대가 나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얼마큼 애정이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자신 앞에 매일매일 던져지는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느라 딴 데 눈 돌릴 여력이 없다. 마음은 있어도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하고 살 때도 많다. 원래 우리의 삶이 그렇다. 그러니 어느 시점에서는 인간관계에서도 욕심을 거두어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 마음이 닿지 못할 관계라면 놓아줘야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로울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각자의 애정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더욱 풍성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고, 이는 우리의 행복한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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