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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02. 2022

소유로부터의 자유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왜 인간은 그토록 단단하게 자신을 땅에 뿌리박고 살아왔을까? 그와 똑같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를 수도 있으면서.”라고 말했습니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인간은 한 곳에 매어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을 소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예전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자기 명의의 집을 갖기 위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허리띠를 조여 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아늑한 자기 소유의 집에서 펼쳐질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의 행복을 유보하며 살았지요.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넘게 악착같이 절약해서 마침내 집을 갖게 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집의 개념이 주거 공간이라는 생각보다는 소유, 재산의 개념이 더 큰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명의의 집을 갖는다는 것은 아마 세상 전부를 갖는 것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곳에 얽매어 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삶은 유한합니다. 유한한 삶을 살면서도 어딘가에 정착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감으로써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가 말하길 인간은 생각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의미 없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면서요. 그러고 보면 집을 소유하기 위해 정진함으로써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 안정된 삶에 이르는 길이고 삶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줄 수도 있었다고 하면서요.    

  



저도 그렇지만 제 주위의 친구들은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크게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은 그저 보통의 부모님에게 뭔가를 바랄 처지도 아니었지요.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랬고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랬지만 사회에 나와 직장을 다니면서 1년짜리 정기적금을 들어 월급의 대부분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했습니다.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었으니까요. 1년 후에는 그 돈을 신탁에 넣고 또 새로운 정기적금을 넣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통장이 하나씩 늘어갔습니다. 이 방법이 유일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은 주식에 투자해서 쏠쏠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비싼 외국산 자동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수익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등락에 따라 밤잠을 설치는 친구를 보면서 아무리 수익이 좋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제가 추구하는 삶과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아무리 권해도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주식이 그렇듯 그 친구의 인생도 등락이 꽤 있었습니다. 반면에 저와 다른 친구들은 스펙터클 하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지루하게 보일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아주 미미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통장의 잔고도 느리게나마 불어나고 있었고 읽은 책도 한 권 한 권 쌓여가고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점차 커져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제보다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특출날 것은 없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은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아파트를 선물로 받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만 하루 동안은 그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생각에 그날은 몇 번씩 하늘을 쳐다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음날 친구를 부러워한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미미하지만 조금씩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제 삶에 더 만족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잘 살아온 제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자기 명의의 집을 갖는 것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부모가 배경이 되어주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 명의의 집을 갖겠다는 목표는 점점 요원해지는 듯합니다. 졸업 후에 학자금 융자 갚느라 몇 년은 걸릴 것이고 그다음에 집을 사기 위해 저축을 한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생각만 하지 내려올 줄 모릅니다.  


최근 뉴스에서도 그와 관련된 기사를 봤습니다. 한 30대 초반의 부부는 이번이 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부부가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모조리 받아 아파트를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리가 인상되면서 매달 나가는 이자만 몇 백만 원이라고 합니다. 그 많은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는지 생각만 해도 삶이 위태로워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라도 집을 사려는 부부가 안쓰럽게 느껴지더군요. 몰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일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면서 이제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유가 목적이 아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집의 개념이 점차 확산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집을 소유하기 위해 지금 누려야 할 행복을 더 이상 미래로 유보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집을 사려는 노력을 이제는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는 일에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를 위해 하루빨리 집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복지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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