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들은 2-3년마다 새로운 부임지로 이동합니다. 떠나는 수녀님 손에는 달랑 가방 하나뿐입니다. 수녀님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삶이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수녀님처럼 언제든지 가볍게 떠날 수 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트럭 한 대에 실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이 많아서 쉽게 떠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한 곳에 얽매여 사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물건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요.
살면서 물건에 너무 애착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한번 산 것은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물건은 쌓이게 되고 생활공간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물건에 대한 욕구는 계속 바뀌기 때문에 구입한 물건의 효용가치는 금세 사라지고 처음의 만족감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나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 동안 운영해온 사업장을 정리하면서 시설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하기 위해 시설물들을 철거해야 했습니다. 서류는 분류해서 보관하거나 파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상 폐기하려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컴퓨터, 프린터, 난로, 냉장고, 소파, 서랍장 등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했어도 남은 물건들이 아까웠습니다. 그때 문득 ‘그동안 잘 사용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련을 거두고 철거업체가 알아서 처분하도록 맡겼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도 한 때 잘 사용했지만 지금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구석구석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사용했던 휴대폰들도 나왔습니다.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전자계산기, 전기면도기, 헤어 드라이기, 수첩, 시계, 만년필 등을 모조리 버렸습니다. 옷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옷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옷은 많은 데 막상 입을 만한 옷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내가 옷에 너무 얽매어 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마음이든 물건이든 잘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건을 비워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 있었습니다. 15년 전에 참석한 한 세미나에서 자신이 몇 시간 후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마지막 편지를 쓰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썼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어떨지 모르나 그때는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삶에서 뭐가 중요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을 타는 듯했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죽음 체험도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죽었다고 가정하고 입관(入棺)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TV에서 죽음 체험에 대해 들었을 때 사람들이 별 걸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의를 입고 입관 절차를 체험한 참가자들은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하면서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될 터이고 죽으면 자연스럽게 관에 들어갈 터인데 굳이 살아서 관속에 미리 들어가 볼 필요가 있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세미나에서 입관 체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을 마주한 상태에서 마지막 편지를 썼던 경험은 한 번뿐인 생을 보다 밀도 있게 살도록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때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늘 죽음을 기억하며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주어진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죽음을 생의 끝으로 보는 시각에서 생의 완성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었다. ‘늘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문장이 마음에 뭉근히 와닿습니다. 매일 아침 창문을 활짝 열면서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와 닿을 때 지금 이곳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끔 마음먹은 대로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내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 앞에 겸손해집니다. 우리가 죽음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