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16. 2021

관계 속 자연스러움 (잠언 25:1-13)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만나는 곳

시간: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



1

2020년 끝자락에서 시간을 내어 그간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짤막하게나마 송구영신 인사를 건넸습니다. 길어야 1분이면 손전화기 혹은 컴퓨터 자판을 활용하여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더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함께 드류에서 공부했던 한 형과 연락이 닿아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형은 드류에서 공부할 때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아 아이를 가진 주변 사람들 모두 조심스럽게 형 내외를 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목회학 박사 과정을 끝낸 형은 한국을 떠났을 때 품었던 마음 그대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한국에 두 발을 내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님의 부인은 친구 권유에 힘입어 난임 시술로 유명한 산부인과를 찾아갔습니다. 몇 가지 검사 후 난임의 원인이 밝혀졌고, 형님과 형수님은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고, 10개월 후 첫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늦둥이로 마주하게 된 아기가 너무 예뻐, 두 분은 시험관 아기에 다시 도전했고, 이번에도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하여 10개월 후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잠언서 25장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제가 아는 한 형님의 시험관 아기 도전기에 관해 말하는 이유는 잠언서 25장을 읽고 성도님들과 나눌 제 생각의 꼬리를 따라다는데 중에 그 형님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 형님은 살며시 난임 혹은 불임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거 같다는 의사를 넌지시 내비쳤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우주만물의 운행 질서를 주관하신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에게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평생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젯거리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맞아떨어지기기 너무 힘들다는 사실이지요. 한국에서 미국까지 날아와 7, 8년 간 열심히 공부하며 가족계획 또한 실천에 옮기려고 할 때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건 아닌가보다'라고 마음을 정리하려던 찰나에 예상 밖의 일이 현실에 떨어졌던 거죠. 우리 모두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그렇게도 바랄 때는 결단코 손안에 들어오지 않더니만, 이건 아닌가보다 하고 움켜쥐었던 손에 힘을 빼는 순간 소리 소문도 없이 그렇게도 바랐던 게 손에 쥐어질 때가 있지요? 

 

2

오늘 함께 읽은 잠언서는 전 세월이 무르익어감과 더불어 그 깊이와 넓이가 늘어가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던 말이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이해가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아하! 이걸 그때 알고 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또한 자아내는 책입니다. 기독교인은 성경책을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책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하나님의 뜻과 바람이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글로 옮겨 편집한 결과물이 성경책이란 걸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계시(啓示) 라는 단어의 뜻은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뜻과 바람을 계시한 책이라는 걸 염두에 둘 때만 우리는 잠언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잠언서는 계시가 아닌 인간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 쓰였기 때문입니다. 계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하나님 말씀이라면 잠언서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 하나님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최후의 창조물인 인간을 자연 속에 놓아 주시며, 자연을 돌보며 더불어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3

2020년 3월에 전 세계로 확대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심각한 국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지구 온난화 현상입니다. 뉴욕 타임스에 연재된 지구 온난화에 관한 논설에 따를 때, 지금으로부터 40-50년 후에는 지구가 항상성을 완전히 상실해 자정 기능이 불가능해 질거라고 합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미국에 사는 이 대부분은 이를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코앞까지 찾아왔을 때,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은 두려움에 휩싸여 거의 모든 외출을 삼가고 살아남기 위해 집에 머물렀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도 이와 비슷하게 진행될 거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추측입니다.  

 

4

잠언서에 담긴 무수한 격언을 하나로 엮는 실타래는 “자연스러움”입니다. 한자어를 조합하여 만든 단어 자연(自然)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진다.'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난 모세는 자기더러 이집트로 돌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라는 이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집트 사람이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제가 뭐라고 답해야 합니까?” ““난 스스로 있는 존재다.”라고 답해라.” 하나님이 대답하셨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데, 잠언서가 제시하는 방법은 자연현상을 치밀하고 철저하고 차분하게 관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모두 흙에서 왔고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자연을 사용하여 인간이 만든 인간 사회와 관계 또한 자연이란 범주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잠언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면 하루하루의 삶을 가볍게 대하지 말고 치밀하고, 철저하고, 차분하게 관찰하며 살아라. 자연스러운 자연현상 속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숨어 있기 때문이고, 자연스러운 인간 현상 속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움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낀 긴장감을 사라지게 해 줍니다.. 자연스러움은 거추장스러움과 의도성이 베인 허례(虛禮) 의식을(虛禮) 폭로합니다. 자연스러움은 억압, 멸시, 천대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연스러움은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줍니다.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잠언서 25:8)”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 (잠언서 25:9)”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잠언서 25:13)” 

 

5

지난 3년 동안 전 정신분석가가 되기 위해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블랜튼-필 정신분석 훈련과정에서 공부해왔습니다. 이제 짧으면 1년, 늦으면 1년 6개월 정도 기간만 더 공부하면 졸업할 수 있는데요. 지난 3년 간 다양하고 복잡한 정신분석학 이론을 배워 알아가고, 이를 익혀 상담 중 만난 환자의 삶에 적용하는 와중에 깨달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건강한 삶, 한 순간 반짝하는 삶이 아닌 70년 80년 동안 계속되어야 할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건 재물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직업도 아니고, 다양한 인간관계망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적 권력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건 생명이 시작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존재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관계'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캇 Donald Winnicott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아기란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아기 있는 곳에 엄마가 있고, 엄마 있는 곳에 아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는 여러분의 부모님이 있었고, 오늘 여러분의 삶은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배우자와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좀체 그 소중함을 인지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이죠.

 

6

제가 참 많이 좋아했던 한국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 선생님은 한 대담에서 자기 인생을 실패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자기 옆에는 함께 살았고, 함께 늙은 친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하셨죠. 힘과 권력, 재물, 이 세 가지 모두 부족함 없이 누리며 살았지만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자연스럽게 기댈 수 있는 이 하나 없는 자기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드류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형이 두 아들의 아빠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형수님의 친구가 형수님을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산부인과로 데려갔기 때문이지요. 관계로 인해 기적 같은 일이 평범한 현실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여전히 공포에 잠가두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관계로 인해 시작했고, 관계로 인해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하나로 엮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역시 관계라는 사실을 오늘 이 아침에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와 맺은 관계에 집중할 때, 허례의식은 버리고 자연스러움으로 정성을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중첩되는 때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아로새긴 은 쟁반과 금 사과 같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관계론적 인식에서만 가능한 지혜입니다 (잠언서 25:11).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충성된 사자는 관계론적 접근에 의해서만 가능한 결실입니다 (잠언서 25:13). 관계 자체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린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그 누구보다 관계에 집중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잠깐 함께 나눈 말씀을 되새기면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새기는 기도 

1 월 15일 이른 아침에 잠언서 25장을 읽으며, 하나님 당신께서 자연 속에 숨겨두신 창조질서를 찾아내 우리 각자의 삶으로 효과적으로 옮기는 방법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는 잠언서 1장 7장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찾아내라고 숨겨 놓은 참살이의 소중함을 자연 속에서, 관계 속에서, 일상 속에서 찾아내며 살고 싶습니다.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춰서야 할 때, 돌아갈 때와 뒤로 물러나야 할 때를 구별하는 방법이 자연스러움으로 빚어내어 소중하게 가꾸는 관계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맙니다. 오늘 하루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 당신의 자연스러움을 닮아 자연스러움으로 우리를 대하고, 다른 이를 대하며 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작가의 이전글 증인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