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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16. 2021

The Girl 그 소녀 (2012)

미국 소시민과 멕시코 산골 소녀가 만나면

The Girl (2012)



술중독으로 아들 조지Georgie의 양육권을 빼앗긴 애쉴리Ashley에게 산다는 건 매일매일 자기가 실패자임을 재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시간 수당을 받으며 일하면서 승진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다른 이가 받는 만큼의 시급도 받지 못했다. 다른 이와 어울리지 못하는 그녀를 좋게 볼 사람은 없었다. 가끔씩 용기를 내어 찾아간 아들 조지는 외할머니와 살고 있다. 낳은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지만, 매번 조지는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뜻하게 다가와 안겼다. 그런 그녀를 걱정 반 의심 반으로 바라보는 엄마와의 만남은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말다툼으로 변했다. 쓰지 않는 자동차 화물칸을 개조하여 집으로 만든 곳에서 사는 애쉴리를 가끔이지만 찾아주는 유일한 손님은 아빠다. 화물차를 운전하며 전국을 나다니는 아빠는 애쉴리가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그렇게도 밉던 아빠의 행동거지를 애쉴리는 배웠고, 자기도 모르게 고스란히 반복했다. 아빠가 직업을 핑계로 자기를 떠났듯이 애쉴리는 술중독을 핑계로 아들을 떠났다. 술중독을 완전히 이기고 하루빨리 자립해서 아들 조지와 함께 살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애쉴리를 찾아온 아빠는 매번 선술집에 딸을 데려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삶에 관한 넋두리를 딸에게 쏟는다. 자신의 넋두리를 유일하게 마음 편히 쏟아낼 수 있는 상대가 갓난아기였을 때 매몰차게 떠났던 딸이라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위해 딸아이를 사용하는 아빠, 지극히 자기애적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랬기에 재정난을 토로하는 딸에게 멕시코를 오가며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꿈꾸는 사람을 화물차 짐칸에 태워 주는 대가로 받은 현금을 자랑스럽게 꺼내 몇 푼 손에 쥐어 준다.


          아빠를 따라 멕시코로 놀러 간 애쉴리는 그곳에서 아버지가 잠깐씩 함께 사는 중년 여인이 사는 집에 하룻밤 머문다. 자기 남편의 딸이 놀러 왔지만 거실 안락의자 외에는 애쉴리에게 아무것도 내주지 않으려는 여인의 모습 속에서 부부는 서로 닮아야 함께 산다는 또 다른 옛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에 화물차에 기름을 채우러 주유소에 들렸을 때, 애쉴리는 아빠 화물차 짐칸에서 사람 인기척 소리를 듣게 되고, 아빠로부터 며칠 전에 받은 현금의 출처를 알게 된다. 미국으로 돌아온 애쉴리는 재정난이 점점 심각해짐과 아들 조지 양육권을 되찾을 수 있는 면접 볼 날이 조만간에 정해질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돈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애쉴리는 아빠를 흉내내기로 했다.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꿈꾸며 미국과 멕시코 국경 근처 지역에 모여든 사람 6명을 미국까지 실어다 주는 대가로 한 명당 500달러, 총 3,000달러를 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사전조사를 하지 않고 다른 이가 하는 불법 이민 길잡이 역할을 먼발치에서 한 번 슬쩍 확인하는 걸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얕은 강을 건너 넘어가려 했던 사람 6명은 국경 수비대 헬리콥터에 발각되었고, 그런 와중에 딸아이 한 명과 미국으로 밀입국 하려 했썬 여인은 당황하여 물속을 헤매다 물에 빠져 죽었다.


          로사Rosa라는 이름만 아는 한 소녀를 졸지에 떠맡게 된 애쉴리는 당황하여 아빠를 찾아갔다. 애쉴리를 향해 아빠가 말했다. "차 타고 가다가 어느 구석에서 그 아이를 내려놓고 도망가. 그리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 그러지 못하면 넌 한평생 저 아이를 돌봐야 해."


          그러고 싶었고, 그러려고 했지만, 로사 얼굴에 비쳐서 눈에 들어오는 아들 조지를 매몰차게 두 번 길바닥에 내동댕이칠 수 없었다. 결국 둘은 로사의 엄마가 강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강가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로사를 애쉴리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둘은 미국이란 나라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중 한 꼭지가 기억난다.


"우리 엄마가 미국에 가면 정말 큰 집에서 가정부를 두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으면서 살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 글쎄... 사는 집마다 상황이 다를 텐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난... 화물칸에서 살아."

"그게 뭔데요?"

"커다란 자동차의 짐칸인데, 그걸 집으로 개조해서 살아. 난 거기서."

"그럼, 우리 할머니 집이 더 좋겠는데요? 우리 할머니는 음식도 정말 잘하고, 때마다 과일을 맺는 나무도 있어요. 나 이번에 그걸 못 먹고 왔는데, 진짜 먹고 싶어요."


          애쉴리는 로사를 외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기로 결심했다. 아들 조지의 양육권을 되찾을 수 있는 면접 하루 전 날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술중독과는 관련이 없음을 강조하며 면접을 연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로사는 멕시코 중에서도 '깡'시골에 살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도 너무도 한적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에 로사 외할머니는 홀로 살고 있었다. 엄마와 로사는 어떻게 멕시코 국경 지역까지 올 수 있었을까란 의문이 지워지질 않았다.


            딸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 하염없이 우는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다가간 애쉴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넌 잘못한 게 없어. 내 딸을 죽인 건 강이지 네가 아니야." 할머니가 대답했다.


          애쉴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폐차해야 마땅한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애쉴리의 얼굴은 영화 첫 장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 아니었다. 주어진 현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겠다는 비움과 체념. 희망이 살며시 그 속에 배어 있었다. 그때 로사가 산골 내리막길을 따라 힘차게 달려왔다. 애쉴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로사 엄마의 생사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경찰서로 가던 길에 잠깐 멈춰서 거닐었던 철길에서 1센트짜리 동전을 기차가 달려오는 기찻길 위에 올려둔 후 만들어 로사에게 선물로 줬던 '행운의 동전'을 로사는 다시 애쉴리에게 줬다. 그런 로사를 슬프고도 따뜻하게 안은채 애쉴리가 말했다. 

"나... 네가 많이 그리울 거야."


          이민살이의 애환,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낳은 인간 소외 현상으로 인해 소외된 채 한평생 살아야만 하는 사람, 그런 세상 속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한 멕시코 시골 소녀의 시골스러움과 청순함, 그리고 대범함. 미국 소시민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 진지하고 차분하게 연구하며 감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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