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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Apr 27. 2021

슬럼독 밀리어네어 (2008)

'해탈'은 '돈'이었다.

무슬림 교도 인도인 자말 말릭Jamal Malik (Dev Patel)은 사회자가 제시하는 문제의 정답만 제대로 다 맞히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갔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쉽게 맞추지 못했던 문제를 차례대로 맞혀 나간 자말은 백만장자가 되었고, 이를 내기에 걸면 두 배의 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 또한 주어졌다. 하지만, 자말은 그 기회를 거절했고, 사회자는 한 주간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참가자에게 준다고 말하며 프로그램을 끝냈다. 자말과 건물 밖으로 배웅한 사회자는 자말을 말없이 경찰에 넘겼다.


          취조실 형사는 집요했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섞어가며 자말에게 어떻게 그 어려운 문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맞출 수 있었는지를 이실직고하라고 명령했다. 자말이 할 수 있는 대답은 간단했다. 답을 알고 있었기에 답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화가 난 형사는 자말을 텔레비전 앞에 앉힌 후 프로그램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튼 후 첫 번째 문제, "1973년에 개봉한 영화 잔지어Zanjeer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를 사회자가 제시하는 장면을 보여준 후 물었다.


"어떻게 답을 알고 있었지?"


해답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자말은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다섯 살 소년 자말이 공중변소에 앉아 있다. 형 살림은 밖에서 동생을 기다리다 어디선가 날아와 착륙하는 헬리콥터를 향해 달려갔다. 동생 자말에게 골통을 먹이기 위해 화장실 문을 안에서 밖으로 열 수 없도록 의자를 궤어 놓았기에 자말은 화장실에 잠겼다. 헬리콥터 안에 타고 있던 이가 그 당시 최고 영화배우 아미타브 바크칸Amitabh Bachchan이란 사실을 안 자말은 큰 결단을 내린다. 공중변소 변을 모아둔 똥통으로 뛰어들어 화장실을 탈출했고 온몸에 뒤집어쓴 똥을 무기로 수많은 인파를 뚫고 영화배우 바크칸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에 자필 서명을 받았다. 그렇게 기억한 이름은 죽을 때까지 잊으래야 잊을 수 없었다.


          인도에서 무슬림 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자말은 형 살림Salim과 함께 어느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살았다. 모두가 가난한 빈민촌이 집이었기에 가난이 삶에 드리운 피할 수 없는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며 살았다. 세상과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아빠는 무슬림 교도를 싫어하는 타 종교 열혈 당원에게 살해당했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형과 함께 멱을 감으며 놀 때 또다시 들이닥친 열혈 당원은 엄마 또한 살해했다. 두 형제는 열혈 당원의 습격을 피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도망치는 와중에 부모를 잃은 같은 또래 소녀 라티카Latika와 함께 살게 되었다. 


          셋은 주어진 현실을 거부하지 않았다. 변해가는 현실에 자기를 맞추어 적응해 살아내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자말은 무모하지만 순수하면서도 우직한 아이였다. 유명 활극 배우 아미타브 바크칸의 서명을 받겠다는 생각 하나만 붙잡고 과감하게 똥통에 뛰어들 수 있었던 자말은 첫 만남에 반해버린 라티카를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았다. 자말의 형 살림은 생존본능이 뛰어났고, 대범하면서도 영악한 아이였다.  통 똥에 뛰어들어 자말이 얻어낸 배우 아미타브 바크칸의 서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 근처 영화관 직원에게 돈을 받고 팔았고, 이에 화를 내는 자말에게 그걸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런 기회주의 근성은 청소년이 된 살림을 한 조직폭력배 두목의 눈에 들게 했고, 두목의 오른팔로 살아가며 청부살인도 망설이지 않는 무서운 사람으로 변했다. 라티카는 처음 자말과 살림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길거리에 서있는 그녀에게 처음 외쳤던 말 "우릴 따라와! 도망가자!"를 듣고도 멍하게 서있었듯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살림에 의지했고,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잘 자리를 제공하고 구걸을 시키는 조직의 두목을 위해 춤을 쳤고, 살림이 모시는 조직 폭력배 두목의 첩으로 살았다.


          자말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삶에 충실했다.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가볍게 흘려버리며 살지 않았고 자기에게 찾아온 관계에 집중했다. 지나간 순간에 대한 기억력은 그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집중했는지에 비례한다. 자말은 자기에게 밀려온 삶의 파도에 집중했다. 집중했기에 파도를 타 넘어 피할 수 있었다. 인도 철학이 생각났다. 오늘의 나는 과거에 내간 한 생각과 행동, 관계의 총합이고, 미래의 나는 내 과거와 현재의 총합이다.


          이백만 장자가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몰랐지만 자말은 라티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만족했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감 없이 고른 답 하나. 정답이었다. 인도 최악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순수함과 우직함을 무모하리만치 잘 간직한 자말은 이백만 장자가 되었고, 사랑하는 여인도 손에 넣었다. 돈과 명예, 권력과 미인을 모두 손에 거머쥔 자말은 춤을 추며 극장을 떠나는 관객을 배웅한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사랑하는 이는 있고. 없을 게 없는 삶을 시작하려나? 우리의 현재 삶이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삶의 총합이라는 인도 철학도 물질(만능)주의 위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모래성을 쌓는 자본주의 앞에서는 한낱 신기루로 변한다는 걸 깨달았다. 윤회, 존재론적 감옥을 벗어나는 해탈을 가능케 한 건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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