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를 당하고 왕따를 받아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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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이웃 한 분이 조용히 찾아와 글쓴이에게 조언을 구했다. 당신의 아이가 친구 한 명에 의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잖은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에 관해 물었다. 다른 친구들이랑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아이와 놀고 나면 항상 속이 상해서 집에 들어온다. 가끔은 서러운 나머지 엉엉 울 때도 있다. 아이가 속이 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시느냐고 물었다. 다른 여러 아이들과 함께 잘 놀다가도 갑자기 자신의 아이를 향해 그만 놀이에서 빠지라고 명령하거나 하고 있던 놀이에 끼지 못하도록 막는다. 함께 놀던 다른 아이는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이맘때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몇몇 아이가 다른 한 친구에게 왕따를 가했던 게 생각났다. 물론 대중매체에 의해 알려진 집단 욕설과 감금, 폭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고 무시하고 외면했다. 이를 왕따라고 봐야 할까? 왕따가 맞다. 왜냐하면, 폭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한 인간을 아무렇게나 가지고 놀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 아이를 향한 아이들의 집단적 심리(心理: 마음의 움직임)는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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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기에 절대로 나쁜 행동을 할 줄 모를 거라고 믿고 싶은 우리 아이는 왜 자라면서 한평생 길동무가 될 수도 있는 어린 시절 친구에게 왕따라는 몹쓸 짓을 행할까? 그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런 행동을 계속할까? 어쩌면 왕따라는 행동 속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비밀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글쓴이는 이 글을 통해 ‘왕따’의 원인을 심리학적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그런 후에 가정에서 이를 예방하는 방법을 제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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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란 왕따돌림이란 신조어의 준말로서 “따돌리는 일 혹은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뜻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날까? 왜 이런 현상이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날까? 왕따라는 현상은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보면, 우리는 모두 왕따를 했고 또 왕따를 당했다는 깨닫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기 조금 전에도 우린 왕따를 당했거나 행했다. 보기만 해도 맘이 답답해지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린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짜증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다. 개인적인 행동일 수도 집단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아이들처럼 직접 표현하지 않는 이런 행동은 ‘간접적인’ 왕따에 해당한다. 아이들의 왕따와 비교할 때 어른인 우리가 행하는 왕따는 ‘예의범절’이라는 가면 속에 꼭꼭 숨겨져 있다. 행여나 그런 행동이 들통나게 되면 즉시 일반화 혹은 이성화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그런 게 아니라고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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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으로 볼 때, 왕따는 편견이라는 진화생물학적 원리에서 비롯된다. 사회심리학자 골든 앨포트 Gordon Allport는 「편견Prejudice」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편견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심리학적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하루를 살 때,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비판 없이 수용할 수 없다. 하루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하나 진중하게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편견이라는 사고의 틀을 사용해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범주화한다. 편견은 복잡한 사고 과정은 단순하게 해 준다. 왕따는 바로 이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의 편견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공유하게 되면 내집단과 외집단이란 두 가지 다른 공동체가 생겨난다. 내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 즉 편견으로 인해 구별된 사람은 이방인으로 규정되어 집단 밖으로 밀려난다. 신기한 건 이방인을 집단 밖으로 밀어내는 행동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내집단의 결속력은 점점 더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어야 한다. 도대체 왜 왕따돌림을 통해서 내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해야 할까? 앨포트는 편견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의 하나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주장했다. 고집불통인 어린이는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 상황 이상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불안해서 그렇다. 마찬가지로 고집불통인 할아버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와 다른 의견을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그 순간 경험해야 하는 불안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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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과 편견의 연관성을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왕따에 적용하면 집단 따돌림 속에 숨어있는 심리(心理: 마음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몇 년째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두 남자가 드디어 그런데 우연히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고 가정하자. 외나무다리 두 끝에 선 그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원수를 노려보며 걸어간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원수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질문이다. 누가 먼저 복수를 감행할까? 정답은 더 불안한 사람이다.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불안감을 유발한 환경을 바꾸거나 그 환경을 불안하다고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안타깝게도 불안감에 휩싸인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불안에 맞서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불안감을 유발하는 환경을 바꾸는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를 먼저 때린다는 건 먼저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왕따도 마찬가지다. 왕따를 행하는 아이는 불안하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는 불안함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럼, 대체 무엇이 그 아이로 하여금 상상을 넘어서는 공격성을 다른 아이에게 표현하도록 만들까? 도대체 이 아이가 느끼는 불안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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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관계 이론 심리학자들은 한마음으로 대답한다. 아마도 유아기에 그 아이는 자신의 생명을 보살펴주는 사람과 신뢰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심리학자 에릭 H. 에릭슨 Erik H. Erikson은 우리가 한평생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 심리적 능력을 몸소 체험하여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뢰성 (영아 초기), 자율성 (유아 초기), 창의성(유아기), 근면성(소년/소녀기), 정체성(사춘기), 친밀성(청년기), 생산성(장년기), 진정성(노년기)이 이에 해당하고 이 여덟 가지 심리적 능력은 상호 연관적으로 얽혀있다. 즉, 한 가지 능력은 다른 일곱 가지 능력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에릭슨은 이 여덟 가지 심리적 능력 중에서 가장 기초적이자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신뢰성을 꼽았다는 점이다. 즉, 영아 초기 어머니/아버지와의 건강한 인간관계 형성이 세상을 그렇기에 인생을 신뢰할 수 있는 기본이다. 신뢰성이 제대로 잘 갖추어졌을 때만 ‘건강한’ 자율성이 자라나고, 자율성이 잘 갖추어졌을 때만 ‘건강한’ 창의성이 자라나고, 창의성이 잘 갖추어졌을 때만 ‘건강한’ 근면성이 자라난다. 여덟 번째 능력인 진정성은 변화하는 삶과 조화를 이룬 정신을 한평생 잘 간직했을 때 생겨난다. 에릭슨은 진정성을 삶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한 번의 삶이 황금빛으로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한평생 삶에 대한 신뢰성이라고 정의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의 심리학적 진실을 여기서 수긍할 수 있다. 이제 정신적 능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따 현상 속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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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를 하기 위해 한 무리의 아이들은 왕따를 행할 대상을 선택한다. 가난해서 비싼 옷을 사 입지 못하는 아이, 부모님 중 한 분이 안 계신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 주로 자신보다 나약한 대상을 택한다. 그런 후 선택한 아이를 왕따 대상자로 정의한다. 입에 담기 힘든 욕이 희생양으로 선택된 아이의 이름을 대신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부터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닌 한 가지 물건으로 변한다. 인간이란 존엄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규제와 통제가 가해진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하지 마라. 저건 하지 마라. 이리 와라. 저리 가라.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생각 한 조각 조차 집단이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요즘 아이들의 놀이문화에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전자오락은 여기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아이들은 원격조정장치로 전자오락 속 주인공을 조정하듯이 왕따로 규정된 희생양을 조정한다. 신이 나고 재밌다. 얼굴에는 자신을 향한 만족스러운 웃음과 왕따를 당하는 아이를 향한 비웃음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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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한 고통이 두려워서, 영원한 소외가 두려워서 친구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왕따를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이 만족감은 자신의 마음속 불안감을 한 아이에게 투사(投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 등을 남에게 돌려 버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한 후 왕따를 행함으로 맛보다는 통제력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가는 대로 친구를 못살게 구는 행동 속에는 자기 자신의 불안감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숨어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아이는 사실 자기 마음속 불안감이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심리학에서는 ‘반사 경험 mirroring’이라 부른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에게 반응을 보이는 대상을 만들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죄책감을 유발한다. 이를 해결하는 행동이 바로 왕따의 집단화 현상이다. 희생양을 정하고,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후, 통제하는 일련의 행위는 의식화(儀式化: 어떤 대상에 대해 특정한 의식을 갖게 하는 일) 과정이다. 함께 나누는 경험은 죄책감이 일으키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린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심리학에서는 ‘쌍둥이 의식 twinship’이라고 부른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속에 숨어있는 심리학적 진실이 바로 이 쌍둥이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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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라는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마음의 움직임이 불안, 불신, 자신을 알아주는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살펴봐야 할 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왕따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스스로 불안감을 극복하지 않게 도울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글쓴이는 이 글에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마음속 권위의 필요성이 첫 번째 방법이라면 몸과 마음속 불안감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놀이 문화 조성은 두 번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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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이들은 자라나는 시기에 몸만 자라서는 안 된다. 마음 또한 자라야 한다. 신체가 자라듯이 마음이 자란다는 말은 자신의 말과 행동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양심(良心: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의식)을 내면에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은 어린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옳고 그름은 곧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구별인데, 권위를 사용한 규제와 제재 없다면 아이가 마음속에 양심을 만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우리는 권위가 없는 제한이 없는 자유만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자기 심리학을 하나의 심리학파로 만든 하인츠 코헛은 현시대 인간의 마음속이 복잡한 이유를 부모로부터 받는 자극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인해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본다면 적잖게 위축된 마음을 추스르며 살았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와 부모 사이의 과도하게 밀접한 관계망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다. 이와는 반대로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은 과도하게 허술한 부모와의 관계망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억압이 아닌 될 대로 되라는 공허한 내면세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의 아이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힘겨워했다면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능력으로 힘겨워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왕따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교육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알려주어야 한다. 어떤 행동이 왕따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이 일어나는 걸 보면 어른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마음속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어주어야 한다. 아이는 권위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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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아이는 놀아야 한다. 어른이 일하듯이 아이는 놀아야 한다. 지금의 아이는 다른 이가 춤을 추는 걸 보는 걸로 놀이를 대신한다. 다른 이의 노래를 듣는 걸로 놀이를 대신한다. 다른 이의 운동을 보는 걸로 놀이를 대신한다. 전자오락 속 주인공을 조정하는 걸로 놀이를 대신한다. 이건 아니다. 아이들은 직접 춤을 추면서 놀아야 한다.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놀아야 한다. 직접 땀 흘리면서 운동해야 한다. 실제 놀이 속 주인공이 되어 죽었다가 살아나길 끝없이 반복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비를 몸으로 배워야 한다. 인간 몸에서 뇌와 피부는 같은 세포가 분열하여 만들어진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땀을 흘리고 싶어 진다. 운동하여 피부를 자극하면 뇌도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아이들은 코앞에 놓인 죽음을 인식했을 때도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놀이 속에는 삶을 초월하는 정신적 힘이 숨어있다고 말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놀이는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 물러나 놀이라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 준다. 하지만 그 환상의 세계는 무질서와 혼란이 아닌 엄격한 질서로 통제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생각해보자. 술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하기 전까지 절대로 눈을 뜨면 안 된다. 참가자는 술래가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지해야 한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 속에 거할 때, 현실의 마음은 쉰다. 삶의 압박감에서 해방되니 자연스레 치유의 기적이 발생한다. 어른에게 놀이가 삭막한 현실로부터의 일시적인 도피라면, 아이들에게는 현실에 더욱더 잘 적응하기 위한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연마하는 실험실이다. 아이는 놀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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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왕따를 부모가 아이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왕따는 편견에서 시작되고, 편견의 중심에는 불안감이 놓여있다.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는 왕따를 행한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쌍둥이 의식과 반사 경험을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성을 아주 잠깐 회복하여 불안감을 한순간 극복한다. 하지만 이 일시적인 안정감을 한 아이의 존엄성을 제거하고 학대하면서 얻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글쓴이는 이를 예방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아이는 권위를 배워 건강한 양심을 마음속에 만들어야 한다. 아이는 마음과 뜻과 생각과 몸을 다해 마음껏 놀아야 한다. 이 글이 부모가 아이의 왕따 초기 증상을 발견하여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