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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un 23. 2021

또 하나의 징검다리

열왕기상 12:25-33


1

이스라엘 민족을 이스라엘 왕국으로 만든 이가 사울Saul 왕이라면, 이스라엘 왕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이는 다윗 왕입니다. 사울 왕과 다윗David 왕이 흘린 땀과 노력의 결실을 거저 건네받은 이가 솔로몬Solomon입니다. 그런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경험한 인생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왕이 된 사울의 삶과 달랐고, 드넓은 들판에서 야생 동물과 싸우며 자랐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끝없이 주변 왕국과 싸우며 살아야 했던 아버지 다윗의 삶과도 달랐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이 이루어 놓은 이스라엘 왕국을 가능한 오랫동안 온전하게 유지하는 게 솔로몬 왕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았던 솔로몬 왕은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인 지혜를 갈망했고, 이를 소유하기 위해 노력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갓난아기의 친모를 생물학적 본능인 모정에 기대어 찾아낸 솔로몬 왕의 재판 장면을 떠올리면 그가 지혜로운 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처럼 솔로몬 왕은 자기가 소유한 지혜가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를 자기가 소유한 권력과 지위가 견고해질수록 잊어버렸던 거 같습니다. 주변 나라와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아버지와는 다른 꼼수를 생각했는데요, 그건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을 노리는 왕국 하나가 나타나면 그 왕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평화를 모색했습니다. 문제는 결혼하여 왕비가 된 다른 나라의 여인은 솔로몬이 있는 나라로 이사 올 때, 자기가 믿는 신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다는 사실입니다. 정략결혼 수가 늘어날수록 이스라엘 민족은 더 많은 종교에, 더 많은 이방신에 노출되었습니다. 성경책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이 솔로몬 왕이 무분별하게 다른 종교와 이방신을 수용하여 포용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오늘 함께 읽은 열왕기상 12장 25절에서 33절까지에는 이스라엘 왕국에 발생한 분열을 기회로 삼아 여로보암Jeroboam이란 사람이 북 이스라엘 왕국을 세워 왕이 된 후, 왕권 강화를 위해 행한 몇 가지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느밧과 과부 스루아 사이에서 태어난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용맹한 용사이자 훌륭한 일꾼이었던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의 눈에 띄어 하루아침에 평범한 군인에서 강제 노역 감독관이 됩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 걸어가는 길에 예언자 아히야를 만났고 그로부터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는 걸 알게 되지요. 이 소식이 솔로몬 왕에게 알려지면 자기 입지가 난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한 여로보암은 곧장 이집트 왕 시삭에게로 도망쳤습니다. 기원전 931년경 솔로몬 왕이 죽자 여러보암은 곧바로 이스라엘로 돌아갔고, 이스라엘 왕국 내 분열을 기회로 삼아 이스라엘 민족 12개 지파 중 열 개 지파의 지지를 받아 북 왕국을 세워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원래 에브라임 지파가 대대손손 살고 있던 에브라임 산악 지방을 거처로 삼았는데, 세겜이란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고 얼마 후 브니엘이란 지역으로 다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보통 왕이 수도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때는 자기 통치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전략을 실천에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태초부터 살았던 지중해 동쪽 지도를 꺼내서 살펴보면 에브라임 산지에서 세겜으로, 세겜에서 다시 브니엘로 거처를 옮긴 여로보암 왕의 속내가 이스라엘 민족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후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지내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열왕기상 12:27)”


 

3

자기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여로보암 왕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다른 하나는 단에 놓아둔 후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멀리 가서 예배를 드리는 수고를 없애기 위해 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 준비했으니 지금부터는 이 두 곳에 모여 예배하면 된다.” 아주 먼 옛날 조상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게 하나님이 아니라 이 금송아지였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가지 거짓말은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가져다 둔 여로보암 왕의 거짓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민족이 예루살렘에 가지 않게 만들기 위해 여러보암 왕은 언덕 혹은 산꼭대기에 신당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사람, 곧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없었던 여러보암 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을 절기로 정한 후 손수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든 여러보암 왕은 자기 나라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고, 새로 만든 종교를 무기로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새로운 전통 또한 만들었습니다.

 


4

얼마 전 미국 국경일 순국선열의날Memorial Day에 전 뉴저지 남부로 1박 2일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건물이나 특별 행사가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뉴저지주를 떠나기 전에 저와 함께 드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며 3년 혹은 4년간 함께 살며 힘들 때면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외로울 때는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던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 만나는게 여행의 목적이었습니다. 14년이란 시간은 길면서도 짧았고 많은 걸 변화시켰지만, 시간조차 해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고향 땅 한국에서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단출했습니다. 이민 가방 네 개와 이 가방을 함께 나누어 옮긴 부인 혹은 남편이 우리 삶의 전부였죠. 짧게는 10년 길게는 14년이 지나 다시 만나니 우리의 삶은 단출하지 않았습니다. 한 명, 두 명, 혹은 세 명의 아이가 낯선 땅에서 태어났고, 학교에 가는 순간부터는 집에서 사용했던 한글을 낯설어하던 아이들은 어느덧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어 엄마, 아빠의 키를 넘보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얼굴에서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전도사님, 목사님, 사모님의 얼굴과 행동거지를 발견하는 일은 참 신기하면서도 유쾌했습니다. 

 


5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간 살아낸 삶이란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 풀어보니 지난 3년 간 어느 한 명, 사건,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생긴 셋째 아이, 한껏 기대했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뱃속 아기, 자동차 사고와 수술, 종교 비자를 거쳐 영주권을 받는 순간까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던 시간, 갑작스런 파송으로 정든 교회를 뒤로 한채 서둘러 떠나야 했던 순간. 만연한 웃음 뒤에 딸려 오는 씁쓸함과 애석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제가 14년간 살았던 드류대학교 가족 기숙사보다는 모두 다 더 크고 넓은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고마웠던 건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가 다르고 그 자리에서 삶을 대하는 모양새 또한 다르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기독교 목사로서,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잘 살아내보려고 고민하며 애쓰고 노력하는 흔적이 배어나는 동지들의 말과 행동거지였습니다.



6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후 새로운 자기만의 전통을 만들어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려 했던 여로보암 왕은 아들 아비야Abijah가 병들자 곧바로 자기가 잊으려고 무척 애썼던 옛 전통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아내를 변장시킨 후 실로Shiloh에 사는 예언자 아히야Ahijah를 찾아가 아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를 알아내라고 당부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만든 금송아지는 아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나라 곳곳에 세운 산당과 산당을 지키는 제사장은 아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자기가 직접 가지 않고, 아내를,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게 변장시켜 예언자 아히야에게 몰래 보낸 여로보암 왕의 행동에서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던 그가 두 마리를 모두 다 놓치게 되리란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찾아온 여로보암 왕의 아내를 향해 예언자 아히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백성들 가운데서 너를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게 하고, 나라를 다윗의 자손에게서 찢어 너에게 주었다. 그러나 너는 내 명령을 지키고 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내 앞에서 옳은 일만 행한 내 종 다윗과 같지 않았다. 너는 네 이전의 통치자들보다도 더 많은 악을 행하였으며, 나를 배반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김으로, 나를 노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네 집안에 재앙을 내려 종이든 자유인이든, 남자는 모조리 죽일 것이며, 네 가족을 거름더미처럼 쓸어 버릴 것이다. 성에서 죽은 네 가족의 시체는 개가 먹을 것이며 들에서 죽은 네 가족의 시체는 공중의 새가 먹을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열왕기상 14:7-11)"

 


7

1박 2일간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다 힐끔 쳐다본 자동차 옆자석에 앉은 처 이현민 전도사 얼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던 긴장감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같은 교정에서 공부하며 짧게는 3년 길게는 5, 6년간 삶을 함께 나누었던 전도사님, 목사님은 뉴욕, 뉴저지 구석구석으로 흩어져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과 씨름하며 소리소문없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성을 재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이란 필명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메리 앤 에반스Mary Ann Evans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하찮은 일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우리 삶이 생각보다 나은 이유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숨겨진 삶을 신실하게 살다 누구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여로보암 왕은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 보겠다는 포부를 실현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포부가 실현되는 순간부터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근원을 망각했습니다. 신을 앙망하는 마음, 신앙심의 시작점은 우리 삶의 근원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비롯되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기독교 신앙 전통은 하나님의 섭리를 자기 삶에 옮겨 심는 일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실천했던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입니다.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에서 전 안도감을 느낍니다. 수많은 사람이 실패했지만 다시금 그 실패를 징검다리 삼아 또 한 걸음 내디딘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이정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러보암 왕은 자기 포부에 감염되어 온가족의 숨통을 끊어버린 사람입니다. 지난 3년간 연합교회 아동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아이들이 한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한 마디가 있습니다. 이 한 마디는 창세기 2장에서 처음 등장하여 요한계시록까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손에 쥔 것보다 더 많은 걸 욕망하지 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는 단순합니다. 너무 단순해서 우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 삶에 충만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넉넉한 하나님의 축복을 망각할 때, 우리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손에 쥔 것보다 더 많은 걸 욕망하지 마라. 여러보암 왕의 삶은 오늘 이아침에 다시 한 번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되새김질 하게 만듭니다. 이제 잠깐 눈을 감고, 함께 생각한 하나님 말씀을 곱씹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닫는 기도

하나님, 오늘 이 아침에 여러보암이란 한 신앙인의 삶을 차분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는 용맹한 용사였고 성실한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 또한 소중하게 가꾸며 살았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의 눈에 띄어 강제 노역 감독관이 되는 순간부터 그는 야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에 닥칠 재앙을 한 예언자로부터 들었지만 이를 솔로몬 왕에게 가서 보고하기보다는 이를 놓칠 수 없는 기회로 삼아 분열한 이스라엘 왕국의 한 쪽을 차지하여 북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더 좋은 집에 살아야 하고, 더 젊게 살아야 하고, 더 오래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물질만능주의를 신앙과 믿음으로 오해해서는 안되겠다는 걸 여로보암이란 한 신앙인의 삶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손에 쥔 것보다 더 많은 걸 욕망하지 말라는 성경책을 관통하는 진리를 오늘 이아침에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새깁니다. 손에 쥐어진 오늘 하루에 집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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