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목표는... 생존이다!
1991년 11월. 28년째 공무원으로 사는 한국의 주 소말리아 대사 한신성(김윤석 역)은 2주 후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의 생활지도 어느덧 3년. 대한민국이 국제연합UN에 가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소말리아 대통령의 지지 발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한국에 홀로 남겨두고 온 고3이 된 딸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공직 생활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한국이 소말리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하는 북한의 주 소말리아 대사 림용수(허준호)는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수작을 동원하여 한국과 소말리아의 외교 관계에 먹물을 끼얹기 위해 오늘도 한신성의 꽁무니를 캐기에 바쁘다.
한국 대사 한신성과 안기부에서 소말리아로 발령한 한국 대사관 참사관 강대진(조인성 역)이 소말리아와 소말리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곱지 않다. 가난을 가난으로 생각할 수 없으리만치 가난하게 사는 국민과 그런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동시에 가난한 모국의 지리적, 정치적 자리를 활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기에만 혈안인 정치가와 경찰, 군인을 류승완 감독은 '꾸밈없이' 보여준다. '어, 저건 우리나라와 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들어 소말리아란 나라의 역사를 간략하게 들여다봤다. 정식 나라 이름은 소말리아 연방 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Somalia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서구 제국주의 팽창 바람에 휩쓸려 식민지가 된 슬픔과 아픔이 국민 내면에 소복이 쌓인 나라였다. 1886년부터 현 소말리아의 국토 중 일부분인 소말리란드Somaliland는 영국이 차지했고, 내륙지역은 에티오피아Ethiopia가 차지했다. 1936년에는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했기에 자연스레 내륙지역은 이탈리아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자 영국령 소말릴란드에게는 자치권(독립)이 주어졌고, 이탈리아령 내륙지역은 국제연합UN의 신탁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한신성과 림용수가 함께 일한 소말리아 모가디슈Mogadishu는 1960년에 소말릴란드와 내륙지역이 통합하여 세운 나라의 수도다.
영화 <모가디슈>의 실제적 배경인 소말리아 내전이다. 1969년 모하마드 시아드 바레Mohamed Siad Barré 장군은 소말리아의 초대 대통령 압디라시드 알리 세르마르케Abdirashid Ali Shermarke를 암살한 후 쿠데타를 일으킨 후 군부 정권을 활용하여 21년간 소말리아를 독재했다. 1991년은 이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국민이 소말리아 연합 반군 USC(United Somali Congress)를 바레의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고 맞섰다.
내전이 발생함과 동시에 힘 있고 능력 있는 나라에서 파견한 대사관 직원은 대부분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갔다.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은 한 발자국 늦은 상태였다.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건 영화 속에는 두 명의 소말리아 젊은이가 나온다. 한 명은 한국 대사관 소속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수 솨마였고, 다른 한 명은 소말리아 조직폭력배 소속 직원으로 북한 대사관 현지 정보원 태준기(구교환 역)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공작을 수행하는 북한 대사관 심부름꾼 핫산이다. 솨마와 핫산은 둘 다 소말리아 연합 반군이었다. 하지만 내전이 발생했을 때, 솨마는 자기를 쫓는 경찰을 피해 한국 대사관으로 숨어들지만 대사관 직원의 신변에 위협을 줄 수 있음을 알고 스스로 대사관 밖으로 나가 경찰 곤봉에 맞아 숨을 끊는다. 핫산은 연합 반군 친구들을 데리고 북한 대사관에 도움을 줄 것처럼 찾아와 위장 습격한다. 왜 이 둘은 서로 다른 길로 갔을까? 한국 대사 한신성의 아내 김명희(김소진 역)이 인정 어린 마음으로 힘겹게 영어를 구사하며 핫산과 친구에게 맞아 얼굴에 상처를 위로하려 했다면, 태준기는 시킨 대로 솨마가 모는 자동차를 습격하여 트렁크에 담긴 가방을 훔쳐 가지고 온 핫산을 인간 이하의 동물 다루듯 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북한 대사관 대사 림용수는 13명의 부하 직원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중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말리아 반군을 만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중국 대사관은 이미 비어 있었다. 갈 곳이 없는 그가 내린 결정은 한국 대사관에 가서 도움을 요청해 보는 일이었다. 반군이 승리에 취해 하늘을 향해 연신 총을 쏘며 걸어 다니는 거리에 서서 도움을 요청하는 북한 대사관 직원과 아이들을 한신성과 강대진은 외면할 수 없었다. 한국 대사관의 문을 열었고 북한 대사관 직원과 아이들은 한국 땅으로 걸어 들어왔다. 살아남기 위해서.
북한 대사 림용수와 한국 대사 한신성은 자기에게 주어진 대사관 식구를 안전하게 고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마음을 합했다. 낯선 땅에서 죽을 수 없으니 무조건 살아서 '한반도'로 돌아가자는데 뜻을 모았다. 소말리아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었지만 먹는 음식에서 아무런 의견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행동거지만 보고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고, 다른 이의 환대를 정중하게 사양하고, 사양하는 손님을 위해 말없이 필요한 걸 가져다주는 눈치 문화 또한 똑같다. 김명희가 얀념에 절인 깻잎을 먹기 위해 젓가락으로 애를 쓰는 모습을 알아챈 북한 대사관 직원은 말없이 김명희가 깻잎을 한 잎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자기 젓가락으로 김명희가 젓가락으로 집은 깻잎 아래에 놓인 깻잎을 말없이 지그시 바닥으로 눌러준다. 배려란 자기 젓가락으로 다른 이의 깻잎 아래 깻잎을 아래로 눌러주는 것. 한민족이기에, 같은 한반도에서 태어나 살았기에, 같은 양념에 절인 깻잎을 먹고 자랐기에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배려.
또 한 번 목숨을 걸고 떠난 자동차 여행은 한국대사관에서 이탈리아대사관까지 죽지 않고 살아서 도착하는 일이었다. 반군의 추격을 피해 간신히 모두 살아서 이탈리아대사관 앞에 도착한 줄 알았다. 이탈리아대사관 소속 군인들이 반군을 향해 기관총을 겨누고 '한반도' 대사관 직원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을 때, 한신성은 마지막으로 도착한 태준기가 운전했던 차 문을 열고 림용수가 안전하게 내리도록 소말리아 반군의 기관총 총구를 등으로 막아준다. 림용수는 안전하게 도착했지만, 태준기는 차에게 내리지 못했다. 온몸에 총알을 맞았지만 차에 탄 대사관 식구를 안전하게 이탈리아대사관까지 수송한 후 숨을 거두었다. 배려란 희생이다. 입만 살아 있는 희생이 아니라 온몸에 총알을 맞았지만 배려하는 대상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거. 그게 배려다.
이탈리아대사관이 준비해준 적십자 소송기가 착륙한 케냐의 한 공항에는 외신기자들로 북적였다. 한국 안기부 요원과 북한 정보국 요원 또한 그 속에 서있었다. 북한대사관 직원과 아이들을 적십자 소송기에 태우기 위해 이들이 전향서를 작성했다고 안기부에 거짓말한 한신성과 강대진은 비행기 유리창으로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정감 어린 작별인사를 주고받는 두 대사관 직원과 아이들을 향해 강대진이 황급히 말했다.
"잠깐만! 주목! 우리가 먼저 내리고, 북한분들은 우리 뒤에, 저 외국인들하고 동시에 내립니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한반도인을 향해 한신성이 말했다.
"아, 남북이 양쪽 다. 공항에 나와있고 지금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은 절대 서로 아는 척하면 안되니까. 임 대사님의 인솔 잘 부탁드리고, 다들 작별인사를 여기서 나눕시다. 네..."
적십자 수송기 안에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악수를 주고받았다. 남한에게도 북한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고, 악수를 주고받은 후 앞서 나가는 남한 대사관 직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며 머뭇머뭇 비행기에서 내렸다.
한신성과 림용수는 두 번 다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함께 세운 목표를 함께 이루었고 함께 생존했지만, 남한과 북한은 서로 가야 할 길이 달랐다. 배려, 다른 이가 처한 상황을 말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배려, 다른 이가 처한 상황을 내가 처한 상황 속으로 수용하여 소화하기. 배려, 갈림길에서 다른 이가 택한 선택을 인정하기. 난 영화 <모가디슈>를 남북 분단과 통일에 관한 그 어떤 책이나 강연보다 고착화된 분단의 현실을 넓고도 깊게 영화라는 현실과 환상을 융합하여 새롭게 해석하면서 재미와 긴장감 또한 놓치지 않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배움터라고 생각한다.
2021년 10월 24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