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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10. 2022

42살 생일에

아직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40이 넘으니 어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죠?" 아내가 물었다. 

"그랬나요?" 머뭇거리며 내가 대답했다.

"네, 30대에는 그래도 시간이 가는구나 했는데, 40이 넘고 나니 순식간에 나이를 먹는 거 같아요." 

"네... 그게... 그렇네요." 


머뭇거린 이유는 30대도 지금 40대처럼 빨리 지나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읽었던 한 심리학 서적에서는 매사에 집중하면 할수록 시간은 빨리 흘러가듯이 느껴진다고 했다. 반대로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무료하다면 시간은 더디 흘러간다. 이 세상의 만물 중에서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어 그 속에 자기를 가두어둔 채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은 살면서, 그러니까 시간에 휩쓸려 흘러가면서, 끝없이 이 시간이란 개념을 붙잡아 어떻게든 더디게 흘러가게 만들려고 한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우리의 시선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란 강물에서 어떻게든 오래 버티는 방법을 향해 돌려지기 마련이다. 매사에 집중하면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매사에 집중하지 않으면 시간은 더디 흘러간다. 문제는 기억이다. 우리를 우리 되게 만드는 게 우리가 시간에 수놓은 기억이라 부르는 흔적이라면 매사에 집중한 사람은 속절없이 흘려보낸 시간에 탄식하지만 시간과 함께 흘러가며 그 속에 수놓은 기억을 하나하나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반대로 더디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흘러간 사람은 자기를 자기 되게 하는 기억의 부재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에 사로잡힌다. 집중이 방만보다 나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2년 1월 9일부로 내 나이는, 인간이 정한 시간에 말뚝 받는 속절없는 행위에 따를 때, 이제 42살. 미국에 살기 때문에 42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시간 변경선을 지나는 순간 시간이 바뀌듯이 내 나이는 43살로 변한다. 엄마 뱃속에서 보낸 9-10개월의 시간을 1년으로 쳐주는 넉넉함 때문에. 


아직은 하고 싶은 게, 해 보고 싶은 게 여전히 많다. 두 아들이 어른이 되어 독립하여 집을 떠나기 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땀 흘리며 몸을 섞어, 싸우고, 화해하고, 짜증 부리고, 못 본 척하고, 화해하고, 이러기를 반복하는 축구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축구 선수가 꿈인 두 아들의 인생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아내에게는 독점적이고 이기적으로 지금까지 받아온 배려와 사랑을 시나브로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목사로서의 삶을, 한 여자로서의 삶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특별한 바람 없이 그저 응원하고 싶다. 부모님께는 여전히 미안한 맘이다. 조금 더 마음 편히 내 삶의 고단함을 아뢰고 충고를 들을 수 있는 아버지를 꿈꾼다. 종교가, 기도가, 은총이 모든 걸 해결한다고 찰떡같이 믿고 사는 어머니보다는 일상의 소소함에 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어머니를 꿈꾼다. 그런 내가 이기적임을 알기에, 여전히 두 분의 두 분 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거울 속에서 발견하기에 미안하다. 한 인간으로서, 한 남자로서,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두 아들의 아빠로서, 200년 전에 유럽에서 북미로 이민 온 미국인이 위스콘신에 세운 한 교회를 꾸려나가는 한국인 목사로서, 종교와 심리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정신분석학을 수학 중인 분석가로서의 삶에 집중하고 싶다. 매사에 집중하고 싶다. 속절없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지는 못할지라도 비기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할 수 있을 거 같다. 처와 두 아들의 격려에 힘입어. 


미누가
To Dad, 
Dad, I cannot express my gratitude when you firght taught me how to play soccer. Because of you, me and Jinu have became better than we once were this year. Thank you for being my and Jinu's dad and supporting us. Happy Birthday! Hope you enjoy our gifts.
P.S.: Buy a action figure when you feel like it. 
From Minu


지누가
아빠,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빠가 맨날 내가 다쳤을 때, 계속 상관없는 척을 했어요. 아빠는 나한테 계속 화내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빠가 진짜 상관없고 그냥 화만 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나에게 관심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전 너무 싫었지만, 제가 다쳤을 때 아빠랑 미누가 연습할 때 끼워주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항상 절 생각해 주고 같이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42번째 생신을 축하합니다. 
이지누 올림.


현민이가
사랑하는 남편, 
42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벌써 당신과 만나 함께 삶을 꾸려 나가면서 15번째 생일을 함께 하네요. 작년 한 해 이사하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한다고 너무 애썼어요. 늘 곁에서 든든하게 있어줘서 고마워요. 당신과 함께 하면서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니 "부족함이 없었네요." 당신의 존재만으로 나에겐 늘 큰 힘이 되었고. 우리 가족을 위해 귀하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2022년도 만만치 않을 테지만 또 한 번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우리 길을 함께 걸어가요. 당신을 참 많이 사랑하고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로, 그리고 한 남자로 존경하고 아낍니다. 42번째 생일 축하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아내 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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