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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17. 2022

Don't Look Up (2022)

하늘 위는 쳐다보지 마세요. 절대로. 

미시간주립대학교 천문학과 박사 지망생 케이트 디비아스키Kate Dibiasky (Jennifer Lawrence)는 어느 날과 다름없이 수바루 회사에서 만든 천체망원경으로 준비 중인 박사 학위 논문에 관한 별자리를 관측하던 중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발견한 적 없는 행성 하나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알아낸다. 이 소식을 케이트로부터 들은 천문학 박사 랜들 민디Randall Mindy (Leonardo DiCaprio)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모여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심심풀이로 케이트가 발견한 행성의 궤도를 조사했고, 그 행성은 정확하게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행성의 크기를 감안할 때 지구와 충돌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케이트와 랜들은 미 항공우주국에 연락하여 이 사실을 알렸고, 얼마 후 미 항공우주국 또한 동일한 예측에 도달했다고 알려왔다. 미 항공우주국 소속 행성 방위 조정실 국장 테디 오글레드롭Teddy Oglethorpe은 급히 케이트와 랜들을 데리고 백악관으로 향했지만, 대통령과 수뇌부 장관은 이 사실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랜들과 케이트는 이를 전 세계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인기몰이 중인 대담 방송에 출연하지만, 대담 진행자와 시청자는 긴박하게 들이닥칠 인류 멸망보다는 신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깜짝 소식에만 집착한다. 시간은 흘렀고,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을 밤하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했지만, 정계 지도자는 이를 가짜 소식으로 규정하며 시민에게 하늘 위는 쳐다 볼 필요가 없으니 올려다보지 말라고 요구한다. 행성은 케이트와 맨들, 미 항공우주국이 계산한 날에 지구와 충돌하고, 그로 인해 인류는 멸망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이기에 마지막에라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넣어둘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감독 아담 맥케이Adam McKay는 그러질 않았다. 상식의 진실성과 진리성을 초지일관 유지했다.


영화 감상 후 내 마음에 남은 인상과 잔상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인간의 무지함에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교통 체증으로 도로 위를 기어갈 때면 늘어나는 건 짜증과 분노다. 30분, 45분, 한 시간을 넘어가면 이제는 갈테면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보로 버티기 시작한다. 그러다 먼발치에서 응급차와 보험회사차, 경찰차의 요란한 비상등이 보이면 그때까지 마음 한편에 소리 없이 숨죽이고 기다리던 궁금증이 짜증과 분노를 옆으로 밀치며 고개를 든다. 자동차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장소를 지나칠 때까지는 안타까움에 혀를 찬다. "어쩌다 저렇게 큰 사고를 당했을까?"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사고 현장에 눈빛을 고정한 채 의도성 짙은 저속 주행으로 그 자리를 스쳐지나간다. 사고 현장이 눈에서 사라지면, 마치 새로운 하루가 시작했다는 듯이 운전자는 가속기에 오른발을 놓은 후 몸의 모든 무게를 한 번에 발끝에 모아 텅 빈 도로 위를 달려 나간다. 우리가 당하지 않았으면 모든 걸 구경거리로 취급할 수 있는 인간의 합리화와 정당화에는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없는 걸 있는 걸로 바꾸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고는 결코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묘한 환상이 그 아래에 놓여 있는 걸 아는 이는 몇 사람이나 될까? 지구를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오는 행성이 상징하는 건 지구 온난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한 모금 물이 없어 죽어가는 이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냉방기를 향한 인간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냉방기를 사용하여 우리가 줄이는 땀방울은 역설적이게도 아프리카 곳곳에서 수 천 년간 흘렀던 강줄기와 매년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수량 감소로 이어지지만, 한 순간의 시원함을 위해서 우리는 아프리카 사막화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의 응흉한 마음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에 관해 들었을 때,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의 마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소식이 국민의 마음에 위기의식을 불어넣게 되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유리한 조건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도 정지 지도자에게는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점유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진실과 사실은 언제든지 또 다른 과학적 의견을 거짓 포장하여 새로운 진실과 사실로 바꿀 수 있다.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행성과는 상관없는 사건으로 선거에서 불리해지자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은 즉시 행성 문제를 대중에게 일파만파 알리고 위급한 순간을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자기뿐임을 강조하며 해결자로 나선다. 정치 지도자의 논설 제1원리에 충실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노력했지만 성공한 이는 없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한 표를 던져달라.


정치 지도자를 움직이는 이는 투표권을 소유한 시민이 아니라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인이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이 지구에 도달하기 전에 이를 우주에서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미항공우주국은 행성을 향해 우주선을 발사했다. 하지만 1분 남짓 지났을 때, 우주선은 궤도를 수정하여 지구로 돌아왔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손전화기에 접목하여 다국적 기업을 만든 한 기업인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에 지구에는 매장량이 얼마 남지 않은 희귀 광물이 다량 섞여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지구의 미래보다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에 박혀 있는 희귀 광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 관심은 인류의 미래를 향한 애정으로 포장되어야 한다. 희귀 광물만 행성에서 온전하게 채취할 수 있다면, 이 광물을 사용하여 만든 최첨단 장비로 인류의 가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무척이나 낙관적인 견해를 내세워 시민을 설득하려 애썼다. 과학은 가설과 실험, 증명을 통해 발전한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을 공중에서 안전하게 분해하여 태평양 혹은 대서양에 떨어뜨린다는 '과학적' 가설은 실험을 통해 증명된 적이 없다. 할 수 있다던 기업인의 의지는 최첨단 과학 장비의 오차로 수포로 돌아갔고, 반드시 해내겠다던 기업인은 실패했을 때를 위해 준비해둔 우주선을 타고 반드시 살겠다는 신념으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수 만 년간 우주를 급속 냉각된 상태로 여행한다. 그가 마음에 품은 핵심가치는 결국 나만 잘 먹고 잘 살기였다.


마지막으로 현시대 인간의 현실 판단 능력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남기고 간 글의 위대성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 글을 읽어낸 현시대 인간은 아주 적다. 왜 그럴까? 문학 작품 또한 시대정신이 남긴 유산임을 감안하면,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며 산 시대와 현시대 우리가 글을 쓰며 사는 시대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남기고 간 문장이 긴 글을 현시대 인간의 두뇌는 적당한 훈련 없이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누리망과 손전화기에 적응한 두뇌는 읽는데 5초 이상 걸리는 문장을 부담스러워한다. 천문학교수 랜들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에 관해 설명할 때, 이를 듣고 있던 사회자는 당황했다. 당황스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두 사회자가 택한 건 머릿속에 남은 짧은 문장을 뒤틀어 해석하여 랜들 교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당황스러워하는 랜들 교수를 비꼬아 웃음을 자아냈다. 하늘을 바라보라는 케이트와 랜들의 진정성 있는 말과 표정보다는 손전화기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누리소통망을 통해 현실을 접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서서히 하늘을 쳐다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요함과 적막감이 가득한 밤하늘을 고독하게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던가? 하늘 위를 쳐다보라는 영화 제목은 어쩌면 우리 마음속을 드려다 보라는 말을 비꼬아한 말일 수도 있다. 홀로 올려다 본 하늘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건 하늘에 투영된 우리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대자연 앞에 선 한 절대 인간의 절대 한계성. 


2022년 1월 1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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