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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Feb 06. 2022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2021)

당신은 진짜 한국인입니까? 짜가 한국인입니까?

전 한국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가 난 참 좋다. 시합 전이나 시합을 할 때, 시합이 끝난 후에도 좀처럼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는 그를 보고 네일 아담스Neil Adams는 '포커 페이스Poker Face'라고 불렀다. 유도를 그리 잘하지 못했던 평범한 아이였던 안창림 선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의 꿈>이란 글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재능이 부족하면 남보다 3배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중학생 안창림이 마음에 품은 생각이었다. 유도 경기에서 패배하면 가족이 슬퍼하는 걸 알았단다. 가족에게 슬픔을 안기기 싫어서 남들보다 3배 더 노력했을 테고, 슬퍼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자기도 슬퍼지기 때문에 몸 곳곳에 근육이 불어가듯이 얼굴에도 근육이 생겼나 보다. 감정을 감추기 위한 근육이. 안창림 선수는 그 후 유도 명문 쓰쿠바 대학에 입학했고, 2012년 전 일본 학생선수권 66kg 이하급에서 1위를 달성했다. 대학부 감독은 일본 귀화를 권유했지만 안창림 선수는 한국으로 왔고,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내가 여전히 좋아하는 안창림 선수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안창림 선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안창림 선수의 부모님에 관한 영화이다. 안창림 선수의 부모에게 일본 사회에서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건 또 다른 전쟁 같은 삶임을 가르쳐준 안창림 선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창림 선수를 알든지 모르든지,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던지와는 상관없이 이 영화는 한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며 남의 나라 일본에서 사는 한민족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27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 두 아들을 낳아 "너희들은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이란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는 나에 관한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민족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규정하여 부른다. 왜 하필 조선인이지? 역사에서 사라진 지 100년도 넘은 나라인데, 왜 하필 조선이란 국호로 간직하여 정체성으로 만들었을까? 일본에 한민족 사람들이 건너가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시기가 일제식민기였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조선인을 하등 민족으로 규정했던 일본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반도를 병참 기지화했고, 한국인을 일회용 노동력으로 사용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은 6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나는 모든 자연자원을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 확보를 위해 사용했으니 살 길을 찾아서 조선인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를 읽다 보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다. 남미에 사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굶어 죽고, 차량 사고로 죽고, 배가 뒤집어 죽는 사건 사고에 대한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일제 식민기에 조선인이 당면했던 현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해방 직후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수는 약 200만 명에 육박했다.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의 삶과,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인 2세의 삶은 시작부터 멸시와 천대, 학대로 가득했다. 조센징. 조선인 새끼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진 멸시였고, 천대였고, 학대였다. 해방을 시작으로 150만 명의 조선인은 일본을 떠나 조선으로 돌아갔다. 기구하고도 복잡한 인생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일본에 남은 조선인은 십시일반 하여 조선인이 모여 사는 곳에 조선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일본 곳곳에 600개의 조선학교가 세워졌다. 민족성은 말과 글에서 시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민족성만 마음에 품을 수 있다면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일본의 한글학교에는 이제 재일조선인 4세와 5세가 다니고 있다.


          김철민 감독은 2002년 금강산 관광에서 처음 만난 재일조선인에 대한 호기심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일본에 사는 같은 말과 글로 소통할 수 있기에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의 삶에 관해 알고 싶었다. 왜 이들은 멸시와 천대를 감내하면서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기를 원할까? 그렇게 시작한 재일조선인에 관한 취재는 18년간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국사 정권기, 민주화를 직접 경험했거나 지켜보며 살아온 1세대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그런 1세대로부터 확고한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성을 왜 잃지 않고 간직해야만 하는지를 정체성 재형성 과정을 거쳐 체득한 후 후세 교육과 재일조선인의 정체성 보전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고 있는 2세대, 1세대와 2세대의 헌신과 희생을 발판으로 일본인으로 귀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어지는 멸시와 천대를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현재를 살아내는 3세대,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 준 강인한 정체성을 몸에 품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조선학교에서 공부하는 4세대와 5세대를 김철민 감독은 이 영화 속에 담아냈다.


          일본인은 재외조선인에게 지금도 여전히 냉담하다. 2010년부터는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 무상화 원칙을 철회했고, 지방지원금도 중단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재외조선인은 매주일 조선학교 학생은 학생대로, 학생들의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재외조선인 단체는 단체대로 조선학교 지원 재개를 위한 운동을 매주일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재외조선인의 대대적 귀화를 위해 일본 아니면 조선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자세로 응하고 있다. 문제는 재외조선인에게는 다시 돌아갈 조선이란 나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과 북한. 재외조선인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까? 한국으로 유학 와 의학을 공부했던 강종헌 씨는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 헌법 반대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만든 간첩조작 사건의 희생자였다. 간첩이란 딱지를 강종헌 씨 가슴에 강제로 붙인 후 한국은 강종헌 씨에게 냉정하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교도소에서 보낸 13년이란 시간을 참아낼 수 있었던 이유로 그는 그곳에서 자기보다 더 처참한 운명의 사슬에 매인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선배를 만났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전후에 이승만 정권이 간첩으로 몰아 교도소에 수감했던 이들이 강종헌 씨를 위로했다. 교도에서 강종헌 씨는 다짐했단다.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살리라." 그가 말했다. "남도, 북도, 내 조국이요. 한반도 전체가 내 조국이요."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두 아들에게 제대로 된 민족성을 심어주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미국 사회에서 한글학교는 대학능력 평가를 미리 염두에 둔 학부모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한글 실력을 어릴 적부터 키워주거나 가지고 있는 실력을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 데려오는 장소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30, 40대 교인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으로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중등부와 고등부를, 한 걸음 더 내디뎌, 영어만 사용하는 영어 회중 목회를 세운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 사용하면 왠지 모르게 유식해 보이고 부자스러워 보이는 환상이 미국인과 미국 사회를 우러러보는 선입견과 편견, 열등의식에서 비롯되었다면, 미국 사회에서 영어를 한글보다 고등 언어로 생각하는 믿음은 한국은 영원히 미국보다는 저급한 나라라는 왜곡된 확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능하면 미국인 흉내를 내며 살려고 애쓰는 재미교포의 삶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속 빈 강정이란 생각이 든다. 정착 미국인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고, 꼭 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면 정신 바짝 차리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곡하게 호소하듯 떠듬떠듬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한국 사람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면 마침표와 쉼표를 영어 단어로 착각한 채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영어 단어를 대화 속에 섞으며 묘한 자아도취에 젖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일본어를 일본인처럼 사용하지만 한글을 배우고, 한글 속에 담긴 민족성을 몸속에 심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가장 잘 맞는 언어인 한글을 소중하게 아끼고 가꾸기보다는 영어로 포장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쓸 수 없는 언어로 냉대하는 한국인과 재미교포들. 


          재일조선인은 미국 사회에서 사는 나에게 노스님이 정신 차리라고 내 어깨에 내려치는 죽봉으로 다가왔다. 난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에서 떳떳함과 자부심을 느끼는가? 나는 내 나라 말속에 내 나라 정신이 담겨 있음을 확신하기에 내 나라 말을 제대로 잘 배워서 올바르게 사용하는데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며 사는가? 한글에 한국인의 민족성이 담겨 있다면 한글을 우습게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우리 되게 해 준 민족성에 침을 뱉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우린 우리에게 무료로 주어진 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가소롭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 그것도 북유럽에서 이민 온 후세가 사는 위스콘신에 있는 한 백인 교회에서 온통 백인에 둘러싸여 영어로 소통하며 살다 보니 한글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섬세한 현상을 하나하나 손으로 어루만지듯이 묘사할 수 있는 한글이 있기에 오늘도 난 미국인이 세운 교회 담당 목사로서의 직무에 집중할 수 있다. 한글 속에 담긴 조선인의 정체성을 온전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간수할 수 있을 때만 미국인 교회를 담당하는 한국인 목사로서 내 사무실을 오늘도 지켜나갈 수 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내가 미국에서 사는 (조선) 한국인임을 다시 한번 마음판에 새겨 쓸 수 있게 도와준 영화다.


2022년 2월 5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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