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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Dec 04. 2023

Kramer vs. Kramer (1979)

양육권 분쟁은 자기와의 분쟁이었다.

테드 크레머Ted Kramer는 들뜬 마음으로 회사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테드는 흥에 겨워 아내 조안나에게 그날 그동안 일해온 광고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아내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냉장고 문을 열고 시원한 맥주 한 병을 꺼내 손에 든 테드를 향해 아내 조안나Joanna가 다가와 이 집에서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테드에게 아내가 한 번 더 말했다. 단호하고. 간결하게.


“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 거야.”


그날 저녁 조안나는 테드와 외동아들 빌리Billy를 집에 버려두고 자기를 찾아야 한다며 떠나갔다. 하룻밤 혹은 며칠 지나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아내가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 테드는 그동안 혼자서 빌리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은 흘러갔지만, 조안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테드는 집에 있는 조안나의 물건을 모아 상자에 담아 보이지 않는 곳에 놓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감하면서. 뜻하지 않는 순간 찾아온 아내와의 이별은 외동아들 빌리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조안나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회사 사장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 많으니 아들 빌리를 친척에게 맡기라고 빌리에게 조언했다. 테드는 단호했다. 아내는 잃었지만 아들은 잃고 싶지 않았다. 아들을 돌보는 일 때문에 회사 일에 차질이 생기게 하지는 않겠다며 사장을 설득했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일에만 신경을 쓰던 아빠가 아들과의 삶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발생하는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을 보여준다.


조안나가 집을 나간 다음날 아침 전날 밤에 대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빌리는 아빠로부터 엄마가 잠깐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학교에 가기 위해 아빠에게 아침밥을 차려 달라고 말한다. 결혼 전에는 아마도 엄마가, 결혼 후에는 조안나가 만들어준 음식만 먹고 살았던 테드에게 아침 밥상 차리기는 결코 쉽지 않은 숙제였다. 따뜻한 아침 커피를 내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테드는 계란 깨는 법도, 토스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계란과 우유를 어떤 그릇에 넣어 얼마만큼의 비율로 넣어 섞어야 하는지도, 프라이팬에서 빵 굽는 법도 알지 못했다. 아빠 되기 첫째 날부터 일상은 시련과 고난으로 가득했다.


엄마가 보고 싶은 아들이 유일하게 분노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아빠다. 회사일과 가정일에 치여 아들의 마음을 헤아릴 힘이 없는 아빠는 거실에서 어느 날 집안 일과 회사 일 사이를 바쁘게 오가기 시작했고, 그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은 빌리는 먹던 음식을 탁자와 바닥에 엎질렀다. 디자인 초안이 빌리가 쏟은 음식으로 망가졌다는 사실에 화가 난 테드는 아들을 강제로 방으로 데려가 방안에 머물면서 반성하라고 명령한다. 방 안에서 구슬프게 울려 나오는 빌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테드는 거실을 오가며 후회했고, 빌리에게 좋은 아빠로 남지 못하는 자기를 미워졌다. 독주를 조그만 컵에 부어 단숨에 들이켜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벽을 주먹으로 치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런 테드의 모습 속에서 자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성인 남자가 있다면 그는 아빠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만큼 기대는 커지고 상대방이 내 사랑과 내 기대에 차지 않으면 왜 우린 화가 날까? 한량없는 사랑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조건부의 사랑만을 건네줄 수밖에 없는 한 아빠의 옹졸함 속에서 모든 아빠는 자기를 발견한다.


집을 나간 조안나는 15개월 후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고향인 미국 서부로 돌아가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테드와 결혼 후 가정주부로 살면서 잃어버린 자존감과 자존심을 되찾아 뉴욕으로 돌아왔다. 일자리를 구했고, 교제 중인 남자 친구도 있다. 그러다 문득 아들 빌리를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마음에 생겼단다. 그런 그녀를 테드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빌리와 함께 보낸 15개월 동안 사회적 야망과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했고, 그런 경험을 통해 조안나가 빌리를 낳아 기르며 버텨내야 했을 고난과 시련을 이제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조안나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테드를 상대로 빌리의 양육권 소송을 시작했다. 테드 또한 변호사를 고용했고, 둘은 법정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판사 앞에서 자기가 상대방보다 더 나은 엄마 혹은 아빠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테드의 변호사는 조안나를 무책임한 엄마로 몰고 갔고, 조안나의 변호사는 테드를 무능력한 아빠로 몰고 갔다. 이미 이혼한 상태였지만, 법적 공방 속에서 테드는 조안나를 새로운 각도에서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조안나의 변호사가 자기를 아빠가 될 자격이 없는 남자로 만들 때, 그걸 지켜보며 당혹감에 흔들리는 조안나를 바라보며 분노보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있을 때 조금 더 잘할걸. 조안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빌리의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테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법원은 조안나의 손을 들어줬다. 


양육권 분쟁에서 승소한 조안나가 빌리를 데리러 테드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왔다. 빌리에게 왜 엄마와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던 테드는 전화 벨소리를 듣고 벽에 설치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조안나였다. 조안나는 테드와 단 둘이서 잠깐 이야기하길 원했다. 테드는 아파트 건물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테드를 보자마자 조안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테드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테드에게 오는 도중 빌리는 이미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테드는 말없이 조안나를 꼭 끌어안고 위로했다. 조안나를 홀로 엘리베이터에 태워 빌리가 사는 집이 있는 층으로 올려 보낸다. 조금씩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뒤에 서있는 테드는 조안나를 바라보고 있다. 애처로우면서도 미안하고,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사뭇 머뭇거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조금 더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라는 희망의 눈빛으로 조안나를 바라본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고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언제쯤 진짜 엄마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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