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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11. 2024

탈모 인구 천만 시대!

여전히 선입견과 편견 속에 갇힌 탈모

《KBS 다큐멘터리 공감》 시즌 1, 에피소드 163 〈힘내요, 빛나는 그대〉를 유튜브에서 시청했다.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윤사비나 씨는 교통사고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신 탈모증으로 인해 온몸에 나 있던 털이 이 주 만에 모두 빠졌다. 아침마다 해왔던 화장은 한순간에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에서 평범해지기 위한 처절한 싸움으로 변했다. 가발을 써야 했고, 눈썹을 그려야 했고, 속눈썹을 붙여야 했다. 배우로서 계속 활동하기 위해 가발을 썼지만, 무대에서 공연 중 혹시나 가발이 벗겨지지는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맡은 역할에 예전처럼 집중할 수도 없었다. 가발을 벗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벗을 수 없었다. 한 여름날 가발을 쓰고 생활한 후 집에 돌아와 가발을 벗을 때면 물 흐르듯 주르륵 얼굴 위로 쏟아지는 땀을 닦을 준비를 해야만 했다. 머리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땀이 증발할 때 사용해야 할 공기를 가발이 막고 있기에 땀이 가발과 머리 사이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면 그냥 가발을 벗고 다녀.”

남편의 진심이 어린 한마디에 윤사비나 씨는 가발을 벗고, 눈썹을 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눈썹도 붙이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나갔다. 그녀와 함께 기록 영화에 등장한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머리카락 없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저 아이는] 괜찮지 않아요. 괜찮은 척하는 거지. 당당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20대 후반부터 조금씩 머리카락의 굵기가 약해지더니 몇 가닥씩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15년이 지나자, 정수리에 주먹만 한 원을 그릴 정도로 탈모 현상이 뚜렷해졌다. 대학교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를 20년이 훌쩍 지나 만났더니 한결같이 머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묻는다. 유전이야. 간단명료한 대답이지만 이 말속에는 여러 대답이 담겨 있다. 겸허. 자포자기. 수긍. 화제를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기지 발휘. 얼마 전에 만나 함께 점심을 먹은 80대 초반 목사님은 나보고 한국에 가서 머리카락을 심으라고 충고하셨다. 당신도 한국에서 4만 모를 심었고 이를 통해 외모가 상당히 젊어졌다는 자랑도 덧붙이셨다. 탈모 현상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동안 탈모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탈모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었고, 원형 탈모가 심했던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며, 나 또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늙어가길 소망했다. 오늘 ChatGPT에게 탈모의 발생 원인에 관해 물어봤다. 유전적 요인, 호르몬 변화, 스트레스와 심리적 문제, 의료 조건 및 질병, 약물 및 치료, 환경적 요인, 영양 부족. 20년 전과 그리 달라진 게 없다. 드류 신학 대학원에서 만난 한 형이 생각난다. 찬양 사역에 재능이 있었던 형은 20대 초반부터 유전으로 인한 원형 탈모로 고심했고, 가발을 사서 썼다. 언젠가 한 모임에서 더는 가발을 쓰고 그렇지 않은 자기를 그런 자기인 척하며 살지는 않겠다고 그 형이 고백했다. 원했던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후 그 형의 카톡 사진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머리카락을 심은 게 틀림없다고 난 확신했다. 아내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한 목사는 흑채를 사용한다며 흑채를 사용할 의사가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자연스럽게 내 몸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싶다고 난 대답했다.      


가발을 벗고 있으면 옷을 벗고 길바닥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든다는 한 여인의 말이 생각난다. 머리카락이 없는 엄마를 둔 자녀가 친구로부터 놀림거리가 되고 왕따 대상이 되는 게 미안하고 무서워서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는 한 여인의 말도 생각난다. 최종 면접에서 합격하여 일자리를 구했지만, 다음날 일자리를 잃은 여인은 머리카락이 없는 이는 회사에서 일하기가 어렵다는 통보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자기가 낳아 기르는 어린아이 앞에서조차 가발을 벗을 수 없는 한 여인은 아이가 가발 벗은 자기를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겁이 나서 가발을 벗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꿈은 똑같았다. 가발을 벗고 밖으로 나가 주변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은 채 마음껏 걷고 싶어 했다. 가발을 쓰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 이들의 꿈이다.

      

윤사비나 씨를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녀에게 일본말로, 중국말로 대화를 시도한다. 한국말로 대답하면 예외 없이 어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냐고 놀라며 칭찬한다. 전신 탈모가 있는 한국 여자는 한국 여자일 수 없다는 편견과 선입견은 순식간에 당사자를 정신적 감옥에 가둔다. 탈모 인구 천만 시대. 한국 사람 5명 중 1명이 탈모와 함께 살아간다. 5명 중 1명은 여전히 주변 사람의 시선이 자기 머리에 와닿을 때마다 뜨끔뜨끔 놀라며 살아간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대낮을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5명 중 1명꼴로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다.

      

난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은 여자를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쌍꺼풀 수술의 기원이 미군을 상대로 이승만 정권이 기획했고 박정희 정권이 실행에 옮긴 집창촌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한국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미국에 두고 온 부인 혹은 애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 여자를 조금이나마 미국 여자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한 미 육군 군의관이 고안해 실험한 수술이 쌍꺼풀 수술이다. 미국 여자처럼 보이고 싶은 한국 여자의 미적 욕망 속에는 미국 남자로부터 따뜻한 시선을 얻어내야만 했던 집창촌 여인의 사랑 구걸 속 처절함이 희미하지만 여전히 놓여 있다. 2018년에 윤사비나 씨는 머리카락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정상적 인간과 비정상적 인간 사이를 구별하는 한국 사회에 하루하루 자기 삶을 통해 도전장을 건네고 있었다. 나 또한 내 삶을 가지고서 ‘정상’과 ‘비정상’이란 잣대로 인간을 억압하는 비정상적 사회에 도전하길 원한다. 변화란 달걀로 바위를 깨는 일이다.      

    

“The prison cannot fail to produce delinquents. It does so by the very type of existence that it imposes on its inmates: whether they are isolated in cells or whether they are given useless work, for which they will find no employment, it is, in any case, not ‘to think of man in society; it is to create an unnatural, useless and dangerous existence" (266).

                                           - Michel Foucault,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1995)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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