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받은 씁쓸한 전화 한 통이 하루 종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아이들 장난에서 시작한 몸싸움이 학교폭력으로, 어느 사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며 중재를 하던 선생님이 울먹거리며 연락을 주셨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폭대위')가 열리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급한 선생님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지원이 가능한 요양, 심리지원, 일시보호 등의 방법에 대하여 대략적인 안내를 마친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무엇보다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본다.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한다면, 양측 부모님과 당사자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합의하도록 노력해 주셔야 해요."
이처럼 뻔한 이야기를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선생님의 감정이 ‘상처’라는 단어 한 마디에 봇물처럼 터지며 한숨과 울먹임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를 꽤나 많기 봐왔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부모의 상처, 가해자와 부모의 상처만큼이나 깊은 것이 선생님의 상처라는 것은 아이의 싸움이 어른의 싸움이 되는 치열한 공방 속에 묻힌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의 확연히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히 선생님의 책임에 대한 문제이다. 지식과 인성을 키우는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 아이를 피해자로 방치한 선생님, 내 아이를 가해자로 몰아간 선생님’이라는 추궁은 교사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피해자와 가해자이기 이전에 자신이 아끼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부모님들의 원망과 불신, 갈등 조정자로서의 부족감, 어떤 것이 옳음인지 제대로 판단되지 않는 상황과 막막함 등 마음을 할퀴고 간 흔적들은 선생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효능감을 떨어트리고 무력감을 부추긴다. 어줍지 않게 사고를 수습하고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 한 사람은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존경받는 의지와 신념의 교육자이기보다 누더기가 된 마음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거창하게 ‘교권회복’ 또는 ‘선생님의 인권’을 들먹여 보더라도 이미 무너져자기조차 돌보기 힘들어진 선생님의 마음을 다시 아이들에게로 향하게 할 방법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학교폭력의 다른 이름 「외로움과 무관심」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교폭력의 가장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피해자와 부모의 삶은 학교에서 시작해 학교 밖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엉망이 되어버린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신문지면을 채우는 학교폭력 사건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최근에는 피해학생 아버지가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진행하던 중 겪게 된 심리적 ·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출처 : 노컷뉴스http://www.nocutnews.co.kr/news/4970318#csidxe07c52a662261fc9a26c82784f2b6c5).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이들의 싸움이 어엿한 아버지를 가정으로부터 빼앗아갔다. 무관심 속에서 외로움의 터널을 질주하던 아버지는,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희망이 내 아이와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참담함으로 온몸을 내던졌을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학생들 역시 깊은 우울과 불안,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피해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태에 장기간 놓이게 될 경우 신체화 증상과 같은 발달상 장애가 수반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학교생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이은희·공수자 ·이정숙, 2004)는 연구결과도 있다.
학교폭력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일상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개인, 가족, 집단의 삶을 파괴하며, 학교가 더 이상 아이들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 알고 계시나요?
최근에 실시된 어느 지역의 '17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학생의 77%가 초등학생이며, 지난 5년간 매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저연령화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은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교 562명(3.0%), 중학교 102명(0.5%), 고등학교 70명(0.3%) 순으로 지난해 설문 결과인 초등학교 467명(2.6%), 중학교 97명(0.5%), 고등학교 71명(0.3%)에 비해 다소 증가하는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피해 유형은 언어폭력 572명(33.8%), 집단 따돌림 및 괴롭힘 267명(15.8%), 신체폭행 223명(13.2%), 기타(스토킹, 사이버 괴롭힘, 금품갈취)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 장소는 교실 안(29.3%), 운동장(13.6%), 복도(13.5%), 피해 발생 시간은 쉬는 시간(32.4%), 점심시간(17.9%), 하교시간(14.4%) 순으로 나타났다.
위 조사 결과를 통하여 우려되는 점은 피해학생의 나이가 해마다 어려지는 ‘저연령화’ 추세이다. 또래 및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성장을 해야 할 시기에 겪는 심리적·신체적 통증의 발현은 언제,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지 예측과 가늠이 되지 않는다. 건강한 아동·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좋은 경험과 지지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폭력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시선과 행동은 무기력하다.
학교폭력,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의 문제로 인식할 때 해결 가능
학교폭력에 노출된 아이와 부모, 교사의 심리적 위기와 적대감이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의 악순환을 만든다는 점은 대부분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아이가 부모의 거울이듯, 학교가 지역사회의 거울이라는 인식이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인 실타래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부정적 감정과 행동을 학습한 뒤, 학교라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은밀하고 잔인하게 재연한다. 이 과정에서 헝클어지고 피폐해진 아이의 삶이 가족과 집단, 더 나아가 사회적 갈등을 증가시키는 연결고리를 유추해 본다면, 학교폭력의 문제를 더 이상 학교 내의 문제 또는 개인 간의 갈등으로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유럽 주요국의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 인식과 대응방안은 이러한 면에서 다양한 접근을 모색하도록 제안한다. 학교의 문제를 이웃과 지역사회, 사회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대응에 있어서도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을 최대한 활용한다. 강정현(2012)의 「유럽 주요국 학교폭력예방 정책」에 따르면 덴마크는 유럽 최초로 민․관․학이 협력한 <범죄예방위원회> 를 구성하여 사회적 연대를 통한 학교폭력의 문제해결에 힘쓰고 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그렇다면 사회를 구성하는 너와 나,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학교폭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배움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적절하지 않은 제도의 개선은 가장 시급한 문제이나 빠른 변화를 이루어내도록 압박하는 것 역시 우리의 관심과 힘이 모아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당신만의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학교폭력에 대한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