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길 colour Jul 07. 2020

Drawing_결코 아닙니다!

2020.07.07.달날






[Drawing_학교]








결코 아닙니다!!


외쳐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두 손을 가로저어 봤지만

나를 보는 선생님의 시선은 싸늘하다.


내 경험상 빛은 소리보다 빠르다.

선생님이라는 자의 무지막지한 손이

내 뺨을 후려친 순,

번개가 치며 뒤이어 굉음이 들렸다.

뺨이 얼얼함을 느낄 새도 없이

힘에 밀린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 순간이 공포스러워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일어나라는 상대방의 지시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벽에 몸을 기대고 섰다.


교실로 가라는 다음의 지시

서서히 열감이 느껴지는 뺨을 부여잡고,

서둘러 그 상황을 도망쳐 나왔다.

교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방금 있었던 이 무엇인지

겨우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뺨의 통증이 느껴졌다.

눈물이 쏟아지는데,

아픔과 억울함이 한가득 섞여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우정반지를 꼈다는 것이

체벌의 이유가 되었던 그날,

나는 증오와 분노, 깊은 무기력이

어떤 감정인지 알게 되었다.


 


체벌의 당사자,
아니 폭력의 가해자는

학년 주임이었다.

두꺼운 안경 렌즈 때문인지

유난히 불룩해 봬는 눈언저리가

개구리 왕눈이의 투투를 연상시키는 인상이었다.


"야!"

그날 등굣길에 투투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날 기분에 따라 폭력의 수위가 달라진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터라,

부름에 응답은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투투 앞에 섰다.


"야! 그 반지 뭐야!"

그제야 두 눈을 씰룩거리며

투투가 나를 불러 세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친한 친구와 나눠 낀 우정반지가 어찌나 좋았던지,

세수를 하는 내내 벗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온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학교로 향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입은 공포에 질려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반지 빼. 어린 게 연애질 하냐?!"

아차 싶었다.

무엇을 놓친 것에 대한 반성인지 모르지만,

손에서 뺀 반지를 투투에게 건네주며

목과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투투는 물러나는 내 팔을 부여잡고, 뺨을 때렸다.


순식간이었다.

공포와 압력에 뒤로 물러서려던 나를 잡은

투투의 억센 손이 풀린 데다,

뺨을 내리친 힘이 더해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학교에 대한 애정도 함께 주저앉았다.

그 이후, 선생님과 학교는

나에게 공포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학교 내 일상적 폭력이

폭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

내 연령대의 대부분이

이런 경험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뺨 한 대 맞은 걸 갖고 호들갑이라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 또는 일터의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폭력적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나는 두렵다.


이 작은 사건의 피해자로

나는 무기력감을 경험했다.

소문으로 널리 퍼진 투투의 공포스러운 행동을

학교라는 공간이 묵인함으로써,

'선도'라는 이름 아래 가해진 처벌은 정당화되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아이들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입을 닫은 채 폭력에 노출되었다.


투투의 폭력은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했으며,  

입을 여는 순간 폭력의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종종 벌겋게 달아오른 손자국을

얼굴에 달고 나타나는 아이들을 볼때마다,

두려운 존재가 나타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과각성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잊는 것이 최선이라는 친구들의 위로에 기대며,

내 감정을 들여다 볼 기회를 회피했다.

공포스러운 경험과 두려운 감정이 꽁지를 따라다니며,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을 제약했다.


단 한 번의 손찌검이 가진 파급력은 삶에도 드러났다.

누군가 나를 '야'라고 불렀을 때

내 몸에서 돋는 소름은

두려움과 불쾌감의 적나라한 표현이었다.

미처 생각에 이르기도 전에

불쑥 반응하는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불룩한 눈두덩이와 나를 잡던 거친 손

뺨을 감싼 채 주저앉던 내가 떠오르며

상대에게 투투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기도 모르게 '야'라고 나를 부르던

누군가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핏대를 세우며 나무라는 내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반지는 제대로 껴본 적이 없다.

프러포즈는 목걸이로 받았고,

결혼반지도 내 손에 오래 남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분에 따라 가해지는 일상적 폭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갖고 가야 할

부정적 기억을 심어주었다.




어른이 되면

투투를 찾아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를 재연하고 싶었다.

이제는 약한 노인이 되었을 투투의 말라비틀어진 잡고,

주춤거리거나 도망칠 수 없도록

있는 힘껏 얼굴을 후려치면

내동댕이 쳐진 투투가 반지를 내어놓는 상상을 하곤 했다.


먹고사는 일이 바빠지며 점차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당시의 기억과 상상이 올라오는 날은,

두려운 감정이 재경험되며 침묵하게 되었다.

투투의 표정과 혐오스러운 눈두덩이,

물러서는 나를 잡던 억센 손,

딱딱하고 차갑던 바닥과 벽의 감촉,

도망치듯 돌아서며 올랐던 계단과 사선형 천장,

국민학생이 되어 느끼는 마음과 몸의 통증이

작은 인형의 집 공간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선명해지고

다시금 각인되었다.


한낱 손찌검이 이렇게 아픈데,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상처를 받은 이들의 삶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잊고 싶은 기억,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내려놓아야 할 때이지만,

아직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다.





 달리에게 보냄 :)


 

 




 












매거진의 이전글 Drawing_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