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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길 colour Aug 24. 2020

Drawing_밤바다 영화제

2020.08.24.달날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바다에

영화 더해진 그곳을 향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출퇴근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미리 신청해두었던 소라 체험을 위해

이것저것 나름 준비해야 할 것들을 재빨리 챙기고,

구좌읍 하도리를 향한다.


가는 내내 뿌옇다 못해 거뭇하게 몰려오는 먹구름이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무언가를 즐기기에는

땡볕보다 촉촉한 날씨가 주는 고마움을 익히 알기에

축배를 들듯 캔맥주를 시원스레 연다.

경쾌한 소리에 운전대를 잡은 동생이 흠칫 놀란다.

빨대 커피는 여동생에게

얼음장 같은 보리차 아들님에게 건네고,

창을 내려 제주바람의 결을 느껴본다.

에어컨과 또 다른 맛,

내게는 라떼와 아메리카노의 차이 같다.


아들님이 좋아하는 '오마이걸'의 노래를

100개쯤 선곡해두고,

속도를 낸다.

몇 개나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어깨를 들썩이는 아들님을 옆에서 보자니

괜스레 흐뭇하다.

'오마이걸'에 대한 질투를 잠시 접어놓고,

아들님과 한편?!

아니 한팬이 되어도 좋을듯하다.

요즘 들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아들님의 입에서

'오마이걸 승희'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재잘대는 본성을 어떻게 감추고 살았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구좌읍 하도로 향하는 길에 들른 세화는

월정리를 방불케 한다.

즐비한 카페들이 늘어선 길에

제주다운 제주는 없는 듯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세화를 거쳐 한참 길을 헤매고 나서야

밤바다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한다.

가까운 길을 거부하고 먼 길을 돌고 나서야

정상 궤도로 회귀하는 여동생과 나는

닮은 꼴의 피로 맺어진 자매임을 굳건히 확인하며

서로를 향해 깔깔댄다.


크지 않은 행사장에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서성이고,

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영 중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몇 편 있었지만,

오늘은 내 욕심일랑 접어두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소라 체험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여동생과 아들님의 입수 과정을 지켜본다.

허리까지만 물이 차 크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인다.

하늘은 나름 새까맣게 물들어

녹아들어 갈 것 같은 여름의 열기를 가려주고,

몇 방울의 비를 흩뿌린다.

오들오들 춥다며 잔소리 섞인 짜증을 부리던 아들님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껏 즐기기에 너무 뻔하지 않을까라며

내심 고민스러웠던 생각은

너무 펀(fun)하게 놀아주는 아들님을 보며 한 번에 흩어진다.

몸을 쓰는 게 마냥 즐거운 아들님은

평소에 사진 찍기를 거부하던 자세는 내팽개치고,

나에게 인증샷을 요구한다.

친애하는 나의 적 아들님의 요구에

냅다 사진 몇 컷을 건져내고,

바위에 좀져앉은 자세로 바다를 마음에 새긴다.


멍하니 앉아있던 시간도 잠시,

엄마를 불러대는 아들님의 부름에 현실로 하강한 나는

망태기에 담긴 소라를 삼기 위해

삼춘들이 둘러앉은 천막으로 향한다.

훠어이 삶아진 소라를 두고 둘러앉은 우리는

최첨단 나무젓가락 기술로 속을 내어

빠알간 맛의 초고추장을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짭조름하다.

탱글탱글하다.

꿀맛을 기대했을 아들님은 첫맛이 본인의 기대와 달라

조금 당황스러운 눈치이나,

손을 놓지 않는다.

허한 속을 채우며 키득거리다 보니, 더 배가 고프다.

가까운 수산으로 국수를 먹으러 가기 위해,

채비를 한다.

제주의 바다를 따라 나선다.

















○  달리에게 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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