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 심는 날

농원 1일 차

by 리견

포천 농원 사장님과 상의를 드리며 본격적으로 잣나무를 심기로 계획한다.

일단 밭의 대지경계선과 측량된 자료를 받아 1m 간격으로 그리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계획을 하다 보니 300평이라는 농지 면적이 초보에게는 쉽지 않구나를 느끼게 된다.


사장님 의견대로 2m 간격으로 먼저 계획을 했지만,

예산이 맞지 않아 3.5m 간격으로 조정하게 된다.


간격이 무엇이 중요한가 할 수 있지만, 2m 간격으로 식재를 계획했을 때는 약 100주,

3.5m 간격으로 식재를 하게 되면 약 73주를 심을 수 있어, 27주가 줄어들게 되고,

1주당 11,000원이니 약 30만 원가량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3.5m가 된 만큼 나무 사이사이 간격이 넓어 조금 휑해 보이겠고 나라는 생각이 들고,

첫술에 배부르랴,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잣나무 식재 계획을 세워본다.


그렇게 잣나무를 얼마큼 심을지를 계산하고 포천 사장님과 상의하여 70주 잣나무를 받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잣나무를 받기 전날, 농지를 깔끔하게 정리해 두려 평소에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나 밭으로 향했다. 눈이 아른거린 상태로 새벽 5시 30분을 가리키는 핸드폰을 보며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한다.


농원으로 향하는 차도에 들어서자 새벽마다 부지런히 일을 나가시는 분들의 차량들이 보이고,

그 사이에 있는 나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 나름의 전공 일은 밤새서 하지만, 워낙 불규칙한 라이프스타일이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을 하는 분들 사이에서 함께 운전을 하니 매우 어색하달까.


농원에 도착했다. 스산하게 짙은 물안개가 잔뜩 끼어있었고, 쓱쓱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스님이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계셨다. 조용히 인사를 드리고 농원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새벽에 현충사 앞을 쓸고 계시는 스님
우리 밭은 새벽에 안개가 정말 짙다.

작년 한 해를 지나면서 무수히 많은 잡초들이 자랐다가 가을을 맞이하며 시들고, 땅 위에 서로 얼기설기 얽혀 굳은 채 겨울의 추위를 견딘 흔적들로 덮여있었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여있어 막막하던 찰나, 저 아래에서 그릉그릉 굉음이 들려왔다. 도와주시겠다고 오신 아버지는 굉음이 나는 쪽을 바라보시더니,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우리 쪽으로 그 굉음을 몰아오시더니, 트랙터 아저씨와 함께 올라오셔서 밭을 전부 갈아엎기 시작했다. 파괴적으로 솎아지는 땅에 흙들은 스펀지처럼 보송보송해졌고, 하루 반나절은 해야 할 것 같은 작업량이 순식간에 끝나버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갈린 땅


하지만 결과와 달리, 나는 부모님과 작은 다툼이 있었다. 부모님은 워낙 할아버지 할머니 따라 농사짓는 걸 도우셨던 경험도 있고 하니, 두 분의 경험에 의존하며 계획과 달리 생각하시는 데로 진행하려 했고, 나는 농사가 어느 정도 실패하더라도 계획한 만큼 진행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의견이 엇갈려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많은 대화와 결정 논리를 세울 수 있었어야 했다.


가족과는 항상 행복했다. 하지만 어떤 일을 같이한 다는 것은 일상과 같은 연장선이어선 안됨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지시하는 위치였고, 길을 안내하는 존재셨고, 나는 그 말씀을 따르며 살다가 직접 농원을 짓는 과정에서 나의 의견들을 지키려면 두 분을 설득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가진채 잠이 들었다.


도착하니 이미 잣나무가 실려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나는 일어나 잣나무를 싣는 곳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포천 일동면, 나에겐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포천은 가까우면 20분 내로 도착하는 고모리가 있는가 하면 1시간을 넘게 운전을 해야 도착하는 일동면이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큰 시가 포천시였다는게 체감이 된달까.


일동면에 도착하니 이미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일을 끝내고 분주하게 비닐하우스를 치고 있는 농원 사장님.

출발하면 되나 싶었는데, 아직 받으셔야 할 게 있다면서 기다리게 하셨다.

농자재 영수증, 그리고 재선충 미감염 확인증을 배부받아 나에게 전달해 주셨다.


실려있는 잣나무들 뿌리가 건조해질까 늦지 않게 출발했다.


잣나무 이식 계획서

계획은 심플하다. 잣나무를 실어 도착하면 3.5m 간격으로 잣나무를 심고 300평을 심고 나면 끝이 난다.

하지만 이 단순한 한 문장 속에는 적지 않은 노동의 시간이 담겨있다. 잣나무가 심어지는 구덩이는 고작 30*30cm이다. 하지만 한 30개 정도를 파고 있다 보면 몸에 오는 무리보다도, 이게 언제쯤 끝이 날까, 마치 장거리로 런닝할때 끝이 보이지 않는 심리처럼 다가온다.


시간의 끝은 어디인가 땅만 보며 열심히 간격 맞춰 구덩이를 파고 잣나무를 심고 하다 보니, 어느새 산비탈이 옆에 있는 게 느껴졌고, 드디어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휑하다, 여전히.

1m 높이의 70그루는 이 밭을 메우기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은은하게 넘어오는 솔향과 바람에 휘날리는 묘목들을 보며 우리는 다음을 상상하게 했다.

사이사이 공간에서 심고 가꾸고 싶은 농원, 정원의 요소들이 생각이 났고,

무엇보다 우리는 도심 속에서 생활하며 느낄 수 없는 감각이 들어왔고, 우리 가족이 모여 노동과 그 이후에 찾아오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조금씩, 하지만 성실하게 이 공간을 채워나가며 의미 있는 공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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