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기다리며
어제 배달된다던 책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침에 초인종이 울리기에 책인가 싶었더니 아니다.
괜한 배신감과 걱정에 주문사이트로 들어가보니
'수하자 이사'를 사유로 미배달이 뜬다.
황당과 당황이다.
당장에 담당자 연락처로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00에서 책을 주ㅁ ㅜ ㄴ..."
"아... 00아파트 시죠?"
사정을 들어보니 다른 구역 담당이라 그 동네 아파트로 갔더니 그런 사람없다고 해서 어제 배달을 못했고 오늘 우리 구역 담당에게 책을 넘겼으니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하루이틀 책을 주문하고 받는 게 아닌데 이런 일은 처음이고, 주소에 동과 아파트 이름도 제대로 쓰여 있는데 무슨.... 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밑도 끝도 없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금은 측은하게 여겨져 '아~ 그럼 다행이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 도착은 안했지만 책은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몇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다 나는 당일 배송과 익일 배송의 노예가 되어버린 걸까?'
이 책을 지금 당장 읽지 않아도 된다.
나에겐 읽어야 할 책도, 당장 해야 할 일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책을 받자마자 책장을 한번 후루룩 넘기고 하루, 이틀 동안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게 될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말로는 느리게 살자고 해 놓고 정작 몸과 행동은 잽싸기 그지 없다.
만약 당일배송에 프리미엄 요금을 붙여 택배비를 청구한다면 나는 당일배송 선택했을까?
나는 왜 책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즐기지 못했을까?
나는 정말 이 책이 읽고 싶었나?
책을 더이상 꽂을 수가 없어 쌓기를 시작했고
올해는 사서 읽을 책, 빌려 읽을 책, 서서 읽을 책을 잘 구분해보자 해놓고 덜컥 사 버렸다.
이건 1,500원짜리 할인쿠폰 때문이다.
'한번 읽어볼까'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몇날을 그대로 두었다는 건 읽고 싶어,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은 아니었을텐데......
세일에, 할인쿠폰에 이끌려 백화점의 누워 있는 옷들 사이로 돌진하는 사람들을 비아냥 거렸던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책을 기다리며 별 생각을 다한다.
쓸데 없는 생각 그만하고 할 일이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