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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Mar 23. 2023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둘째 딸

‘모든 아이는 온전한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 시절엔 다 그렇게 시작했어..”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가 선을 보고 2달 만에 결혼을 했다는 그 시절의 나의 엄마... 그리고 나의 가족,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결혼하고  1년, 마르고 키가 크던 나의 엄마는 시댁의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1년 뒤 86년 젊은 부부에게 호랑이 같은 성격의 토끼 같은 첫 딸이 태어났다.


호랑이띠라서 그런가.. 성격이 호랑이.


첫 딸을 갖고서 임신중독증 증세가 있었다던 나의 엄마. 막달에 가까워서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어려움은 있었지만 아이와 산모 모두 무사했고 건강하게 출산을 마쳤다고 한다. 젊었던 나의 부모님 내외는 86년 어렵게 얻은 아이에게 생명의 신비를 느꼈고 인생의 첫 아이라는 큰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원수덩어리라고 말하더라.


첫 딸이 태어나고 지방에 살고 계셨던 시댁 어른들은 서울로 오셔서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섯째 아들 내외에게  


"첫딸은 집안 재산이야..
하지만 둘째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

나의 할머니 본인도 아들 다섯, 딸 둘. 줄줄이 아이를 일곱씩이나 낳았고 그 위아래로 아들 손주들이 또 많았지만 아들.. 아들.. 아들 타령하는 나의 할머니는 그런 시대를 살았던 할머니였다. 아들이 많은 집안인데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던 나의 친가. 엄마와 아빠에게는 꼭 달성해야 하는 특명 같은 말을 남겼지만 여섯째 아들 내외의 첫 딸 출산이 꽤나 기뻤는지 평생을 줄줄이 사탕 같은 자식을 낳은 할머니지만 평생 동안 전무후무하게도 경제권이 전혀 없었던 할머니는 여섯째 아들 내외에게 돈을 받아 들고서 본인이 직접 찾은 작명원에서 어여쁜 여섯째 부부 내외의 첫 손녀딸 이름을 받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2년 뒤

나의 엄마는 나를 낳았다.




"널 낳고서 나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도 못했어...

네 아빠는 네가 딸이라는 얘기를 듣고서 병원을 나가서 퇴원 때까지 오지도 않았고 네 친할머니는 미역국을 엎어버리고 나가선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하소연인 듯 혼잣말인 듯 어린 나를 붙잡고 엄마는 여럿회 동안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난하는 말들을 했었다.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던 말들이라 상처받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온몸에 퍼져 버린 바이러스처럼 곳곳에 나를 부정당하는 말들로 얼룩져 있었다.


엄마! 나도 그런 얘기 자꾸 들으면 낫지 않은 상처가 생겨...


어렸던 나는 불안했고 나의 존재가 어둠에 가려진 것 같았다. 그런 불안감은 꽤 오랫동안 나를 잠식했었고 사랑받기 위해서 발버둥 치며 사랑받고자 노력하는 아이로 성장해야만 했다.



그 이후


가엾던 나의 발버둥이 어느 정도 혼자 하는 짝사랑이 아닌 함께하는 사랑으로 돌아올 때쯤 나는 작고 소중하며 지금도 마음속으로 동생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뿐인... 태어날 당시 그 병원에서 가장 예뻤던 내 동생. 그렇게 나는 93년 늦봄 지금은 많은 터울이 지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꽤 터울이 있는 동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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