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다 Sep 07. 2023

그 엄마에 그 자식

‘예민한 엄마에 예민한 자식‘



‘ 예민한 엄마를 엄마로 두었습니다. ‘


필자에게는 평생 동안 살이라고는 쪄본 적이 없는 엄마가 있다. 평생 동안 군것질을 하지 않으신 편이시고.. 대부분의 날들이 입맛이라는 게 있어 본 적이 없다는 나의 엄마..


40 가까이 살다 보니 삶에서 돈이 자치하는 가치와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필자이지만 그래도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는 삶의 질이라고 생각을 한다.


삶의 질에서 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필자의 생각에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느끼며.. 맛있게 잘 먹는 게 얼마나 인생을 살면서 가성비 좋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인가.


그렇게 보면 나의 엄마는 평생이 안타까운 삶이 아닌가 싶다..


식욕이 없다 보니 잘 드시지 않는 나의 엄마는 굉장히 마른 편이다. 마른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굉장히 다들 예민하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내가 40 가까이 살면서 경험해 본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체적으로 마른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엄마도 그러하다. 굉장히 예민하고 항상 날이 서있다. 자신이 잘 먹지 못하니 음식을 먹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고.. 나는 못 먹는데 너네는 먹어?라는 생각이 드는지 외식을 하게 되면 음식 메뉴 선정하는데 엄마는 항상 우릴 불편하게 했다. 항상 밥을 먹는 내내 눈치를 보며 식사를 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우리 가족들은 외식을 하면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하게 식사를 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 유일하게 식사가 가능한 건 한식과 일식이다. 쌈밥 종류, 생선 조림이나 초밥, 풀떼기 정도.. 선택이 가능한 메뉴인데 그것 또한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


필자는 어릴 적 다양한 음식을 경험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어릴 때는 항상 엄마가 먹기 편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먹었고.. 그렇다 보니 어릴 적에는 거의 삼겹살을 포함 모든 종류의 고기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다. ( 수제비는 지금도 필자가 꺼려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자라면서 거의 먹어본 경험이 없었고 학교 급식으로 처음 접했다가 토를 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도 먹지 않는다. )


그렇다 보니 필자는 성인이 돼서야 다양한 음식들을

경험했고.. 지금은 필자는 거의 못 먹는 음식이 없지만.. 나의 남동생의 경우 남자인 거 치고는 아직도 가리는 음식이 너무 많다. ( 어릴 때부터 안 먹다 버릇하다 보니.. 음식을 많이 가리고 못 먹는 음식이 많다. )


음식도 편하게 못 먹으면 잠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을 텐데.. 나의 엄마는 잠 또한 쉽게 들지 못하며.. 예민함과 우울증, 불면이 있어서 십여 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를 복용한다. (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다. 나도 그러하다.. )


나의 엄마가 예민하고 또 우울증을 앓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그거에 대한 얘기도 나중에 다시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다.


우울증, 불면으로 등으로 인해 잠을 편하게 잘자지 못하니 대부분 날들이 히스테릭했으며 그 여파는 항상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런 나의 엄마를 보며 자라면서 어릴 적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고 엄마가 화가 났을까 봐 늘 전전긍긍하고 눈치 보며 무서워했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집 엄마들처럼 다정하지 않고.. 늘 이렇게 신경질적일까.. 왜 항상 예민하고 부정적이고 본인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걸.. 왜 가족들한테 화풀이를 할까.. 어릴 적에는 늘 이런 생각들을 하며 매일을 불안해하며 성장해 왔다.


필자는 유년의 기억이 남아있을 언제부터인가.. 어느새 늘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게 익숙해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도 그러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가 들고.. 같은 여자이기도 하다 보니... 평생을 예민하고 우울증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이런 엄마를 볼 때면 안타깝고 인간으로서 불쌍한 마음이 들곤 하는데.. 어쩌면 이기적으로 나의 생각만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이제는 엄마가 조금 더 자기 자신을 풀어놓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의 남은 삶을 위해서 또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한 번씩 나의 엄마는 거칠고 모진 단어로 쓰며 굳이 따로 살고 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화풀이를 하곤 한다. ( 집에는 같이 살고 있는 첫째 딸도 있다. )


‘ 아빠가 생활비를 넉넉하게 주냐. 나를 이해해 주길 하냐. 딸 들이 하나 같이 시집도 못 가고 있고.. 다른 집들은 다 시집, 장가가서 집 사고 차 사고 한다는데.. 너네는 모가 모자라서 결혼도 못하고 있냐. 다른 집들은 시집, 장가가고 따로 살아도 다 생활비 매달 준다는데.. 너네가 생활비를 주길 하냐.. 아니면 모아둔 돈이 얼마인지를 말을 해주길 하냐.. 아들 새끼 공무원 시험 공부 한다고 내가 맨날 쩔쩔매면서 생활비도 모자라는데 맨날 다른 음식 해다 바치면서 산다.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데..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너네가 나를 말려 죽이려 한다.. 우울증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너네는 모른다. 작은 집 엄마 친구도 우울증인데 죽기 전날 밤에 남편한테 산책 가자고 했는데 남편이 귀찮아서 안 나갔다니.. 그날 밤 안방에서 목을 맸다더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어.. 아들 새끼만 아니면 확 나도 세상 하직하고 싶어.. ‘


돌림 노래도 아니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날이면.. 그럴 때이면 나는 묵묵하게 그런 말들을 그냥 듣고 있는데.. 가끔은 정말.. 나도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갱년기가 수년째 계속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알고 있고.. 친정이 경상남도 통영인데 서울로 시집을 와서 주변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거의 없는 것도 알고 있고.. 아빠가 요새 남자들처럼 살가운 스타일이 아니어서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해주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식새끼들이 하나 같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게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예민한 엄마를 둔 나는.. 이래서 보고 자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의 안 좋은 표본처럼.. 엄마를 그대로 보고 배워 예민한 기질을 닮아버렸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엄마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엄마의 그런 모질고 거친 말들은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그런 말들은 내게 생채기를 준다. 어린 자식 아니고 다 큰 자식이지만 목숨을 가지고 협박성 멘트를 하는 건 하소연을 수십 년을 듣고 자란 나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고통을 가족 중 그나마 만만한 자식.. 나에게 항상 화풀이를 하는데.. 죽음을 들먹이며 화풀이를 하는 것이.. 그 자식에게 또한 영향을 끼치고 그 자녀 또한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는 걸 왜 모를까..


엄마의 화풀이가 있을 때면 나의 멘탈은 바닥으로 끌려 내려가고.. 부모가 기대하는 자식이 되지 못했다는 현실 때문에 처절하게 무너지곤 한다. 나의 엄마는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것을 아마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나 또한 꽤나 자주 오랜 시간 정신의학과를 다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 물론 나의 문제가 단지 엄마의 하소연 때문은 아니다.. )


나는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다. 너무 예민하고 스스로를 틀에 가두어 너무 힘들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런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던 그런 모습들을 안타깝게도 나는 닮아버렸고.. 배워 버렸다. 나도 나 스스로를 틀에 가두고 나를 힘들게 하며 그걸 감당하지 못해 한 번씩 바닥으로 끌려 내려가 무기력이라는 지옥을 경험하곤 한다.


나의 엄마가 좀 더 긍정적이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예민한 것을 좀 고쳐버려고 노력하는 분이었다면.. 나 포함 다른 자녀들도 예민하지 않고 건강하게.. 세상을 좀 더 풍족하게 바라보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세상을 한 번씩 생각하곤 한다.


이 글을 통해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은 그냥 나의 하소연 일 수도 있고.. 내가 언젠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게 된다면 그 자녀에게는..


나의 예민함을.. 나의 고통을 자녀에게 나누지 않으려 한다.


부모와 말이 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부모의 고통이나 예민함을 함께 얘기하고 차라리.. 이해를 부탁했더라면 나나 다른 자녀들이 지금 보다는 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힘들고 아픈 엄마를 원망하기보다는 가까이서 보는 입장에서 그녀의 삶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 그리고 우리들의 평생을.. 지금 현재 또한 눈치 보는 어른으로 성장한 우리도 안타깝고 불쌍하다. 그리고 그런 와이프와 자녀를 둔 아빠 또한 평생이 피곤함 삶인 것 같다.


우리 집에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들뿐이야..


필자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모가 되어본 적도 없고... 엄마의 입장으로 살아본 적은 없어서 온전히 모든 걸 공감할 수는 없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이 아닌 아픈 엄마에 대한 이해를 부탁했더라면 나의 평생을 좀 더 평온하게 살았을 것이며 최선을 다해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나의 소원은 잔잔한 호수처럼 살아가는... 나의 모든 날들이 그러하길... 바랄 뿐이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님들께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예민한 엄마는 예민한 자식을 만듭니다..

자녀가 성숙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자녀에게 평온과 안정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세요.



세상 그 무엇 보다도 사랑하는 엄마에게.. 아마도 평생 동안... 말하지 못하겠지. 이 나이에도 나는 늘 엄마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고... 마음속에 품은... 상처가 덧나고 덧나서 흉터가 된 나의 이야기.


평생 전하질 못 할 이야기를 여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봅니다.


사랑하는 엄마


당신의 평생이 고단했고.. 그로 인해 더욱 신경이 과민해졌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합니다.


앞으로의 살아갈 날들은 자식 생각이나 집안 생각이나 다른 것들을 좀 잊고서.. 본인만 생각하고 본인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찾아... 그 행복을 위해 노력하며 살았으면 해요.


70년 가까운 시간을 예민하게 힘들게 살았으니깐 앞으로의 시간들은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엄마.. 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목숨을 갖고서 하는 그런 협박성 말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너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어.. 그 많은 세월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니깐 엄마도 나를 좀 이해하고 배려해 줘요.. 부탁해요 엄마..


늘 사랑하고 아낍니다 어머니.. 언제나 행복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 속 언니 옷을 항상 내가 입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