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3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혹독한 결말

by 이마리 정환


오래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펼친 이유는 순전히 소설의 구성을 다시 살펴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어느새 구성보다는 다시 흡인력 있는 작가의 서사에 한껏 빠지고만 자신을 발견했다. 책을 읽은 지가 나흘 전인데도 가슴이 멍해서 -이유인즉 너무 자극적인 결말이어서- 문득문득 파자마 입은 두 소년이 떠올라 감히 독후감 같은 건 쓸 수도 없었다.

아마 영화로 접하신 분이나 이미 이 책을 읽어보신 분은 이미 충분히 겪은 충격이라 생각된다. 지금 책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처럼 스포일러는 피하고 싶어 불친절하게도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어쩌면 그건 인터넷상에 널려있을 테니까 말이다.


책의 삼분의 이 정도 갈 때까지 인종이나 이데올로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지만 독자는 이미 무섭고 지긋지긋한 독일군과 유태인을 상상하며 읽게 된다. 흔하디 흔한 유태인 이야기를 그것도 독일과 유태인의 어린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로 끌고 들어가 치를 떨게 만드는 더블린 출신의 존 보인의 문학적 테크놀로지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린 소년들의 우정 뒤에 도사린 악마 같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성향을 보며 독자는 섬찟하여 치를 떨게 된다. 소년들에게 행해지는 잔인한 폭력이나 폭언 한 마디 없음에도 독자를 숨죽이고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작가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부와 사상과 배경을 뛰어넘는 순수한 두 아이의 우정을 보며 어른인 독자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책을 덮을 즈음 충격을 받게 되는 점이라면 현존하는 책 가운데 이렇게 잔인한 결말이 또 있을까 해서다. 독일 소년이 친구 아버지를 찾는데 동참하기 위해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수용소 담을 넘는데서 끝나는 결말이라도 충분히 감동을 주고도 남으리라. 꼭 두 소년이 어른들 틈에 섞여 가스실에 갇히도록 해야만 하는가, 를 작가에게 묻고 싶다.

독일군의 잔학함을 증폭시켜 유태인에게 연민을 주려는 기획보다는 두 소년의 진한 우정 때문에 다른 유태인들은 거의 관심 밖이라는 느낌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된 기획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년들의 우정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아직 순수함이 살아있는 거라며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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