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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Dec 02. 2018

미국의 국립공원, 아치스(Arches)

그해 봄날

어떤 것들은 오랫동안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도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그게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여전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은 좋아했던 것들이나 어떻게든 나와 깊이 얽혀있는 것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 기억들 가운데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들은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기억이고 보면 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남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몇 번의 방문으로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아직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고 있다.  


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만큼 세상의 변화는 질주를 하고 있다. 물론 전에도 그랬지만 한 개인이 쌓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이 변화의 결과를 놓고 그것을 오롯이 해석해 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오래전에는 한 개인이나 집단이 세상의 흐름을 주도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들)가 세상의 대부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인정했다. 지금은 턱도 없는 이야기가 됐지만, 이것이 다만 지식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능력엔 한계가 있으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양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금은 인식의 외연이 넓어졌으므로 사람들이 훨씬 적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리라.


아치스 공원에 있는 바위들은 굉장히 오래전에 생겼다. 사람들이 발견하고 공원으로 만든 것이야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원에 있는 아치들, 갖은 모양의 바위들, 그 사이의 계곡과 봉우리들은 사람들이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고작 한 두 번, 기껏해야 서너 번 다녀와서 아치스가 어쩌고 저쩌고, 지형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이 좀 민망스러워 미리 설레발을 치고 넘어간다.


▲ 아치스 방문자 안내소에서 바라본 아치스 공원으로 가는 언덕

어디를 여행하든지 처음 찾아드는 낯선 곳엘 가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 구분하고 나누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땅에 있는 것들은 거의 비슷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나 그렇지 않은 것들 따질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비슷한 얼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영 다르게 보이고, 더 나아가서 같은 흙으로 된 바위들도 제 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저들이 같은 종류의 자연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치스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드는 생각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다른 곳 보다 아치 모양을 한 바위들이 널려있어서 공원 이름이 아치스 겠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아치 모양의 바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치 모양이 아닌 바위들이 훨씬 더 많고 아름답기도 하다.


▲  아치스 언덕을 오르면 이처럼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아치스 공원은 말하자면 산 위에 있다. 뾰족한 모양의 산이 아니라 봉우리가 없이 널찍한 모양의 산(이런 산을 Mesa라고 한다)이기도 하고, 산이 온통 바위 투성이라서 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뿐, 아치스 공원 방문자 안내소에서 공원으로 오르려면 가파른 고갯길을 운전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아치스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산 위에 서면서 펼쳐지는 드넓은 평원과 평 여기저기 솟아있는 붉은 바위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아치스 공원 이야기를 선뜻 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 나이든 화가와 그가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위

자연을 표현하는 방법은 참 많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등 미술의 방법이 있을 테고, 글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사진도 그 방법의 한 가지일 테다. 소리를 이용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래도 있고 음악도 있다. 소리와 영상을 이용한 방법도 있고... 모두 다 늘어놓기에는 너무 많다. 방법이야 어떻든 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의 방법을 골랐겠지만, 따지고 보면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을 이리저리 살피고, 눈을 위아래로 옮기다가 좌우로 돌리기도 하면서 사진의 밝기와 대상의 강조하고 싶은 곳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등등 여러 과정을 거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을 거쳐 찍은 사진은 대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꼈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선택은 오로지 자기에게 달려있다.

바위들마다 이름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만약 내게 이 바위 이름을 지어보라고 한다면 '봉수대'라고 부르고 싶다. 때마침 구름이 만들어준 그림이 봉수대를 생각나게 했다. 저 구름이 없었다면 봉수대까지 연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구름은 물리현상을 넘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낳고, 선물을 준다. 구름이 없는 하늘 사진은 밋밋할 때가 많은 까닭이다. 하늘에 구름이 없어 아쉬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구름은 적어도 내게는 하늘이 주는 선물이다.


▲ 코트 하우스, 세 명의 수다쟁이, 바벨탑, 양 바위, 만리장성...

공원의 전반부는 대형 바위들 천국이다. 길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는 거의 이름이 있고, 이름이 있는 바위에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주차장이 설치되어있다.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아치스 공원인데 아치스는 없고 웬 바위 덩어리들이냐고 눈길 한 번 던지고는 스치고 나면 결국 아치스 공원에서 볼만한 것은 그다지 많질 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상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 주변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것들이 있고, 셀 수 없을 만큼 매 순간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으며, 매 순간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눈을 사이버 세상으로 돌리면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다. 먼지처럼 많고 다양하며 헤아리기조차 힘든 것들 가운데 나와 관계를 맺고 연결되는 것은 아주 적다. 그들은 바로 내가 눈길을 주고 지긋이 바라보면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 라살 마운틴엔 늘 눈이 쌓여있다.

멋진 눈산을 배경으로 눈 앞에 펼쳐진 바위 무리들은 '옛날엔 모래언덕(Ancient Sand Dunes 또는 Petrified Sand Dunes)'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엔 모래 언덕이었다는 말인데, 따지고 보면 여기 아치스 공원의 모든 바위들이 모두  옛날에는 다 모래였다. 아치들도, 바위들도, 그리고 바닥도 모두 모래 바위인 까닭이다.


그럼 저 멋진 눈산의 이름은? 저곳은 만티 라살 국유림(Manti-La Sal National Forest)이고, 특히 눈 덮인 봉우리들을 라살 산맥(산맥은 너무 커 보이고, 산악 아니면 산군 정도; 몇 개의 산이 모여있음)이라고 한다. 흔히 라살 마운틴이라고 하기는 한다.  왜 이렇게 낱낱이 밝히냐 하면 아치스 공원을 돌다 보면 어디를 가나 저 라살 마운틴이 배경이 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붉은 바위 투성이인 아치스 공원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고나 할까.


▲  밸런스드 락은 모양이 그리 멋있어 보이지는 않다.

이 묘하게 생긴 바위는 균형 바위(Balanced Rock)라고 한다. 바위의 목에 균열이 생긴 것 같은데도 머리가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있어서 지은 이름 같다. 아마 겉 보기에는 갈라졌지만 속으로는 멀쩡해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쨌든 이 균형 바위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아치 바위는 하나도 없다. 아직 투덜거릴 필요는 없다. 여기 있는 바위들도 다른 어느 공원 못지않게 늠름하고 우람하므로 잘 살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이 바위도 역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볼 수 있고, 함께 인증 샷을 찍을 수도 있다. 힘이 좀 있다면 바위에 오르는 것도 누가 말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바위는 오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있으니 잘못하다간 크게 망신당하고 벌금도 물게 되므로 잘 살펴보아야 한다.


▲ 델리케이트 아치(Delicate Arch)

미국 유타의 자동차 번호판엔 델리케이트 아치가 그려져 있다. 예전엔 캘리포니아가 요세미티의 엘 케피탄 그림을 썼는데, 요즘은 가지 선택 사항을 두고 취향에 맞는 번호판을 고를 있다. 물론 추가로 돈을 내야 하지만. 어쨌든 유타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는 아치를 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아치스 공원에서도 가장 이름 곳이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아치가 가장 아름답다거나 가장 멋지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찾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주차장에 차를 대기가 어렵다. 주차장이 공원 안에서 가장 넓은데도 차를 대려면 한참을 돌고 돌아야 한다.


그리고 저기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하므로 시간을 넉넉하게 챙겨두어야 한다. 이 아치가 멋있기는 하지만, 가는 길에 만나는 경치도 만만치 않으므로 걷는 시간 말고도 노는 시간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앞에서 라살 마운틴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도 저 건너편에서 아치의 배경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 델리케이트 아치 가는 길가엔 이런저런 경치가 펼쳐져있다

매사에 목표가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는 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삶이 기울어져 행복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공정하지 못하거나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다. 여행도 그렇다. 델리케이트 아치가 멋있다 한들 그곳까지 걸어가야지, 걷는 것을 생략하고 멀리서 망원경으로 살피거나 드론을 띄워 사진을 찍어온들 그것이 내 경험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왕복 두세 시간은 걸어야 다녀올 수 있는 이곳은 가는 길에 또 오는 길에 곁눈질도 하면서 노량으로 다녀오면 좋을 곳이다.


▲ 불타는 용광로(Fiery Furnace) 지역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 군상들을 볼 수 있다. 바로 용광로 지역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바위는 옛날에 쓰던 용광로와 닮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바위 군상들 가운데 아치가 하나 숨어있다고 한다.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랬을까 '서프라이즈 아치'라고 불리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 샌드 듄 아치(Sand Dune Arch)/터널 아치(Tunnel Arch)/파인트리 아치(Pine Tree Arch)
▲ 랜드스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

계속해서 아치들이 이어진다. 밖에도 많은 아치가 여기저기 널려있지만 하나하나 돌아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공원에 머물 있는 시간을 생각해 개씩 골라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들 모두 제각각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보든 그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살피고 둘러보면 된다. 어떤 것은 보고 어떤 것을 뺄지는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있다.  


어떤 것은 좀 걸어야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들도 있다. 공원 방문자 안내소에서 주는 지도를 보고 미리 살핀 다음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개인의 경험에 비춰볼 때 반드시 가야 할 곳을 미리 정해놓고 다니는 여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곳을 빠트리지 않기 위해 급히 서두른다거나 다른 곳은 그저 설렁설렁한다거나 하면 여행의 즐거움은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를 미리 살피되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머물고 느끼며 교감한다면 한층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경치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악마의 정원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든 조금씩 아쉬움을 남겨놓는 것이 다음을 위해 좋다. 일부러 남겨놓든 어쩔 수 없이 남든 아쉬움이 남으면 비록 다음에 다시 찾을 기회가 없다고 해도 조금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있으니 말이다.


돌아가는 길도 즐겁다. 들어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다른 시간이 주는 미묘한 차이들, 달라진 바람이 실어다 준 낯선 느낌을 크게 호흡하며 느껴보는 것도 즐겁다.



▲ 지는 해는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있다.

불그레한 햇살이 빚어내는 저녁 세상은 황홀하다.

세상이 달라지고,

가슴이 뛴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바위 군상들 속으로 사라질 무렵

하늘은 굵은 빛줄기 한 줌 남기고

자동차 긴 흔적에

시퍼런 서슬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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