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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an 15. 2019

미국의 비경, 유타 프라이 캐니언(Fry Canyon)

유타 아름다운 도로 95번을 달리다

겨울이 내려앉은 벌판

눈치 없는 꽃 한 송이.


먹구름 뒤덮여

천지 구분 못할 때

가녀린 틈을 타고

빛나는 한줄기 햇살.

여행이 참 맛있다.



내추럴 브리지스 준국립공원(Natural Bridges National Monument)에서 길을 되돌아 나오면 유타 95번 도로를 만난다. 오던 길로 계속 가려면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가면 된다. 하늘엔 비구름이 가득하고 차창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쓸쓸하다 못해 차라리 서럽다.


95번 길에서 보고 싶은 곳을 미리 조사해봤다. 이 길은 글렌 캐니언 국립 휴양지(Glen Canyon National Recreation Area)를 가까이에서 지나는 가장 큰길이므로 콜로라도 강과 강을 막아 생긴 파웰 호수(Lake Powell)가 빚은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여러 길에 이어져 있다. 시간을 좀 내서 이런 길들 가운데 몇 개를 탐험해보고 싶었다.


이 길의 오른쪽에는 또 다른 골짜기들이 있다. 95번 길은 남북으로 난 길인데 콜로라도 강은 동서로 이어져 골짜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길의 오른쪽에 난 골짜기를 타고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면 다름 아닌 캐니언랜즈 국립공원(Canyonlands National Park) 구역과 만난다. 그것도 캐니언 랜즈의 너른 골짜기 가운데 가장 험하다고 알려진 메이즈 구역(Maze Distric)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 비포장 길들 가운데 한두 개쯤은 타고 들어가 깊고 깊은 골짜기의 숨은 경치들을 보고 싶었다.

▲Canyonlands NP,  Needles District/Island in the Sky Distric,  ©2019 Traveler's Photo


95번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길, 24번은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Capitol Reef National Park)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95번을 섭렵한 뒤에는 캐피톨 리프를 다시 둘러보고 싶었다. 그동안 캐피톨 리프 공원은 서너 번쯤 구석구석 돌아보기는 했지만, 다시 같은 곳을 간다 한들 그 아름다운 골짜기들이 어디 갈리는 없기 때문에 같은 곳이라고 해도 몇 번이고 갈 생각이 있다. 게다가 아직 돌아보지 못한 구석이 남아있으므로 시간만 허락된다면 다시 들러도 좋기만 한 곳이다.

▲ Capitol Reef NP, Caneville/Cathedral Valley,  ©2019 Traveler's Photo


이 길이 끝나기 전, 길이 품고 있는 곳을 속속들이 둘러보고 싶었다. 문제는 시시각각 몰려드는 구름과 바람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이미 내추럴 브리지스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온 터라 해가 떨어지기까지 95번 길을 다 지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 둘러보지 못하면 어떤가? 길을 다 지나기 전 어둠이 덮은들 어떤가? 여행이란 늘 그런 것을, 또 사는 것이 그런 것을, 원하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는 것을.'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어 보지만 사람의 마음은 또 이렇게 느긋할 수만은 없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시간은 흐르고 날은 춥고...  

 ▲ Jacob's Chair ©2019 Traveler's Photo


그러다 문득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저만치 어두운 하늘을 뚫고 햇살 한줄기 비치고 있는데, 그 빛이 그렇게 고울수가 없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다 만난 빛처럼 처져있던 마음은 이내 밝아졌다. 일이 잘 풀리 않을 때 애써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때가 있다. 암담하여 두 손 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그 순간 번쩍하고 스치는 생각 한 조각이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알만하다. 그렇다고 짧은 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많은 경우에 이런 경험이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때로 아주 둔감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감각을 예민하게 날을 세워 작은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야곱의 의자가 있는 곳에서 뒤를 돌아봤다  ©2019 Traveler's Photo


이제 이번 여행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비록 짧은 순간이기는 해도 황홀하리만큼 다가왔던 하늘의 파노라마가 천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어스름한 풍경이 눈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여전히 충분하게 살피지 못한 주변의 풍경들이 머리에 들어와 깊숙한 인상으로 새겨진다.

너무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다음 여행을 기대하게 된다.

여행이 맛있다.

▲ 여행이 참 맛있을 때가 있다. ©2019 Traveler's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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