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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an 07. 2019

미국의 국립공원, 내추럴 브리지스 국립공원

건너지 못하는 다리

건너지 못하는 다리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리스 가까이 생 가브리엘 산맥(San Gabriel Mountines)에는 '아무 데도 못 가는 다리(Bridge to Nowhere)'가 있다. 이 다리는 골짜기를 건너기 위해 만들었으나, 건넌 뒤에는 이어지는 길이 없다. 아주 이상하지 않은가?
이 다리가 만들어진지는 오래되었다. 산을 넘어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다리를 세웠는데 큰 홍수가 나는 바람에 다리 건너편 길이 무너져내려 다시 복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다리는 멀쩡해서 '아무 데도 못 가는 다리'라고 소문이 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보러 다녀오는 등산 코스로 인기 있다. 골짜기 위에 세워진 아주 높은 다리라서 오늘날에는 여기에 밧줄을 묶어 번지 점프를 하는 곳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다리 아닌 다리"

'다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몸통에 붙어 지탱해주는 한 부분'이 하나며, '건너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다른 하나다. 그런데 이 다리도 아니고 저 다리도 아닌 다리가 있다.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는 내추럴 브리지스다. 이름만 다리인 이 다리가 셋이 있는 공원 '내추럴 브리지스 준국립공원'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뮬리 포인트를 나와 계속해서 잘 포장해놓은 261번 길을 따라나서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유타 주도 95번을 만난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2마일쯤 더 가면 공원으로 들어가는 275번 '내추럴 브리지 로드'를 만난다. 조금만 더 가면 방문자 안내소를 만나며 입장료 15불(모터사이클 10불, 도보나 자전거 7불, 15살 아래는 공짜)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들어갈 때 지도를 꼭 챙기자.

▲ 공원을 알리는 표시   ©2019 Traveler's Photo


"내추럴 브리지?"

내추럴 브리지들을 처음 보면 가까이 있는 아치스 공원의 아치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아치들과 다른 게 뭐야?"


이 둘은 알고 보면 많이 다르다. 만들어진 과정부터 다르다.

아치는 모래가 굳어 바위가 되는 과정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함으로써 바위들이 깨지고 떨어져 지금의 모양이 생겼다. 그런데 내추럴 브리지는 모래가 바람에 날려 골짜기 모양의 언덕이 생기고, 그다음 돌이 되는 과정에서 물이 흘러 바위가 깎이고 파여 골짜기가 깊어졌다. 많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 무르기가 다른 부분들이 파이는 정도가 달라 지금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이 살았어?"

▲ Horse Collar Ruin ©2019 Travelers Photo

이곳은 아주 오래전 약 9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머물며 삶의 터전을 일구던 곳이다. 여러 종족이 바꿔가며 살던 이곳은 300년 전까지 살다가 환경이 바뀌면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 뒤부터 더는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절벽의 가운데쯤 움푹 들어간 곳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흔적이 호스 칼라 루인(Horse Collar Ruin) 유적지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 뒤로 이곳에서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1883년 카스 하이트(Cass Hite)라는 사람이 금을 찾아 헤매다 내추럴 브리지를 찾아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04년 한 잡지에 소개하는 글과 함께 사진이 실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1908년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으로 정해 유타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국립공원 관리공단 관리체계에 들어가게 됐다.


"세월의 흔적"

내추럴 브리지들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처음 발견한 카스 하이트는 다리의 크기에 따라 ['시파푸 〉카치나 〉와코모' 순] 큰 것부터 대통령(President), 상원의원(Senator), 하원의원(Congressman)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1904년 잡지에 소개될 무렵 호러스 롱(Horace Long)이라는 사람은 자기 부인의 이름을 따서 오거스타(Augusta), 캐롤린(Caroline), 에드윈(Edwin)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러다가 1909년 공원을 확장하면서 공식으로 이름을 지어 불렀는데, 이 때는 이곳에 살던 원주민이었던 호피(Hopi)족의 언어로 이름을 붙여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내추럴 브리지스 공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다. 공원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길이 있다고 해도 지나면서 건너다보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눈에 잘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천천히 안을 들여다보면 참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Source=Scan from Brochure]

공원에는 모두 3개의 내추럴 브리지가 있다. 잘 닦인 길을 한쪽으로 모두 9마일을 돌면서 돌아보게 되어있다. 브리지가 있는 3곳에는 모두 전망대가 하나씩 있고, 각각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이곳에 살던 원주민의 주거 유적지를 살펴볼 수 있는 곳도 있다. 편의시설로는 야영장이 하나 있고, 잠시 앉아 쉬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피크닉 테이블이 있고, 화장실도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면 전망대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리들은 골짜기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살펴봐야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피고 싶으면 망원경을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다리까지 내려갔다 오면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오고 가는 길에 널려있는 이곳의 생물들과 바위들, 나무들, 풀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그들은 단순하게 나무가 아니며, 바위가 아니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걷는 길이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급해 내려갈 때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등산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내려갔다 올라오는 등산로는 힘이 더 들뿐만 아니라 체력을 잘 조절해야 한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로는 오르다 힘에 부치면 그만두고 내려오면 된다. 그런데 내려갔다 올라오는 등산로는 내려갈 때는 쉬워서 끝까지 내려갔다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중간에 포기할 수 없으며, 반드시 올라와야만 한다. 그러므로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올라올 것을 감안하여 다 내려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 가운데 첫 번째 다리 시파푸는 그들 가운데서도 경사가 가장 급하고, 모두 세 번 사다리를 타야 하고 계단도 오르내려야 한다. 그만큼 재미있는 길이므로 즐겁게 다녀올 수 있다.


시파푸 브리지: 왕복 1.4마일,  1-2시간

카치나 브리지: 왕복 1.4마일,  1-2시간

와코모 브리지: 왕복 0.5마일,  20-60분


▲ 시파푸 브리지로 내려가는 길 ©2019 Traveler's Photo


"다리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만나는 다리는 시파푸(Sipapu)로 높이 220피트, 넓이 268피트에 다다른다. 공원에서 가장 크다. 시파푸라는 말은 조상의 영혼이 이승으로 들오는 길목이라는 뜻으로 '조상이 나타나는 곳'을 의미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다리는 그리 커 보이질 않는다. 깊은 골짜기 속에 가려져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한눈에 보기에 그다지 흥미도 없어 보인다.


한 발 한 발아래로 내려갈수록 내려다볼 때와는 달리 다리가 조금씩 커 보이기 시작하더니 다리 아래 서면 크기에 압도된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아치(Arch)와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다리가 그저 물길에 쓸리고 깎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 시파푸 다리 ©2019 Travelers Photo


두 번째 다리는 카치나(Kachina)다. 공원에서 두 번째 가는 다리로 높이 210피트, 넓이 204피트다. 카치나는 호피족의 생활을 돌봐주는 영적인 존재들을 말하며, 조금 더 포괄적인 영적 존재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상들의 영혼을 의미한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영산(Soul Mt.)이 있다. 애리조나의 플래그 스텝에 있으며 애리조나에서 가장 높은 샌프란시스코 산(San Francisco Peak, 또는 Humphreys Peak; 12,635ft)이다. 그들은 조상의 영혼들이 이곳에 모여 산다고 믿고 있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가 내려야 하는데, 비구름은 늘 샌프란시스코 산에서 몰려와 비를 뿌려 농사를 짓게 하는 고마운 산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상의 영혼이 그곳에 살면서 구름을 보내주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넉넉하게 비를 뿌려 농사가 잘되면 주민들은 함께 모여 감사의 잔치를 벌이고는 했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화려하게 분장하고 춤을 추었는데, 이들의 이러한 분장을 카치나 분장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인형을 만들어 기념하기도 했는데, 이 인형을 카치나 인형이라고 불렀으며, 오늘날까지도 '카치나 인형'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마운 비를 내려주는 '조상의 은덕'이다.

▲ 카치나 브리지 ©2019 Travelers Photo


세 번째 다리는 와코모(Owachomo)다. 높이 106피트, 넓이 180피트로 세 개 가운데 가장 작다. 공원 마지막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나중에 생긴 가장 젊은 다리다. 와코모는 '돌무더기'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다리의 한쪽 받침 부분이 돌무더기로 되어있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전망대에서 다리까지 거리도 가장 가까운 와코모 다리는 그러나 바로 가까이에서 바라볼 때 결코 작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기는 높이가 무려 32미터가 넘으니 10층 건물 높이보다 높다. 아직 젊은 다리라서 그런지 다리의 윗부분이 널찍하고 평평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가장 다리 같이 보인다.  

▲ 와코모 브리지 ©2019 Travelers Photo


그런데 앞에서 한 가지 빠뜨리고 말을 못 한 것이 하나 있다. 공원을 둘러보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는데,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골짜기를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둘러보는 것이다. 이렇게 둘러보려면 처음 다리에서 마지막 다리까지 거리가 8.6마일이고, 다시 올라와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거리까지 생각하면 10마일 가까이 된다. 이렇게 돌려면 대여섯 시간은 필요하므로 충분한 물과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와코모 다리에 다다를 무렵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잰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까지 올라오려니, 언덕이라서 아무리 짧다고 해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마침 부는 찬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하고,

저 멀리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 숨어있을 해가 그리워진다.

▲ 멀찌감치 '곰의 귀(Bear Ears)' 공원이 보인다 ©2019 Travelers P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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