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에 홀리다 Mar 29. 2017

봄 나들이

너른들에서 들려오는 꽃소식



자연의 솜씨가 궁금하다

봄 볕이 따스하다. 바람은 좀 불지만 볕의 따스함은 휘발되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좀 더우면 한 겹 벗으면 되지, 뭐 피할 것까지야 없으니, 한낮의 25도를 넘나드는 날씨는 그리 대수롭지는 않다. 나는 그저 봄 볕을 쬐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나무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이 더 이상 앉아서 볕만 쬐게 놔두질 않는다. 좀 걸어보기로 했다. 파릇한 풀잎들이 계절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성한 군중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몇 송이 꽃이 눈에 띄었다. 보랏빛, 하양, 노랑... 의 들꽃들,  야리야리한 들꽃들만이 가지고 있는 예의 그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잘 꺾이지 않는 강인한 모습이다. 가까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느껴지는 것은 자연이 빚은 솜씨가 보통은 아니라는 것이다. 빛깔 하며, 꽃잎이 붙어있는 자리 하며, 꽃술마저 다른 빛을 띠고 받침대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꽃잎들까지, 게다가 꽃대도 나름의 빛깔이 있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느 솜씨 좋은 장인이 흉내는 낼 지언정 정말로 이렇게 조화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미 발길은 소풍이다

봄소풍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맘때쯤이면 먼 들녘 어딘가에는 들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겠지. 따스한 봄볕을 받은 몇 송이 꽃들의 춤사위에 마음이 설레어 결국 꼬임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이미 발길은 소풍이다. 앞뒤 가릴 것 없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각이 앞서면 몸이 따르기 어려우니 마음이 내킬 때 얼른 몸이 따라줘야 행복하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생각이 많은 것은 좋지만, 생각이 앞서고 몸이 따르지 않으면 사는 것이 힘들어지니 문제다. 늘 생기는 문제의 근원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떤 때는 이율배반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발걸음을 걷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어느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하는 것 아닐까? 때마침 춘분이다. 봄이다. 볕이 따스하다. 그리고 꽃이 부른다. 이거면 됐다. 이 정도면 됐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안으로 잠잠히 생명을 가름한다

어디면 어떤가? 누구 하고면 어떤가? 그도 아니면 혼자면 또 어떤가? 바람이 있고, 물이 있고, 구름이 떠가는 하늘이 보이고, 그리고 들에는 힘차게 약동하는 봄의 기지개가 널려있으면 됐다. 설령 꽃이 없으면 어떤가? 꽃이 없다고 봄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꽃이 없을 수도 있을까? 길을 나서고 보니 꽃이 없을 수도 있다. 파릇한 풀빛은 분명 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곳에 꽃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꽃은 없었다. 꽃잎과 꽃술이 선명하게 보이고, 꽃잎과 꽃대 사이를 받침대가 지키고 있어서 빛이 고운 꽃, 햇빛을 받으면 투명한 꽃잎이 눈부시게 빛나는, 온통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그런 꽃은 없었다. 그렇다고 풀밭에 널린 저 풀들에게 정말 꽃이 없는 걸까?  빛이 선명하지 않다고 꽃이 아닐까? 꽃잎이 작다고 꽃이 아닐까? 꽃대가 없다고 꽃이 아닐까? 그들도 살랑이는 바람에 춤을 추기도 하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에  반짝이며 뽐을 내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무르익은 햇살이 짙어지면 안으로 잠잠히 생명을 가름한다. 


편리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빛깔이 있으며,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느낌이 있다. 빛깔만이 아니라 모양도 제각각이라서 같은 빛깔이라고 해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거기에 저마다 다른 냄새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황홀하다는 등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재단하거나 분류하고 나누어 놓는다. 그리고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잡하여단순화 시키거나 명료화한다. 단순하면 좋을 때도 있지만, 편리한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편리나 단순화를 추구하는 것이 꼭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을 모양이나 형태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데 묶어 분류하고 나누어 차이는 없애고 공통점만 남기는 이런 체계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을까?


농염한 자태를 뽐낸다

창밖에는 야트막한 동산들이 스치고 한들거리는 풀잎들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아니, 즐겁다고 춤춘다. 따스한 봄바람에 겹다고. 햇살을 살짝살짝 가리는 옅은 안개가 잠시 멈춘 발걸음을 반긴다. 무엇을 찾아 헤매느냐고 다그치기라도 하듯 바람이 귓불을 스친다. 아니, 난 헤매는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들 가운데 꽃은 없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꽃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화려한 꽃잎으로 유혹하는 저 너른들의 꽃무리에 눈길이 간다. 그들이 무리 지어 뽐내고 있는 그 찬란함에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그래, 빛깔이 고운 것이 어디 너희 탓일까? 농염한 자태가 어디 너희의 잘못일까? 자연이란 필시 사람의 손길만 피한다면 적어도 사람이 만드는 어떤 것 보다도 더 풍성하고 아름답고 수려한 것을. 그래서 자연!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