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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un 30. 2017

미국의 국립공원, 브라이스 캐니언

붉은 마을의 파수꾼

땅에도 빛깔이 있다

평소에 지도 프로그램의 위성 지도를 이용하여 지구 곳곳을 검색하기를 즐기는데, 어느 날인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위성지도를 이용하여 사는 곳을 확인해보다가 지역에 따라서 땅의 빛깔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은 땅의 빛깔이 어떻든 상관없이 살아왔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특히 위성 지도를 이용하여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땅의 빛깔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위성 지도의 배율을 높여 검색해보면 땅빛의 다양성은 더 커진다. 하나하나 언급하기 조차 어려울 만큼 다양한 빛깔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막이 있고, 기후도 고온 건조한 지역인 캘리포니아는 그래도 푸른 편에 속한다. 아마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지나면서 주변 지역에 다양한 형태의 숲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부 지역은 여지없이

저 붉게 보이는 지역이 미국 남서부 지역의 Red Land다.     

사막의 빛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동쪽 지역 모하비 사막을 지나면서부터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에 이르면 땅은 사막의 모래 빛깔 그 자체다. 그러나 미국의 서부 지역에 속하는 애리조나와 유타, 뉴멕시코, 텍사스의 일부 지역으로 이동하면 땅은 붉은빛을 띠면서 한눈에 이 지역들임을 알아볼 수 있다. 콜로라도를 지나면서 땅은 다시 푸른빛을 띠기 시작하여 중부와 동부 지역까지 이어진다. 오늘은 그 붉은빛을 띠고 있는 땅, 그 가운데서도 유타 주에 있는 브라이스 국립공원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은 붉은 땅의 유타 가운데서도 거의 핵심에 해당할 만큼 붉은 기가 넘처나, 이미 오래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다.



브라이스 에피소드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이하 브라이스)은 우연찮게 겨울에만 다녀왔는데, 특히 올해 다녀온 브라이스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브라이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는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었다.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 입구에는 꽤 여럿의 숙소가 있는 데 그 가운데 한 곳을 예약하고 금요일 밤에 출발하여 다음 날 새벽녘에 도착했다. 체크 인을 위해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무실에 불이 꺼져있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여행지에서 가끔씩 있는 일이기도 해서 사무실 입구까지 갔는데, 뭔지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경우 보통은 주 사무실은 문을 닫고 건물 내 어느 곳으로 오라는 안내가 있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안내 문구가 있었다. "이 호텔은 겨울 동안은 문을 닫습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숙소를 잡아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어떨까 하고 동일한 예약 업체의 동일한 숙소를 검색해 보았다. 겨우내 문을 닫는다는 안내는 없었고, 대신 정상 가격의 열 배에 해당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여놓았다. 사람 심리가 비싼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예약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갑자기 잡은 숙소지만 멋진 곳이었다. 더구나 아침에 일어나니 살포시 눈까지 내려 기분을 북돋아 주었다]



삼천불(三千佛)

브라이스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생경한 풍경에 많이 놀랐었다. 수를 셀 수 없이 늘어서 있는 희한한 모양의 붉은 바위들, 그 사이사이 서 있는 푸른 나무들, 그리고 군데군데 남아있던 하얀 눈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은 생전 처음 보기도 하려니와 그 빛깔의 대비가 주는 강렬한 인상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얼핏 보기에 마치 어느 사찰에 있는 삼천불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바닥에서 자라는 종유석 같기도 한 이 괴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감탄밖에 달리 할 게 없다. 그 삼천불들은 붉은빛만 띄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붉은빛 아래로 흰색도 보이고, 그 아래로 회색이 보이기도 하며, 그 아래는 또 다른 빛깔이 보이기도 한다. 이 희한한 모양의 바위 군상들을 후두(Hoodoos;단어의 뜻은 '재수 없는 사람'이란다.)라고 부른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찾은 브라이스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난 해 보다 훨씬 많은 눈이 쌓여 붉은 바위를 덮고 있는 하얀 눈의 대비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많은 눈 때문에 일부 구간이 폐쇄되어 볼 수 없었다는 것인데, 작년의 기억을 덧붙여 보면 그 아쉬움도 조금은 상쇄된다. 

후두가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이 후두는 오히려 웃고있다.  



브라이스 캐년을 돌아보는 방식

브라이스에는 다른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꽤 여러 곳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공원에서 발행되는 안내서에 따르면 공원의 계곡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오른쪽 나무들은 불이났던 흔적이 역력하다.

첫 번째 전망대(Sunrise Point)가 있는 곳에서 브라이스 전망대(Bryce Point)까지 반원형 가까운 지형을 이루는 절반 부분과 몇 개의 굴곡진 지형을 이루는 나머지 부분이다. 이 첫 번째 반원형 부분을 브라이스 원형극장(Bryce Amphitheater)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원은 이 계곡의 형세에 따라서 큰 도로가 닦여져 있고, 이 도로를 주행하면서 전망대마다 돌아보는 구조로 되어있다. 도로는 마지막 전망대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게 되어 있는데, 시간이 좀 모자라다면 모든 전망대를 다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사물이라는 것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이기는 하지만, 공원의 구조상 비슷한 곳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어있는 까닭에 보이는 풍경이 상당히 비슷해서 세심하게 눈여겨보지 않으면 구분해 내기 힘들 정도다. 그러므로 듬성듬성 골라서 보되 주차 공간이 좀 넓은 곳이 좀 더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정히 시간이 모자라다면 원형극장 부분의 전망대만이라도 꼼꼼하게 돌아본다면 크게 후회는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 원형극장에 해당하는 부분의 경치가 비교적 더 볼 만하다는 얘기다.

큰 후두들에는 이름이 붙어있기는 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언뜻 보기에는 캐피톨 리프Capitol Reef 같기도 하다.
멀리 보이는 후두들은 어떤 모양인지 구분되지 않지만, 가까이 볼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을 준다.

[원형극장 지역에서 바라본 브라이스 캐년의 다양한 모습. 특히 이 지역은 원경으로 보이는 배경 산과 어울리는 브라이스 캐년의 각종 후두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퀸즈 가든의 파수꾼

브라이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립공원들이 그렇듯이 공원에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공원을 돌아볼 수 있도록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공원 순환로(Rim Trail)는 공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탐방로인데, 이곳에서 하루 이상의 시간을 보낼 생각이 있다면 이 순환로를 천천히 걸으면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경치도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공원에는 다양한 탐

방로가 개설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간에 맞추어 탐방로를 이용해 공원 깊숙한 곳까지 돌아본다면 경치를 조망할 때와는 또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지난해에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탐방로를 걸어보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올해는 그 가운데 짧지만 꽤 괜찮은 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퀸즈 가든 트레일(Queen's Garden Trail)은 브라이스의 여러 탐방로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로운 곳으로 꼽혀 다른 곳 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을 돌아본다.

공원의 주 도로를 타고 가다 처음 만나는 전망대가 '해 뜨는 언덕(Sunrise Point)'인데, 이곳에서 시작하는 탐방로가 바로 퀸즈 가든 트레일이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브라이스 캐년에 눈이 많이 내려 여러 탐방로가 막혀있었지만, 다행히도 퀸즈 가든 트레일은 열려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야트막한 언덕을 조금 오르면 곧바로 전망대가 나온다. 이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사실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에 대한 첫인상을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곳만 제대로 돌아본다면 다른 곳은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바위의 모양이나 전체적인 구조나 풍경이 뛰어난 곳이다. 이곳에 처음 섰을 때,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특이한 풍경이었다. 다시 찾았어도 여전히 그 감흥은 여전하다. 많이 쌓인 눈이 또 다른 느낌의 풍경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귓불이 약간 얼얼할 만큼 부는 차가운 바람과 파란 하늘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구름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보면 이렇듯 후두들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준다.


우선 이름이 눈길을 끈다. 탐방로 이름이 '퀸즈 가든'이라는 것은 해당 장소의 특징이 '퀸'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공원 안내서에는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탐방로의 마지막까지 가면 설명을 해놓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퀸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말하며, 영국 런던의 어느 궁전에 있는 왕관 쓴 동상과 닮은 바위가 있어서 이름을 '퀸즈 가든'이라고 이름 지었노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퀸즈 가든 트레일은 아침 시간이라 다행히 탐방로에 쌓인 눈이 녹지 않았다. 아무래도 눈이 온 지 며칠 지난 지라 그동안 좀 녹기도 하고 사람들이 밟기도 해서 길이 많이 미끄럽다. 이 눈이 녹으면 아마도 진흙탕이 될 공산이 크므로 서둘러 다녀오는 게 상책인 듯하여 서둘러 보았지만, 미끄러운 눈길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내 걸음을 붙잡는다. 퀸즈 가든 트레일은 사실 굉장히 짧은 길이다. 그러나 퀸즈 가든은 언덕 아래에 있으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길이라서 평소의 운동량에 따라서 조금은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채 1마일도 되지 않는 거리는 평소에 등산 좀 다니는 사람에게는 땀도 나지 않을 거리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눈이 쌓인 길은 겨울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게 할 만큼 발목을 잡는다.

                         [내려갈수록 경치는 더욱 흥미로와진다. 하늘은 높아지고, 후두는 가까워진다.]


퀸즈 가든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모양의 후두들이 즐비하다. 이 후두들을 찬찬히 살피며 걷다 보면 어느새 퀸즈 가든에 도착하게 된다. 짧은 길이지만 다양한 후두들과 더불어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길을 내기 위해 일부터 바위를 뚫어 문을 만들었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제각각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다음은 어떤 경치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걷는 것도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마치 관문을 지키는 파수꾼인 것처럼 그곳에는 다양한 모양의 후두들이 있는데, 위에서 바라볼 때의 후두들이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침내 도착한 퀸즈 가든은 화려한 버킹엄 궁전이 아니라 소박하고 아늑한 여염집 정원에 더 가깝다. 병풍처럼 둘려있는 후두들의 군상은 여왕의 왕실 근위병들 인양 당당하게 서있다. 정원의 곳곳을 찬찬히 살피며 그 모양이 주는 인상에 따라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것 또한 즐거운 재미를 선사한다.  

이런 관문을 3개 통과하면 비로소 여왕의 정원에 도착할 수 있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색다른 경치가 펼쳐지는 이 퀸즈 가든 트레일은 시간 내서 다녀올만 하다.
가까이 보이는 후두는 너무 다양해서 하나하나 뜯어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다보면 해떨어질라 천천히 훑어보기만 했다.
드디어 퀸즈가든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어떤 바위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사람의 시선의 높낮이에 따라서 사물이 달리 보이기도 하고,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사물은 또한 굉장히 달라 보이기도 한다. 짧은 거리지만 깊은 계곡을 내려갔다 오르면서 보이는 주변의 풍경들이 이러한 사실을 강하게 각인시켜준다. 위에서 바라보면서 "와!"하고 감탄했던 경외감은 계곡을 내려가면서 가까워지고, 뚜렷해지고, 상세해지는 풍경들과 함께 친근감으로 바뀌다가 높아지는 붉은 후두들의 높이와 멀리 보이는 하늘, 그리고 유유히 떠가는 구름의 움직임이 더해져 이윽고 다시 또 경외감으로 바뀐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까? 일상은 그저 한번 본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에 따라서 바라보다가 굳어져 결국 고정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자신을 돌아보아 살피려는 자세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고정관념, 타성, 관성, 편견... 주로 이런 단어들이 일상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면, 이어지은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다람쥐 쳇바퀴에 갇히는 꼴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주변의 사물과 환경이 실은 그들이 그곳에 없었다면 우리도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비단 내려다 보이는 풍경만 멋있는 것이 아니라, 올려다보는 경치도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다. 멀리서 한눈에 보는 관조적 풍경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또한 때때로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는 풍경도 신비롭고 경외스럽다. 

가운데 부분, 후두들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 모습이 보인다. 그의 눈에 나는 어찌 보일까...?



끝나지 않은 길

브라이스의 매력은 원형극장 지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첫인상이 이곳에 있다면 그 나머지들, 이를테면 브라이스를 설명하고, 반박하고, 인정하는 브라이스의 내용은 그곳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크고 작은 십여 개가 넘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 브라이스는 원형극장 지역을 벗어나면서부터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원형극장 지역은 반원형 형태의 지형 때문에 전망대를 돌면서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지역은 전망대마다 각기 다른 경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조금씩 다른 풍경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이 전망대를 다 돌아본 것은 아니고, 일부 전망대는 눈이 많이 내려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기 때문에  한두 개 인상적이었던 전망대를 소개한다.       


눈 때문에 폐쇄된 전망대 가운데 한 곳은 다소 유연하게 닫혀있었다. 약간의 주차 공간에 두어 대 차가 있길래 얼씨구나 차를 세웠다. 사방이 탁 트인 설경이 시원하다. 그 사이를 뚫고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인적 없는 한적한 눈길을 걷는 일은 여러 가지로 즐겁다. 뽀드득거리는 발걸음이 즐겁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얼굴이 즐겁다. 다른 이들이 없으니 뭐를 한들 책 잡힐 일이 없다.  일 킬로미터 정도를 걷는 동안 아무도 볼 수 없던 그곳에 갑자기 떠들썩한 사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저 앞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두머리인듯한 사람이 앞장선 것을 보니 단체 관광객이거나,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광객들일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발에는 눈 신을 신었는데, 앞장선 사람은 레인저다. 아마도 눈 신을 신고하는 눈밭 체험 프로그램... 뭐, 비슷한 프로그램이었나 보다. '눈 신을 신지 않은 우리도 잘 걸었는데...'하는 속마음은 이내 '재미있겠다!'하는 부러움으로 바뀐다.

젊은이들의 걸음걸이는 눈신을 신었는데도 경쾌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저 먼 벌판은 그러나  브라이스와는 달리 눈이 많지는 않았다. 이곳은 '파리아 강'을 볼 수 있는 전망대였는데, 사실 파리아 강이 그렇게 큰 강은 아니기도 하고 날이 좀 흐리기도 해서  강의 물줄기는 볼 수 없었다. 사실 파리아 강(Paria River)은 야외활동이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는 강이다. 이 강은 콜로라도 강의 지류로서 협곡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강이 흐르는 곳곳에는 꽤 이름난 협곡이 있다. 그중에 특히 벅스킨 협곡(Bucskin Gulch)은 미국에서 가장 길고, 폭이 좁은 협곡으로 특히 사진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강이 흐르는 구간에는 역사적. 생물학적. 지리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특정 구간은 허가 없이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 어쨌든 탁 트인 벌판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가까이 보이는 브라이스의 바위들은 기묘한 모양보다는 추위가 빚은 풍경 때문에 새삼 자연을 다시 보게 한다.  


인스퍼레이션 전망대(Inspiration Point)는 앞에서 설명한 삼천불(三千佛)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인스퍼레이션 전망대에 서는 순간 입이 다물어 지질 않을 정도로 많은 후두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후두들의 장관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종교적 경외감마저 들게 되는 것은 그 모습들 가운데 다만 삼천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이로운 자연의 힘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 선 각 개인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 절대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풍경에 그만 넋을 놓고 만다. 그랬다. 다만 서서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만한 한데, 거기에 다소의 바람과 기온, 그리고 구름이 합세해서 빚어내는 분위기는 더할 나위가 없다.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꽤 많은 후두들이 있는 브라이스 전망대(Bryce Point)는 그러나 인스퍼레이션 전망대와는 또 다른 경관을 보여준다. 인스퍼레이션 전망대에 비해 넓게 흩어져 분포되어 있는 후두들은 흰색이 좀 더 많이 섞여 있고, 쌓인 눈과 중간 지대의 녹지대와 후두들 사이사이로 난 나무들로 인해 극적인 느낌은 좀 덜하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공원의 마지막 전망대는 레인보우 전망대(Rainbow Point)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동안은 왜 레인보우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별 관심 없이 바라봤는데, 아마도 전망대에 오르면 보이는 후두의 배열이 마치 무지개처럼 반원형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수많은 후두들이 모여있는 이 장관을 보면서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레드 랜드(Red Land)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을 벗어나면 물론 황토 지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인근 지역에 레드 캐년(Red Canyon)과 코닥크롬 주립공원(Kodachrome Basin State Park), 코럴 핑크 주립공원(Coral Pink Sand Dunes State Park) 등 붉은 빛깔을 띤 공원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레드 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브라이스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이런 주립공원들과 묶어서 함께 돌아보는 것도 괜찮은 여행 계획이 될 것이다. 여행기가 늦어져 여름에 겨울 풍경을 소개하게 되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방문해도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UT12번 도로는 시닉 바이웨이(Scenic Byway) 중 하나다.

[미국 내 경치가 좋은 도로를 골라 시닉 바이 웨이로 지정했는데, 브라이스로 가는 관문처럼 보이는 이 아치는 실은 Scenic Byway 12 선상에 있는 Red Canyon의 일부다. 이 12번 도로 선상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할 거리가 쌓여 있는데,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도 실은 이 Scenic Byway 12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상세한 정보는  www.byways.org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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