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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un 25. 2017

미국의 국립공원, 피너클스

길 위의 여행

길을 나서다

두엄 내 풍겨오는 들판을 지나
놀빛 고운 산마루를 기어 넘고
울멍 줄멍 구름 골짜기를 감돌아
길은 저 혼자서 가고 있었다.

물비린내 풍기는 갯벌을 따라
끝없이 설레는 물이랑을 누벼서
마파람 몰아오는 수평선 너머로
길은 쉬지 않고 가고 있었다.

애달픔처럼 먼 바다를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나는
길을 따라, 길과 더불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항상 함께 다니는 나의 길.    /  김종상-'길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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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는 순간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놀랐다. 여행이야 늘 길을 따라 하는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은 특히 길을 따라 떠다녔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글의 시작은 이 시 한 편으로 갈음해도 되겠다 싶다. 이 시구절처럼 하루 동안 '참 많이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길 옆 농토에는 두엄이 살포시 얹혀있다.



길에서 잠들다

이번엔 숙소를 잡지 않고 길에서 자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허가된 장소 말고는 차를 세우고 잘 수 없다. 고속도로에서도 졸리면 길가에 세우고 자면 되겠지 하다가 벌금을 물게 된다. 간간히 설치되어 있는 휴게소(Rest Area)에는 주차 공간과 화장실, 피크닉 테이블 정도의 시설만 되어있다. 그래서 이곳은 장시간 운전하는 트럭 운전자들이 들러 쉬었다 가거나, 졸린 눈을 붙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장거리 여행자들도 잠시 쉬었다 가거나, 하룻밤 신세 지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공짜다. 피크닉 테이블이 있으니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이번 여행은 숙박 시설에서 자지 않고 바로 게소에서 노숙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도 가끔씩 이용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처음부터 대놓고 노숙을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숙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또 하나의 장점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잠자리가 좀 불편하니 아무래도 새벽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샤워 시설이 없으니 고양이 세수 정도만 해도 된다. 좀 부스럭거리다 보면 일출을 볼 수 있다. 자연경관이 괜찮은 곳이라면 어느 유명한 일출지 못지않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피크닉 테이블에서 간단한 조리(물 끓이기 정도)를 해서 먹거나, 준비한 음식을 챙겨 먹고 얼른 여행지로 출발할 수 있다.

휴게소에서 멋진 해돋이를 보는 것은 덤이다.

                                                이번 휴게소는 건축 양식도 멋지다. 야경과 아침의 모습

햇살은 사소한 곳까지 비춰준다.


길을 잃다

'길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그 '길을 만들었다'는 뜻이므로 그 길을 간다고 해서 개척자나 탐험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선택한 길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분명히 길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그 길로 들어서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 있는 동안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길을 막고 서 있어도 누가 나서서 뭐라고 하지 않아 고즈넉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길이 간혹 있다. 어쩌다가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이런 길은 남은 여행을 기분을 좋게 하면서도,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생명들, 풍경들, 그리고 간간히 자리 잡고 있는 농가들과 호젓한 만남을 갖게 한다. 매번 여행에서 이런 길과 조우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얼마쯤은 시간도 좀 생각해야 하고, 주머니 사정도 좀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라도 길을 잃어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산길은 그저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니다. 그곳을 지나다니는 생명체들이 벌인 생명활동의 부산물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비게이션이 두 가지 길을 제안한다. 하나는 가깝고 큰길,  또 하나는 멀고 작은 길,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길이다. 바쁜 일상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여행지에서는 이럴 경우 당연하게도 후자를 선택해야겠지. 이미 고속도로를 벗어나기 전부터 주변의 풍경에 넋이 나가 어디 내릴만한 데 없나 살피며 오던 길이다. 산길은 차가 겨우 비껴갈 정도로 좁다랗다. 이런 길이 좋다. 비포장이라면 더 좋겠지만, 포장한 지가 꽤 되어 비포장에 가까운 건 그나마 다행이다. 산길에 접어들자 정신이 번쩍 뜨일 만큼 맑은 공기, 시골 농경지에서 풍기는 퀴퀴한 두엄 냄새, 이른 아침 산에서 불어내려 오는 선선한 바람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아, 이 냄새 이 느낌이 좋다.  내비게이션이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고 종알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이 있으니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는 나올 테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래도 안된다면 길을 좀 더 가거나 그도 아니면 돌아 나오면 된다.

어떤 길을 가던지 그 길에 유혹당하면 그것으로 그 날의 일정은 먹었던 맘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길에서 길로

캘리포니아 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크고 나무도 있고 높으며 험한 산, 그리고 작고 나무가 적으며 동글동글한 동산이 그것이다. 앞의 대문 사진이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의 동산의 산세를 보여준다. 험한 산들은 주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밖의 산들이 동산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번 여행은 주로 이 동산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거쳐서 공원까지 가는 길이었다. 이런 산들에는 나무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듬성듬성 나있어서 주로 풀들이 자라고, 이른 봄이 되면 파릇한 풀과 더불어 야생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야생화가 질 무렵부터 그곳에 자란 풀들은 서서히 푸른빛을 잃기 시작하여 누렇게 물들다가 이내 황금빛으로 변한다. 이 산들은 사유지들이 많으며 주로 목장으로 활용되거나, 그냥 방치되어있다.

 


길은 이런 동산들 사이로 난 계곡을 타고 나있다. 때로는 급하게 동산을 휘돌다가 어느 순간에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오르락내리락하다가도 산맥의 언덕배기쯤에 이르러 잠시 멈추면 눈 아래로 펼쳐지는 광활한 황금벌판의 풍경에 그저 넋을 놓고 만다. 그 벌판의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동산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좁다란 도로들, 멀찌감치 떨어져 보일락 말락 하는 농가의 지붕,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지만, 왠지 그 농가의 지붕 어딘가에는 굴뚝이 있어 끼니때마다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릴 것만 같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이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별다른 교통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 시절, 아직 길이 없던 그 시절부터 이곳은 여러 생명들의 이동 통로였으리라. 처음에는 짐승들이 먹이를 사냥하거나 집을 짓고 드나드는 길로 이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짐승들의 흔적을 따라서 막대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을 테고, 사람의 흔적은 이내 풀을 말리고 다져져 작은 오솔길이 되었을 테지. 드나드는 사람이 늘자 길은 넓어지고, 탈 것이 생기자 길은 좀 더 넓어졌을 것이다. 그곳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캘리포니아의 기후는 그들이 결코 오래 머물게 놔두지는 않았으리라. 가끔씩이라도 머물러 있자면 그래도 물이 조금은 있어야 하니, 우물을 팠을 것이고, 그 주변엔 다른 곳과는 달리 자잘한 나무도 자라나 제법 푸른빛을 띠게 되었을 것이다. 길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굽이굽이 굽이치다 또 다른 길과 만나고 이어져 나중엔 다 이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고 탈 것이 생기면서 비가 와도 진흙탕이 되지 않는 길을 만들고 싶었겠지. 결국 길에서 흙은 사라지고 아스팔트로 채워 다니기 좋게 만들었겠지만,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토박이 생명들에게는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길은 때로는 몹시도 진기한 풍경을 보여주고는 하는데, 이 그림이 그 중 하나일 것 같다.  




길이 끝나는 곳, 시작하는 곳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도 어느 만큼 가다 보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고, 공기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과는 분위기가 영 다른 것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황금빛 찬란한 산과 들, 그 사이로 난 고즈넉한 길이 끝나갈 무렵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에 가려고 마음먹었던 그곳, 길을 달려오면서 잊어버렸던 그곳, 피너클스 국립공원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이면서 길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산세는 험하고, 나무가 많으며, 바위도 많은 산에 자리 잡고 있는 피너클스 국립공원은 달려온 길과 또 다른 길 위에 펼쳐진 풍경이다.  

길은 가다보면 달라보이기 시작하는 곳이 있다. 그곳으로부터 또 다른 생명들이 활동하는 길이다.




피너클스 국립공원

피너클스 국립공원은 미국 59개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젊고 규모는 매우 작으며, 연간 방문객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볼거리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원들과는 달리 요소요소에 설치된 전망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피너클스 국립공원은 작은데도 입구가 동쪽서쪽 두 곳이다. 즉,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가 없어서 공원 전체를 다 둘러보기 위해서는 한쪽을 먼저 본 다음, 자동차로는 약 한 시간여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또한 다른 공원들이 도로를 주행하면서 설치된 전망대에  들러 구경하거나, 시간이 있다면 트레일을 하면서 보는 구조인데 반해, 피너클스 국립공원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모든 것은 트레일을 해야 볼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약 5시간이 좀 넘는 트레일을 하면서 둘러볼 수 있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산 위에 있는 작은 호수까지만 다녀올 수도 있는데, 다양한 등산로가 설치되어 있으니, 자기 시간에 맞는 선택을 하면 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동편 입구로 들어가 호수까지 다녀왔다. 좀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더운 날씨에 먼 거리를 트레일 하는 것은 많은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는 뾰족 바위들(Pinnacles)이 이 공원의 주인공이다.


이미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몰아닥친 캘리포니아의 6월은 참 많이 덥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보니 햇살이 쨍쨍하여 산에 오르는 일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여기까지 왔으니 좀 꼼지락 거려야 보람이 생기지 않겠냐고 위안을 하면서 길을 나서본다. 이럴 때는 구름이라도 떠 있어야 위안을 삼을 텐데 하늘을 보니 낮달이 보이고, 구 한 점도 보이질 않는다. 기왕 나선 길이니 맑은 공기에 힘을 얻어 좀 걸어보았다. 실은 공원 초입에 설치된 유일한 전망대가 하나 있어서 내렸는데, 공원의 피너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관찰용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길래 괜찮은 곳인가 했는데, 현무암들이 뾰족뾰족 솟아 있는 산의 일부가 보였다. 현무암이라는 것이 본래 빛깔이 좀 거무되되하지만, 유타나 애리조나의 붉은 바위 군상들에 비하면 이곳의 바들은 볼만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이런 생각은 기우였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거무되되한 바위들은 가까이 볼수록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붉은 바위들 보다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그 속에는 간간히 붉은 기운이 보이기도 했고, 바위의 표면에 낀 이끼들이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길은 고즈넉했다. 적절한 나무 그늘, 솔솔 부는 산 바람, 해맑은 공기, 간간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언덕을 오르내리며 쌓인 세월의 더께를 음미해 본다.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후 지각 변동에 의해 다양한 모양으로 형성된 뾰족 바위들, 그들이 얽히고설켜 만드는 동굴 아닌 동굴, 그 좁은 틈을 비집으며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위틈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빚어내는 빛의 마술을 보는 것은 몸을 구겨 좁게 오른 데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물이끼가 가득한 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드디어 연못에 다와 가는구나. 돌을 쪼아 만든 가파르고 높직한 계단이 마지막 관문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질척거리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자 드디어 그림 같은 호수의 절경이 나타났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호숫가에 자라는 수초며, 실잠자리, 야생 동물,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까지, 비록 물이 맑지 않아 물고기는 살지 않는 것 같지만, 다양한 야생 동.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병풍같이 드리워진 바위들이 한낮의 찌는 듯한 햇빛을 받아 검은빛이 조금 옅게 보이자, 그 사이를 비집고 그들이 머금었던 새로운 빛깔을 내 보인다. 호수를 끼고 나 있는 둘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키 작은 관목들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은 한낮의 햇살에 좀 더워 보이기는 했지만, 길 가에 가득 찬 노란 들풀들은 오히려 따뜻해 보인다. 길을 걷다가 보이는 샛길은 호수에 다가갈 수 있는 오솔길이다. 둘레길 끝부분에서 만난 호수의 상류 부분은 여늬 자연보호 구역의 습지처럼 수초가 자라고 있었고, 간간히 수중 생물도 보이는 것이 수질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길은 또 새롭게 이어진다

여름날 해는 동지섣달 긴긴밤에 느끼는 지루한 느낌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볼 만큼 봤으니 이제 내려가기로 하고 시간을 보니 해지려면 아직도 너덧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실은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 였으니, 어찌해야 할지는 구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인터넷은 방문자 안내소 앞에서 연결되었다. 여기서 두 시간 반쯤 가면 바다에 갈 수 있고, 근처에 주립공원도 있고, 바닷가 경치도 괜찮다는 말에 우선 그곳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이동하는 동안 길가의 풍경이 손짓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음에 바닷가까지 왔지만, 기대했던 주립공원은 찾을 수가 없었다. 태평양과 인접한 마을에 살다 보니 이곳의 바다가 특별할 것은 없어 보였지만, 낯선 곳이니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바닷가의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상점 내부는 그런대로 바빠 보이고, 이따금 관광객으로 보이는 행인들이 두리번거리며 지나간다. 좀 더 안쪽으로 걸어보았다. 십여분 쯤 걸으니 앞 쪽 골목에 벼룩시장이 선듯했다. 이런 곳은 지나치는 법이 없다. 벼룩시장은 마치 한국의 오일장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바로 강냉이 튀밥 장사였다. 우와, 한국에 있을 때도 보기 힘들었던 튀밥 장수를 여기서 보다니, 신기함을 넘어서 감개가 무량했다.  '뻥이요!' 소리와 함께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면, 귀를 막고 하얀 구름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길게 누운 망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그 튀밥이 먹고 싶어 한참을 서성거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물론 여기 기계는 크기도 작고 조용했다. 가게를 지키는 백인 아주머니의 상냥한 상술이 낯설기는 했지만, 강냉이 튀밥 장사를 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캐러멜 묻힌 것으로 작은 봉지 하나($4이면 싸지는 않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한 것을 생각하면 괜찮다.) 사서 벼룩시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장이 그리 크지는 않아서 잠깐 보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런 벼룩시장에서도 사진 찍는 것은 만만치 않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바닷가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생각해 보았다.  지금껏 살면서 만난 길은 어떤 길이었으며, 지금 머물러 있는 길은 어떻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은 어떨까? 그 길을 가는 여정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미루어 알 수 있다. 장애물도 있을 것이고, 뒷걸음도 치겠지. 넘어질지도 모르고, 무릎이 까지거나 심하면 이마가 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을 지나오면서 지금처럼 여행을 다니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일들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듯이 가야 할 길에 나쁜 일만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진부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해가 지는 것은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라는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와 닿은 적이 있었던가? 길이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이어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은 어느덧 끝을 보이며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여행 길이 사람이 살아가는 여정과 많이 닮았다. 하기는 사람도 길의 한 부분이고, 자연의 한 점인 것을 생각하면 이 같은 결론은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저녁무렵의 햇살은 언제나처럼 늘 따스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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