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여행을 다니기는 해도 주말여행 밖에는 다닐 수 없고, 그러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에 한계가 생긴다. 우연하게 구글 맵을 보다가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맵에 로긴을 해 놓으면 타임라인에 내가 갔던 지역이 지도에 표시되고, 연도별로 정리해 볼 수도 있다. 아직은 기억에 의존해도 될 수준이지만, 정보량이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정리된 자료가 필요해질 날이 오겠지. 어쨌든 지난
빨간 점이 모여있는 곳은 거주지 근방
해 다녀온 여행을 구글맵을 통해 확인해 보니, 일정한 경계가 형성되어 있다. 자동차 여행을 하고, 주말에만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밤을 새워 한숨도 자지 않고 간다고 가정하고, 저녁 6시에 출발해서 적어도 다음 날 아침 9시에는 도착해야 일정을 소화할 수 있으니, 15시간을 갈 수 있다. 그러면 주말여행으로도 최소한 1000마일 반경 안에 있는 여행지는 섭렵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 그러면 내가 사는 곳에서 반경 1000마일 안에 있는 곳이 어디인지 살펴볼까? 우와! 미국의 1/3 정도 구역을 주말여행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구글맵에서 확인해 봤다. 내가 사는 곳이 서쪽 끝 부분이니까 동쪽 끝에
그동안 별로 관심없이 살았는데, 지금 보니 캘리포니아는 서쪽 끝에 있다. 그것도 거주지는 최서단에 해당한다.
해당하는 메인(Maine) 주의 홀톤(Houlton)이라는 도시까지 거리가 3,300여 마일 나온다. 하루 밤에 1,000마일 갈 수 있으니, 3,000마일이면 지도에 표시된 대로 이틀이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계산이 가당치도 않다는 것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시리라. 사람이 기계가 아닌 다음에야 2시간 운전에 한 번씩 쉬어야 하고, 중간중간 주유도 해야 한다. 게다가 낮에 일하고 밤을 새워 운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간에 묵지 않고 하룻밤에 목적지까지 완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여행지를 정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동안은 오는 시간을 감안해서 되도록이면 토요일 밤 숙소를 집 방향으로 좀 더 가까이 이동해서 잡고, 일요일 오전 일정 후 오후에 출발했었다. 집에 도착하면 월요일 새벽 한두 시에 도착하게 되고, 그다음 한 주가 상당히 고단했다.이번 여행은 좀 더 먼 거리다. 편도 약 1,330마일 거리에 평일 주행 시간이 13시간 걸리는 거리다. 아마 그동안 다녀온 주말여행 중 가장 먼 거리가 아닐까 싶다. 이번엔 거리가 좀 멀기는 하지만 중간에 하룻밤 묵지 않고, 목적지까지 논스톱으로 가서 그곳에서 여장을 풀기로 했다. 서너 시간 눈 좀 붙이고 토요일 일정을 소화한 다음, 그날 밤에 집으로 출발, 논스톱으로 집까지 오는 것으로 했다. 그러면 일요일 새벽에 집에 도착할 수 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 이어지는 한 주를 피곤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체력인데,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주말 자동차 여행을 주로 하는 내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약간씩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긴 다고 해도 그것들을 감내하고서라도 여행은 다닐 만하다.
여행은 가치의 치환
길을 떠남으로써 얻어지는 알 수 없는 희열이 지금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행은 가치의 대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가지고 있는 어떤 가치를 길을 떠나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과 맞바꾸는 행위를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행을 가치라고 규정할 수만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우리가 하는 여행은 이런 가치의 치환을 통해 이뤄진다. 이를테면 주말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면서 밀린 독서를 하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고, 오히려 그동안 글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검증해 보거나, 몸으로 부딪쳐 보는 등의 행위를 여행이라는 말로 부른다는 것이다. 가지고 있던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혹여 그 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나를 세상을 향해 던져놓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치열하게 마주치다 보면 얻게 되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또 다른 말로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여행이란 더 나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발걸음이라기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어떤 것을 경험하고 성찰하여 몸에 체득하는 과정이 아닐까? 이런 까닭에 여행은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풀타임 여행가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매일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혹은 유서 깊은 도시의 유적 가운데서, 혹은 어울려 함께 다니는 동료들과의 유대 속에서 얼마나 행복할까? 시간과 자금이 부족하여쩔쩔매는 주말 여행자로서 매일매일여행을 일삼아하는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많이 옅어졌다. 여행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여행 횟수가 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하면서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쌓이면서 여행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지향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은 주말여행 밖에는 할 수 없어서 나라 밖으로 나가는 일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 기회가 되면 나라 밖을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싶기는 하다. 그러나 일상의 경험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관계 맺고 있는 대상과의 유대가 돈독해질수록 전환되는 가치가 더욱 소중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여행지가 어디든 상관없이 현재 딛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엘 콘도르 파소(El Condor Pasó)
그렇게 밤을 새워 운전해서 새벽 네시 반(현지 시간 다섯 시 반;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는 시간대가 다르다)에 도착했다.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몸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 다행이다. 너무 고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긴장이 있었다. 간편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보스크 델 아파치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Bosque del Apache National Wildlife Refuge)은 미국 전역에서 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에서도 겨울철 철새 도래지로 이름난 곳이다. 겨울철이면 철새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름에 가까워지는 5월이면 철새는 이미 날아가고 비수기로 접어든 시기다. 방문자 센터의 말로는 아직 남아있는 새들이 좀 있고, 토박이 새들도 꽤 된다고 하니 나름 기대를 했지만, 역시 많은 새를 만나기에는 시기적으로 많이 늦은 감이 있다. 그러면 이곳에 왜 왔을까? 사실 이곳이 철새도래지로 이렇게 유명하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이곳이 여기에 있는지 조차 몰랐다. 오늘의 주 목적지이자 두 번째 방문지인 하얀 모래 준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Monument)은 점심시간쯤 도착해서 일몰까지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전 시간에 갈 만한 곳을 찾다가이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곳인가 검색하다가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어 어쩔까 고민을 했는데, 다른 곳을 또 찾아 헤매느니 다음을 위해 답사하는 마음으로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주변의 경치가 가만 놔두질 않는다
예상한 대로 많은 새들은 볼 수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방문한 시간에는 새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본격적으로 조류 탐조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들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새들이 습지에 있는 것은 주로 밤 시간이고, 낮에는 먹이를 구하러 밖으로 출타를 한단다. 어쨌든 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새들이 없다고 실망만 하기에는 주변의 경치가 가만 놔두질 않는다.
한가로이 나뭇가지에 앉아 졸고 있다. 어떤 녀석들은 먹이를 찾으러 수초 위를 거닐고, 또 어떤 녀석들은 애정 행각에 정신이 없다. 모습을 감춘 채 큰 소리로 울고 있는 황소개구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고, 물속에 있던 물고기 몇 마리가 수면 위로 튀어올라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습지 한편에는 부들과 갈대가 하늘거리고, 수면 가득 이름 모를 수초가 가득 덮고 있다. 차를 잠시 세우고 가까이 다가가면 귓가에 쟁쟁이는 모깃소리에 깜짝 놀라 후다닥 사진 찍고 얼른 차 안으로 들어온다(집에 와서 살펴보니 온몸에 모기에게 헌혈한 자리가 선명하다).
공원 내 탐방로는
일주 도로와 공원을 종. 횡으로 연결하는 도로 등으로 나눠져 있고, 포인트마다 나무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구석구석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 도로를 일주하고 거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니 탐조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겨울철에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철새들을 관찰하거나 아침에 솟아오르는 철새들의 군무를 보기 위해 날밤을 새웠으리라. 이곳에 터를 잡은 오리 가족이 유유히 길을 건넌다. 몇 마리의 이름 모를 커다란 새들이 유유히 습지 위를 선회하고, 몇 마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여유작작이다. 겨울철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떠오르는 햇살을 배경으로 하늘을 하얗게 뒤덮으며 날아올랐을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탐방로 옆 냇가에 가지런히 나있는 수초 무리가 노란색 꽃을 피웠다. 꽃이 피는 수초는 처음이지 싶다.
모래 서말
사막에는
늘 바람과 먼지가 있다. 사막이니 당연히 모래가 있다. 모래 언덕들은 세찬 바람에 희뿌연 모래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이 좀 더 세차면 크고 작은 언덕들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샌듄 지역을 가려면 보안경과 마스크가 필수 용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안 그러면 입안 가득 모래를 물고 나올 각오를 해야 한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말이 허튼 말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기도 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보기 어려울 때도 있다. 입안 가득 모래가 들어올 까 봐 미리 입마개를 한 덕인지 모래는 먹어보질 못했지만, 카메라 렌즈 초점 링 돌아가는 소리가 서걱 거린다.
때로는 너무 세차서 서있기조차 힘들 때도 있다. 눈 앞에서 모래 언덕들의 윤곽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희뿌연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자못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래 바람을 막아주는 알미늄 소재 피크닉 테이블이 이채롭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경인데 가만히 보니 멋지다. 사막과 승마...
하얀 모래 준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Monument)은
늘 머릿속에 있던 곳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들어온 터였다. 그러나 우선 거리가 멀어 주말여행을 하는 나로서는 선뜻 갈 수 없던 곳이다. 어떻게 하면 한번 가볼까 늘 머릿속에서 궁리를 해왔다. 전에 이 근처(아마도 5시간 거리쯤 떨어진 거리)까지는 왔지만, 역시 주말여행으로는 감히 넘보기 힘든 거리였다. 이 근처 다른 여행지와 함께 묶어 3박 4일쯤 다녀와야 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이번에 여행 방식을 좀 바꾸면서 드디어 주말을 이용해 올 수 있게 됐다.
저 멀리 희뿌연 먼지가 날리는 곳이
바로 그곳이구나! 먼발치로 공원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가슴이 쿵쿵거린다. 그러나 아직 실감을 할 수 없다. 희다고 했는데, 멀리서 보기에는 그리 하얘 보이지도 않다. 그저 뿌옇게 먼지바람만 일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별러서 왔는데, 그리 먼 거리를 밤새워 운전하며 왔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공원이 다가올수록 걱정반 기대반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드디어 색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오니 정말로 언덕들이 하얗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수북한 덤불들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경치를 보여줘 좀 실망스러웠다. 이런 염려도 잠시, 방문자 센터에 들러 기념품 몇 가지 구입하고 매표소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공원이 시작되자 오면서 졸였던 마음이 탄성으로 바뀐다.
생각 한 줌
와! 하는 탄성은 경외로 바뀌고, 경외는 의문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내 이곳이 지구상에 실재하는 곳이 맞나 싶을 만큼 이채롭고 특이했다. 어떻게 이런 모래가 있을 수 있을까? 에 대해 이미 알고 왔지만, 이런 풍경과 맞닥뜨리고 나니 가지고 있던 지식은 별반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 전해준 짧은 지식, 누군가 남겨놓은 셀 수 없을 만큼의 사진들, 동영상들 그리고 그곳에서 즐거운 한 때를 지냈던 행복한 기억들을 아무리 들춰본다고 한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풍경, 이 진실,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충분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저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휘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 경이로운 자연과 하나가 된다. 미세한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따갑게 몰아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 바람, 그 먼지를 받아내 본다. 하늘에는 몇 점의 흰 구름이 떠 있다. 마치 사막의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하늘에서 구름으로 부유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사막이 구름이고, 구름이 모래며, 모래는 또 구름이다.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개체로서, 마치 이물질처럼 서 있는 나는 그들로부터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그러다가 점점 나는 그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바람이 되고, 먼지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저 무수한 모래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마침내 나도 모래가 되고 사막이 된다. 온통 세상이 흰색이다. 덩달아 나의 마음도 온통 하얗다.
본질이 다르면
지난겨울 눈 많은 겨울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온통 흰 눈으로 덮인 설산, 나무도, 풀잎도, 바위도 그리고 땅도 온통 하얗게 물들인 그 설산과 마주하면서 느꼈던 그 경외감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비슷한 빛깔, 비슷한 바람, 그리고 비슷한 풍경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보일까?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쓱 보면 정말 눈이 쌓인 것으로 착각할 만큼 눈과 비슷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지난겨울 그 설산의 느낌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것을 이루는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겉은 비슷해 보일 망정 본질을 이루는 것들이 다르면 결과적으로는 그 둘은 다른 것이므로. 정녕 그렇다면 겉으로 꾸며서 보이고 싶은 겉모습은 그 본질을 이루는 속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겠지. 아무리 겉모습을 꾸미려고 해도 본질까지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우리가 흔히 '가식'이라고 표현하는 여러 가지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현상들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얗다 못해 시리다
공원 안으로 들어갈수록 하양은 더욱 짙어지다가 결국 모든 것이 하얗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간간히 돋아난 덤불들, 그리고 고고하게 돋은 꽃 한 송이[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바람 한 번 훅 불면 모래 속에 묻히고 말 수도 있는 운명 이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하게 꽃을 피워낸 저 생명이. 사막 생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 앞에 서기가 한없이 부끄럽다. 언제나 부끄럽지 않게 그들 앞에 설 수 있을까!]만이 고고하게 유채색의 물질일 뿐, 모든 것이 무채색이다. 그 무채색 뒤로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저 먼 산봉우리들과 지평선 너머로부터 시작된 푸르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 사이로 점점이 마치 농담처럼 뭉클거리는 구름들, 그 사이를 바삐 넘실대는 세찬 바람과 모래 먼지가 한데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해 낸다. 하얀 빛깔은 구름의 춤사위에 따라 때로는 밝게, 때로는 옅게, 또 때로는 어둡게 스펙트럼을 만들더니 이내 섞바뀌어 다시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못 이겨 밝은 하양을 이룬다. 어느 순간 구름이 다시 햇살을 가리는 숨바꼭질이 이어지고, 천진한 아이들은 세상이야 어쨌든 상관없이 모래 썰매를 타느라 정신이 없다.
그만하면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란 하늘이 줄어들고 구름의 빛깔이 짙어진다. 하늘은 기어코 파란 빛깔을 숨기고 말았다. 구름은 조금씩 짙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거무되되해졌다. 아!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건만, 오늘은 찬연한 노을을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서운함이 밀려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만하면 됐다. 하양의 본질을 봤으니, 겉모습이 하햫든 어둠 컴컴하든 괜찮다'라고 다독 거린다. 그렇다! '그동안 너무 화려한 겉모습만을 좇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이내 마음은 안정이 됐다. 그래도 좀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인가를 뒤돌아보면서 잔뜩 흐린 하늘과 세찬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 바람 때문에 스산하기까지 한 하얀 천국과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