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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May 01. 2017

미국의 국립공원, 데스 밸리(2)

데스밸리의 야생화


이번 여행이 사막에 피는 꽃들이 궁금해서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지난번에 완성하지 못한 여행을 마저 하고,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하다 보니 철이 조금은 지났을 법한데도 여전히 사막엔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그 꽃들을 못 본 척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결국 여행 목적을(편의상 이렇게 표현을 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딱히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변경해야만 했다. 여행지를 탐색하는 일 보다 꽃에게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데스밸리의 특징 세 가지는 HOT; DRY; LOW다. 한여름 최고 기록은 화씨 134도(섭씨 56.7도), 일 년간 강수량은 기껏해야 2-3인치 내외, 그리고 가장 낮은 Bad Water지역의 해발 고도는 -282ft(-86m)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봄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생명들이 돋아나고, 그들이 꽃을 피워 사막을 수놓는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니 경이롭기 이를 데 없었다. 

데스밸리로 가는 길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막을 가로지른다.
'Brittlebush'; 그런 황량한 가운데 피어나는 꽃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꽃도 꽤 많이 분포되어 있다.


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사막이라는 척박한 땅에서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저 생명체들을 보면서 ‘그 ‘꽃’이 무엇이길래 저들이 저렇게 악착같이(?) 피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꽃은 생물학적 번식 수단의 일부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종자 번식을 하는 식물들은 나비나 벌 등 수분의 매개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운 빛깔로 꽃을 피우고, 특유의 냄새를 발산한다. 이 과정이 지나면 꽃은 더 이상 존재의 가치가 없으므로 가차 없이 땅에 떨어져 자신의 후손을 위한 영양소가 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씨앗이 맺힐 것이고, 씨앗은 다시 땅에 떨어져 이듬해 봄이 되면 싹이 터, 또 꽃을 피운다. 


그런데 우리는 일련의 이러한 생명현상 가운데 가장 화려해 보이는 꽃에만 우리의 정신을 다 빼앗겨버린다. 사람으로 치면 젊은이들에게만 눈길을 주고, 어린이나 늙은이에게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뭐, 좀 슬픈 이야기다. 슬프기는 하지만 자연의 법칙상 이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꽃의 존재 목적이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며, 동물들의 청춘이 또한 그러한 것을 어찌 인간이 바꿀 수 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좀 편중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생명이란 어떤 단계에 있든지 현재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한 단계가 이목을 끈다고 해서 다른 단계의 생명 현상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어떤 생명이든지, 그것이 우리가 잘 모르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따지지 않고 그 생명체 전체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Showy Gilia' ;  아직 채 피지 않았지만, 활짝 폈을 때의 모습이 어떨지 짐작이 될 만큼 모양과 빛깔이 곱다.
'Desert Globemallow'; 이 녀석도 아직 다 피지 않았다. 피는 시기가 좀 늦은 것인 듯하다.


이곳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꽃들은 노란빛을 띤 꽃들이다. 길섶에 보일 듯 말 듯 실바람에 한들거리는 꽃들을 보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웠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랑만 보고 차에서 내렸는데 길섶에는 참 다양한 꽃들이 각자의 빛깔로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랑꽃의 이름이  Desert Gold란다. 이 꽃은 주로 낮은 지역에서 핀다. 그러니까 데스밸리의 대부분 지역에 이 꽃이 핀다는 이야기다. 물론 빛깔 때문에 얻은 이름이겠지만 데스밸리의 드넓은 황량한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꽃을 보았을 때,  다만 빛깔 때문에 얻은 이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잠깐,  '들판을 가득 채우고'라는 표현 때문에 그 사막 지역이 온통 노래 보일 것이라는 오해를 할까 봐 짚고 넘어간다. 가득 채우고 있기는 하지만 노래 보이지는 않는다. 차에서 내려 자세를 조금 낮추고 옆으로 보면 노란빛이 보이기도 한다. 이곳은 사막 중에서도 모래사막이 아니라 자갈 사막이다. 다시 말해 자갈밭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 돌 틈을 비집고 피어오르는 꽃들의 개체수는 많지만, 돌들 사이사이에 있기 때문에 들판이 온통 노래 보이지는 않는다.

'Desert Gold'; 개체수로 보면 이 꽃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른 봄에는 좀 더 많았으리라 짐작되며, 다른 이들의 사진을 보면 지금 보다는 더 크고 풍성했다


꽃이라고 해서 모두가 화려하지는 않다. 어떤 꽃은 차마 꽃이라고 할 수 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크기가 너무 작아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꽃도 있고, 빛깔이 옅어 주변의 다른 식물들과 구분해내기조차 어려운 꽃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꽃이든지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 꽃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사진기를 들이대고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어떤 생명체든지(사실은 생명이 없는 것들까지도 모든 존재가 다...) 깊이 그들과 관계하게 될 때, 그들은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올 수 있다. 사실 예쁘다는 판단은 그래서 너무도 주관적인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을 바라보고 관계 맺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떤까? 사람들끼리의 관계는 과연 어떨까?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Low Cryptathania, Pebble Pincushion, Yello Pepperweed, Golden Desert Snapdragon, Desert Pale Gilia, Gigelow's Monkey Flower, Mojave Desertstar, Pebble Pincushion


여기 또 다른 노란 꽃이 있다. 이 식물은 고도가 중간 정도 그러니까 해발 3000-4000피트 정도 되는 곳에서 자라며, 4-5월에 꽃을 피운다. 이 꽃은  양귀비의 일종인데 영어로 Desert Golden Poppy다.  황금 양귀비쯤 되겠다. 마약을 추출하는 일반 양귀비와는 달리 캘리포니아 양귀비들은 '개양귀비'라서 식물에 마약 성분이 없는 것들이다. 캘리포니아에는 이런 양귀비가 봄만 되면 지천으로 피어난다.  사진에서 보듯이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홀로 외로이 피기도 하는데, 꽃이 발견된 장소는 분화구 주변의 현무암 자갈이 가득한 열악한 토양이다. 이것을 보면 이름과는 달리 생명력이 아주 강한 식물이 아닐까 싶다.

이름에 걸맞게도 꽃은 샛노랗다. 천하일색 양귀비


여기에 좀 특이한 꽃이 하나 있다. 이름은 Desert Five-Spot이라는 꽃인데, 척 봐도 꽃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진에는 정확하게 다 나오지 않았지만, 꽃잎 속에 있는 빨간 잎 모양이 다섯 개가 있다. 참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꽃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사막 지역에만 자생하는 꽃 가운데 하나다. 안 쪽의 다섯 개의 꽃잎은 실제 꽃잎이 아니라 꽃잎 모양의 무늬처럼 보인다. 직접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곁에서 볼 때 그렇게 보였다. 아마도 벌이나 나비 등의 매개체를 끌어들이기 좋게 하기 위해서 그리 진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꽃잎 모양도 활짝 벌어진 것이 아니라. 안쪽의 꽃잎을 보고 찾아든 곤충이 바깥쪽 꽃잎 때문에 수분하지 않고는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수단인 셈이다. 대부분의 자연은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우리도.

사실은 이날 좀 더 상세하게 담고 싶었는데, 개활지인 데다가 강한 바람 때문에 더 이상의 접근은 어려웠다. 이 정도도 다행이다.


지구 상에는 많은 종류의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2000만 종 이상의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명체의 수도 여전히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이 있지만 똑같은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지구라는 한 별에서 함께 공존하며, 각 생명체들이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꽃이라고 여기서 다르지 않고, 마찬가지로 사람이라고 해서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꽃은 꽃이 있을 자리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과 임무를 다하며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동물은 동물대로, 하다못해 하찮아 보이는 단세포 생물들까지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며 생멸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나는 종은 오직 인간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벗어나거나 못 미치거나 하기 때문에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봄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뒤따르다 드는 생각이다.  

크든 작든 제자리를 지키며 사는 기특한 사막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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