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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Apr 06. 2018

캘리포니아의 비경, 샌디에이고 발보아 공원

색에 물들다

Spanish Village Art Center in BalboaPark

봄이 오면 자연은 겨우내 그들 속에 갈무리 해 두었던 생명을 틔우기 위해 분주해진다. 기온과 습도와 햇빛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 하고,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체득하여 저장해둔 경험치를 참고해 언제 밖으로 나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들이 잠든 사이 찾아온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 쌓인 경험치가 없으므로 거기까지 대처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대부분 인간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바뀌어버린 항목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앉아서 당해야 한다. 그들이 갈무리해 둔 힘은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적응, 그렇다! 생명이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이 땅에 있을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바로 이 적응하는 능력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능력을 기반으로 생명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왔고, 질기 굳은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 해마다 봄이 돌아오면 보게 되는 생명들의 약동, 갈무리해둔 힘의 용솟음은 바로 이런 숨은 능력의 결과 이리라.


자연의 빛깔  


파랑

마침내 그들의 힘이 모습을 드러내는 봄이 왔다. 겨울 뭄으로 메말라 있던 땅이 요 며칠 내린 비로 촉촉해지자 대지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싹이 돋아나더니 밤새 온 땅을 덮어버릴 듯 세상은 온통 푸르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누렇게 죽어있던 대지는 더 이상 겨울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지가 풀이 자라지 못하는 겨울을 빼고는 대체로 파란 것을 근거로 파랑을 생명의 빛깔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과장된 말일까?


빨강

차오르다 차오르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터지듯 피어오른 꽃잎은 겨우내 움츠리고 안으로만 힘을 갈무리해온 생명들의 함성이거나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환희의 노래다. 함성은 겨우내 키워온 생명이 차마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잠시 억누르고 빨강 빛깔로 빛난다. 지금은 짙푸른 여름을 매어 두고 생명의 꽃을 피울 때, 그들은 봄을 그렇게 빨강으로 노래한다.


그렇다고 꽃만 빨갈까? 겨울을 참아낸 것이 차마 풀들만의 일일까? 깊고 깊은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희미한 온기에 의지한 채 겨울을 견디며 어느 한날을 기다리며 생명을 갈무리해 온 것이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잎이 빨가면 사실 가을을 떠올리게 되는데, 봄에 잎이 날 때부터 빨간 잎도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붉게 태어나 붉은 일생을 살다가 붉은 모습으로 가을을 맞는다. 잎이 질 무렵에는 빛깔이 많이 사라진 뒤라서 조금은 초췌해 보이기는 하지만, 가을에 물드는 잎들이 한철 반짝이는 것에 비하면 이들은 쭉 그랬으니 그 정도는 봐줄 만하다.


노랑

봄을 알리는 노릇을 톡톡히 하는 빛깔은 뭐니 뭐니 해도 노랑일 테다. 개나리, 산수유, 유채꽃, 갓꽃, 민들레, 애기똥풀, 수선화에 복수초까지 셀 수 없을 만큼의 노랑꽃들이 봄을 알리지만, 웬일인지 이곳에는 노랑이 없다. 온통 분홍 아니면, 하양, 그리고 흔하게 파랑 빛깔뿐이다. 일본 정원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노랑을 좋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랑이 없다. 그도 아니면 정원을 설계한 사람의 기호에 맞춰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공의 빛깔

사람이 만들어내는 빛깔은 어떨까? 사람들이 색을 만들어 낼 때 참고하는 것은 대부분 자연의 빛깔일 것이다. 인류가 빛깔을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전달하거나 표현하려고 할 때부터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연을 응용하거나 또는 활용했으므로 어쩌면 사람들의 빛깔의 원류는 자연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사람들은 그들의 표현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들과 어울리는 빛깔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빛깔을 응용하는 방식이 많은 차이를 보이며 발전해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는 곳이 다르면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고 생각이 다르면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행동방식에도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런 차이는 자연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이며 그들이 빛깔을 이용하여 표현하려는 내용도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곳은 스페인이 아니라 스페인 풍을 재현한 거리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이를테면 공방거리 정도 되는데, 실제로 작업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판매점만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이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직접 만든 제품들 뿐이다. 거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리를 장식한 빛깔들을 강렬한 원색을 사용함으로써 스페인 냄새가 물씬 풍기도록 꾸며져 있다.  


이 거리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닥 장식일 것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원색적인 건물들이 눈에 띄기는 하겠지만, 뭐니 해도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에도 칠을 해놓아서 평범하기만 한 재료를 좀 특별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한집 한집 살피다 보면 벽돌 위에 걸어놓은 그림이라든가, 가정집 대문처럼 보이는 곳을 이용해 진열해 놓는 등,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재기 발랄을 엿볼 수 있다. 다들 예술가의 감성을 가지고 있을 테니 무엇 하나 허투르게 지나가는 법이 없이 놓여있는 탁자 하나, 의자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다못해 세월이 흐르면 빛깔이 바래고 때가 끼거나 벗겨지는 것들도 함께 어우러졌다. 


문화의 거리에 음악이 없으면 좀 서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침 거리 가운데쯤 마련되어 있는 아담한 무대 위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선율로 인해 거리는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물론 이들이 버스킹을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조용하게 앉아 음악을 듣거나 지나는 길에 힐끔 바라보거나 그저 무심한 듯 지나친다 해도 선율이 어디 다른 데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들의 음악이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 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이 아닐까 싶다. 바로 거리 카페! 거리 입구에도 이 안에 커피 파는 곳이 있으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유혹할 만큼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곳인 모양이다. 하긴 가까이에 그럴싸한 카페나 음식점이 없다 보니 더욱 그렇겠지. 다른 음식점이 없는 이 거리에서 풍겨 나는 커피 향은 음악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자극함으로써 거리는 훨씬 흥미로워진다. 이 작은 간이 카페는 모두 세 사람이 일을 하는 데도 주문이 밀릴 정도로 이 거리에서 단연 인기 폭발이다. 


이곳에 사용된 빛깔이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파랑과 빨강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이 지니고 있는 빛깔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면서도 눈에 띄게 칠해놓음으로써 자연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강렬함을 느끼게 해준다.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이 빛깔을 이용하여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믿음을 표현하기도 했던 활용방식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을 보면, 적어도 빛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장식을 위해 칠해놓은 빛깔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그냥 장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빛깔을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 그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와 역사를 미루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 선조들이 주로 사용했던 오방색을 통해 선조들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했고, 받아들였으며, 곁에 두었는지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들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제품을 직접 주문을 받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이기도 하는 등 사람들이 관심을 둘 만한 요소가 많이 있다. 그런데도 그저 구경삼아 들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고, 그나마도 거리가 조금은 한산해 보이는 것은 이 거리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속으로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든 적든 이곳의 사람들은 대체로 상냥하다. 미국인들 특유의 친절함이 그대로 녹아있다. 도자기를 빚든 유리를 불든 저들의 작업장은 그들의 성심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하다.  자본의 논리로 본다면 이들의 삶은 풍요로워 보이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자신들의 유익함을 위해서라면 다른 생명체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오만한 인간이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만든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인간의 독단, 그 위에 세워진 욕망의 문명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그 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어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빛에 따르는 자세를 취하는 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광장의 빛깔

광장에는 다른 분위기의 빛깔이 묻어난다. 공연장이나 박물관이나 식물원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지어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 공방골목과는 다른 빛깔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거리를 배회하거나 모여 웅성거리거나 거리 공연을 한다. 어떤 모습으로 있든 그들은 나름대로의 빛깔로 거리에서 빛난다. 

특이한 양식의 식물원/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공연장/식물원에서 바라본 건너편 극장 건물


본래 광장이 다양성과 개방성을 주로 하는 소통의 공간임을 감안해 본다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이런 모습들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면서도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거나, 광장에 모이거나 배치되어 있는 건물, 조경 등의 낯섦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위압적이거나 게다가 획일성이 배어있기도 하는 광장의 모습과는 달리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광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 사실 이해할 필요까지도 없을 것이다.  

왼쪽: 마술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들/가운데: 명상 홍보를 하고 있는 승려/오른쪽: 이 광장엔 많은 이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자연에 다양한 빛깔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듯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어떤 모양으로 서있든 어떤 빛깔로 반짝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지닌 그대로 그들을 알아주고 북돋아준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발보아 파크는 캘리포니아의 해양 도시인 샌디에이고의 명물이다. 발보아 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대규모 복합 문화 공간이다. 100년이 넘는 도시공원으로서 다양한 위락 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주민들 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공원 입장료, 주차 요금은 없지만 각종 박물관 등의 시설은 개별적인 입장료가 있고, 유료시설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통합 입장권도 판매하고 있다. 발보아 파크는 17개의 박물관 및 미술관, 18개에 이르는 식물원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동물원은 물론이고 체육관 및 체육 시설, 대규모 주차장 등이 있다. 물론 여럿의 광장이 있어서 저마다 특징 있는 이벤트나 장터가 열리고 있으며 방문자 안내소를 이용하면 공원 지도와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공원 규모가 크므로 시설마다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면 이삼일 정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중요 시설만 둘러본다고 해도 꼬박 하루는 할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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