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당할 것이냐 / 이용할 것이냐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이냐
주저하고 미루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 WHY가 무엇이냐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WHY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안 나왔고 현재진행 중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이유와 마음이 생각하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일까? 정리가 되지 않아 호흡이 힘들어질 만큼 답답함이 몰려와서 8월 1일 아침, 글로 풀어보며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적어본다.
디자이너냐
디자인회사냐
위 고민은 즉,
취업이냐
창업이냐
이와 같은 고민이다.
'레버리지' 최근 읽고 또 읽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레버리지란, 나의 핵심가치 활동 이외의 것들은 모두 하지 않고 남의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주식투자나 부동산에서는 대출받아서 투자하는 걸로 얘기되기도 하지만 내게는 디자이너가 될 것이냐 디자인회사 창업을 할 것이냐의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마음의 답
'취업이 되지 않으니 창업해야지'
라는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디자인회사를 창업한다는 뉘앙스를 주변에 풍겼다. 자발적으로 내가 원해서 창업을 했다고 하면 그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더 클 것 같아서, 겁먹고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겁쟁이인데 그렇지 않은 척 사회 탓으로 돌리며 심적부담을 덜고자 한 것이다.
머리의 답
'디자이너는 레버리지 당하는 거고,
디자인회사는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거니까,
창업을 해야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도 사업가나 투자자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니까, 창업을 해야지'
책을 통해 수긍하고 믿는 것들을 인용해서 내 머리는 답을 내리고 있다. 생각으로는 이게 맞는 것 같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는 시스템 1 시스템 2를 들어서 얘기하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시스템 1(직관)이 아닌 2(논리)의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생각과 고민만 하다가 쉽게 불꽃이 꺼져버리는 경우가 많은 나라는 걸 안다. 실행력이 약하고 길게 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답 없는 생각이 계속될 때마다 그냥 손에 잡히는 책들을 읽어가는 중이다.
WHY
난 왜 창업을 망설이는가.
필터링, 퇴고 없이 적어 내려 가 본다.
: 모호하고 보이지 않는 디자인회사 창업의 길에 겁이 나기 때문이다. 겁쟁이. 잘되지 못할까 봐의 두려움. 무조건 잘하는 것들만 했어야 하는 나의 오만함에서 오는 두려움. 잘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되는 건 시작을 안 했기 때문에, 잘하지 못할 것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친구들은 월 350 이상 버는 디자이너들이 되었는데 나는 이제 시작한다는 그 막막함을 드러내기 싫어서.
적어 내려 갈수록 암울해져서 질문을 바꿔봤다.
왜 창업을 해야만 하는가?
: 10년 뒤를 봤을 때 취업보다는 창업이 더 나을 것 같아서. 40대 때 10년 차 디자이너가 되는 것보다, 10년 된 회사를 갖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발전가능성이 회사의 손과 발이 되는 디자이너보다 나을 것 같아서. 혼자 일하는 게 편한 나니까. 모든 성격테스트, 심리테스트, 적성테스트에서 혼자 일하라고 말하고 있어서. 사회성 영역이 제일 떨어지게 나오는 나니까. 레버리지 당하기 싫으니까. 취업보다는 앞 길이 힘들더라도 발전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그나마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나마 나한테서 당장 나올 수 있는 자본적 가치가 있는 아웃풋이 디자인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왜 취업을 하지 않는가?
: '나'에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위해 일하는 손과 발이 되는 것 같아서. 220만 원 정도 받는 실수령액과 내 시간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지금 수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저 220의 스쳐가는 달콤함을 느끼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안주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서른 넘은 경력단절과 비슷한 케이스의 여자를 받아주는 회사도 없다. 내가 있는 지역에서는 지원할 만한 회사도 없고, 받아줄 만한 회사도 없고, 내가 그렇다고 디자인을 능숙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야근하며 저녁이 없는 삶을 살기는 싫어서. 쥐뿔도 없지만, 그나마 나에게 주어진 저녁 시간마저 220만 원과 교환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망설이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았다.
1. 내가 단거리 달리기 선수다.
취업은 매달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소비된 시간) 220만 원이라는 명확한 보상이 있는 단거리 달리기이고, 창업은 하루 앞 한 달 앞을 볼 수 없는 모호하고 긴 레이스로 장거리 달리기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저 앞 결승선이 보이지도 않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할지 말지 망설이는 것이었다. 명확한 보상이 있는 일에만 도전해 왔던 나이기 때문에 여전히 겁을 내고 있다.
2. 나는 숲보다 나무를 보는 사람이다.
내가 속해있는 숲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나무만 자세히, 오를만한 나무들이 총 몇 개인가 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숲이 디자인업계나 디자인회사들이라는 네트워크와 산업디자인전문회사로 제도권 내에서 열리는 판이라면, 그 안에서 다달이 월급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내 시간과 월급을 교환하는 건 나무일 것이다. 내 머리는 숲을 봐야 한다고 하지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시스템 1의 자동적 사고로는 나무처럼 행동하라고 한다.
답답할 때, 생각이 정리가 안 될 때 글을 써 내려간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이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유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의 성향과 이성적 사고 결과 나온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즉 나의 성향 vs 사고 의 싸움이었다.
누가 이기나
어쨌든 질러보자.
디자인회사 창업, 뭐부터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