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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Dec 28. 2022

재택근무 말고, 재 아무 데 근무

그러고 보니 내가 설명을 안 했었구나. 어떻게 출장도 아닌데 내가 소속된 취리히 오피스 말고 뉴욕 오피스로 이번주에 출근하고 있는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재 아무 데 근무'라고 부를 것 같아. 재택근무에서 택을 아무 데로 바꾼 거야. 일 년에 4주까지, 소속된 오피스가 있는 나라 밖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다른 나라 오피스에서 일해도 되고 호텔방에서 일해도 되고 정말 아무 데에서 일해도 돼.


물론 다른 대륙에서 일할 땐 회의 들어가는 게 좀 어렵긴 해. 화상으로 참석하면 되지만 시차가 있잖아. 요즘 같은 연말에는 어차피 회의가 거의 없어서 상관없지만 다른 때엔 새벽에 일어나든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서면으로 회의를 대신하든 해야 해.


여기까지 말하면 일 많이 안 해도 되는 여유로운 회사인 것 같지? 나도 입사할 땐 그런 줄 알았어. 이게 가능한 이유는 (비교적) 공평한 성과 보상 제도 때문인 것 같아. 일 안 하면 내 손해니까 자유롭게 일하도록 내버려 둬도 알아서 다들 놀지 않아. 이런 점은 자영업자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


어제 열 시에 퇴근하고 숙소에서 지인들과 술을 좀 많이 마셨어. 새벽 네시가 금방이더라. 나는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다시 일하러 나갈 거야. 재 아무 데 근무 중이고 아무도 감시하지 않지만 승진하려면, 아니 최소한 이 흉흉한 불경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는 성실하게 일하러 나가봐야 해.


2022.12.27. 직장인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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