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여정이 곧 끝나. 벌써 모레면 취리히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 뉴욕에서의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어. 일도 바빴고, (내 기준) 여행일정도 제법 타이트했어.
나는 한동안 취리히에서 매가리 없이 풀어진 우동 같았는데 뉴욕에 있는 동안은 쫄면이었어. 의욕도 더 있고 농담도 더 많이 했어. 나를 탱탱하게 만든 요인을 찾아내서 취리히에서도 계속 쫄면으로 지내고 싶은데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 가설들이 몇 개 있는데, 한번 들어봐 바.
첫 번째 가설은 말을 많이 해서야. 지금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어서 말을 평소보다 많이 하고 있어. 일 얘기, 진지한 얘기 말고 그냥 말. 하나 마나 한 얘기를 아무렇게나 주고받으며 웃고 떠드는 게 나를 즐겁게 하는 것 같아.
다음은 도시가 자극적이어서 야. 거리의 화려한 간판과 수시로 들리는 클락션 소리, 바쁘게 오가는 거리의 사람들. 매 순간 감각적 자극을 경험하게 돼. 어쩌면 이런 자극들이 내게 활력을 주는 걸지도 몰라.
세 번째는 하고 싶은 게 있어서야. 퇴근하고 나서 보고 싶은 공연이 있었고, 휴일이 되면 가고 싶은 곳이 있었어. 하고 싶은 걸 기대하고 있으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도 괴롭지 않았어. 정시에 맞춰 끝내려다 보니 집중도 더 잘되는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는 많이 움직여서야. 이것저것 보러 다니다 보니 많이 걷게 됐어. 뇌도 결국 몸의 일부잖아. 힘내서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힘이 더 생겼나 봐.
네 가지 다 그럴듯하지 않아? 이 그럴듯한 요인들을 취리히에 재현해내야 가설을 검증해볼 수 있을 테니 몇 가지 방법들을 떠올려봤어. 농담하기 편한 회사 밖 친구들은 사귀려 노력해 보거나, 시각적 자극을 위해 집안을 예쁘게 꾸미거나, 유럽 여행을 더 자주 다니거나, 아침에 달리기를 해보거나. 하나씩 혹은 여러 개씩 해보면서 취리히에서도 쫄면 유미로 살아볼까 해.
2022.12.30. 쫄깃하고 매콤한 뉴욕의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