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갑작스러운 연말 뉴욕 여행의 목적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뉴욕에 숨겨둔 썸남이 있는 게 아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던데... 그런 건 없어.
내가 갑자기 뉴욕에 오기로 한건, 취리히가 지루해서야. 텅 빈 취리히 오피스에서 탕비실이나 털면서 연말을 보내긴 싫었어.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 해외 이주를 고민할 때 후보지 중에 뉴욕도 있었거든. 요즘 부쩍 취리히가 지루해져서 뉴욕으로 이사 간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뉴욕에서 사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어.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땐 대도시에 온 것만으로 설레어서 교통체증까지 반가웠어. 한인타운엔 없는 것 빼고 다 있고, 우버이츠로 온갖 한식을 시켜 먹을 수 있고, 한인들도 많은 뉴욕이 어쩌면 취리히보다 살기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일주일 만에 생각이 좀 바뀌었어. 뉴욕엔 사람이 많아. 그래서 새로운 인간관계도 많이 생기더라.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하지만 나는 내향인 이어서 슬슬 이 달 치 사회성이 고갈돼가고 있어.
지루하도록 평화로운 취리히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복잡한 인간관계들이었는데 말이야. 너무 많은 사람들, 그 사이 복잡한 관계, 그리고 갈등들. 나는 좀 지쳐있었어.
거주지 후보 조사가 거의 다 끝났어. 조사의 결론은 '유보'일 것 같아. 대도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한인타운이랑 케이팝 음반 가게는 진짜 부럽긴 하지만, 아직은 단순한 삶에 더 머무르고 싶어.
2022.12.29. 조용한 우리 집이 좋은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