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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Sep 23. 2022

백일 동안 너에게 엽서를 보낼게

어린아이 같은 너에게

안녕! 이 엽서가 정말 알프스 넘고 대서양 건너 너네 집까지 배달이 될까? 핸드폰을 켜면 일초만에 너에게 연락할 수 있는데도, 난 좀 귀찮은 일을 해보기로 했어. 오늘부터 매일 너에게 엽서를 적어 볼 거야. 올해가 딱 백일 남았다고 하니까, 연말까지 백장 쓸 수 있겠지? 와, 지금 테라스에 새가 날아와 앉았어! 꼭 저 새가 편지를 물어다 전해줄 것 같아.

요즘 너는 어떻게 지내? 얼마 전까지 많이 바빴던 거 같은데, 요즘도 그래? 지난번에 하늘 사진 보내줬던 거 고마웠어. 사진도 예뻤지만, 나는 사실 네가 귀엽더라. 바쁜와중에도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다는 게 안심도 되고 말이야. 가끔 노을 지는 하늘이나 따듯한 커피를 보면서 행복하는 네가 나는 좀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 스쳐 지나가는 작은 행복들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던데, 나는 잘 못하거든. 해야 하는 일들에 사로잡혀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늘이 어땠는지, 새가 날아들진 않았는지 같은 건 잘 모르고 지나치게 돼. 그런데 오늘은 너한테 편지를 쓰면서 하늘도 올려다 보고 새가 날아온 것도 보고, 다시 사춘기가 된 기분이야. 돈 들여서 항노화 시술받을 필요가 없네. 네가 내 보톡스다!

몇 자 적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어. 나는 이제 일하러 가 볼게. 간다고 해봤자 재택근무할 거라 열 발자국 정도지만. 낮에는 테라스에서 일해볼까 봐. 새가 또 날아왔으면 좋겠다. 너도 오늘 일하겠지? 바쁘더라도 행복한 하루 보냈으면 좋겠어. 일상에 별사탕처럼 콕콕 박혀있는 행복들을 찾아내 보자. 내일 또 편지할게!


2022.9.23 보톡스 맞고 팽팽해진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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