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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Sep 24. 2022

일주일에 하루만 여행자처럼

통근 선배인 너에게

오늘 취리히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어. 비가 오니까 경기도에서 통학하던 네가 떠올라. 너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가끔 늦기도 했었지. 나는 학교 바로 옆에 살았어서 그런 통학의 고충을 모르고 지냈었고. 그런데 취리히에 와서는 도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해버렸어. 나는 졸업한 이후에도 회사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았었잖아. 이렇게 매일 대중교통을 타는 건 거의 처음이라, 아직 어색해하는 중이야.

나는 집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임시 버스’를타고 15분 정도 걸려서 에셔 비츠 플라츠 정류장까지 가. 그다음에 노란 13번 트램으로 갈아타고 25분 정도 더 가서 반호프엔게에서 내려. 그리고 10분 더 걸어가면 회사가 나와.

난 사실 회사까지 바로 가는 13번 트램이 집 앞에 오는 줄 알고 이 집을 계약했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트램이 내년 8월까지 공사를 한다는 거야. 속은 것 같고 억울해서 ‘통근 시간을 알차게 활용해주마!’ 하고 매일같이 출근길엔 앱으로 영어공부를, 돌아오는 길엔 퇴고를 하고 있어. 그런데 저번에 네가 그런 얘길 했었지. 버스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구름이 살짝 걷히면서 햇빛이 쏟아지고 이어폰에선 때마침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가 흘러나왔다고. 네 얘기를 듣고 금요일에만 트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어. 아마 내가 여기에 여행을 온 거였으면, 절대 트램에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을 거야. 너처럼 창밖을 보고 감상에 빠지거나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겠지.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여행자가 되어 볼 생각이야. 아직 너처럼 영화 같은 장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확실히 멀미는 덜 하고 있어.

이따가 한인마트에 다녀 오면서 또 트램을 탈 거야. 어쩌면 오늘 멋진 풍경을 볼 수도 있겠다. 그럼 꼭 사진 찍어서 너한테 보내줄게. 네가 자주 그러는 것처럼.


2022.9.24. Across The Universe 보단 Universe(Let’s Play Ball)을 좋아하는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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