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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Nov 01. 2022

악의 출처

무고한 악인을 마주한 너에게

지난주 금요일, 핼러윈 파티에 가기 위해 붉은 분장용 물감으로 칼에 베인 듯 한 긴 상처를 얼굴에 그렸어. 좀비 흉내를 내며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집에 돌아와 분장을 지운 뒤 쉬고 있는데 어떤 글이 눈에 들어왔어. “내 흉터는 당신의 핼러윈 코스튬이 아니다.”


글쓴이는 교통사고로 인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어. 그리고 어느 핼러윈 데이, 오랜만에 본 지인으로부터 얼굴에 흉터 분장을 한 거냐는 질문을 받았대. 그 글을 읽고 깨달았어. 나는 한때 그녀가 거울 속에서 마주해야만 했을 상처를 쉽게 지워지는 잉크로 그린 채 즐거워하고 있었던 거야.

내 핼러윈 분장은 나빴어. 그리고 어쩌면 나는 더 나빠질 수도 있었어. 그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얼마간의 반발심을 느꼈어. 내가 반발심에 사로잡혀 배려와 공감을 잊고 댓글을 남겼다면 그건 악플, ‘악’이었을 거야.


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선이 부재한 상태라고 해. 그래서 악해지는 건 너무 쉬워. 악의를 품지 않고도 존중, 책임, 공감 같은 중요한 걸 잊었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악해질 수 있어. 또 그래서 모든 악인들은 억울해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악인들이 무고를 토로하는 이유는 완전히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무언갈 완전히 잊으면 잊었다는 사실마저 알 수 없게 되니까.


이기적인 목표에 몰두하다 보면 책임을 잊고, 편협한 시각에 갇히면 공감을 잊고, 우월감에 사로잡히면 존중을 어. 우리는 끊임없이 반성해야만 해. 악해지지 않기 위해서. 억울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있는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2022.10.31. 악해지고 싶지 않은 유미가.


My facial scars are not your Halloween costume - Phyllida Sw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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