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학교 들어가기 전, 어릴 때의 나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나는 느껴지는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꾹꾹 눌러 닫았었다. 물론 표현을 하긴 했지만 약하게 표현하였고, 그 방법은 서툴렀다.
만화영화에서 보면 등장인물들이 기쁠 때면 두 발을 폴짝폴짝 뛰며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슬플 때는 소리 내어 눈물바다가 될 정도록 펑펑 운다. 설레거나 즐거울 땐 입꼬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올라가며 발을 동동 구른다. 화가 날 때는 눈도, 온몸도 불처럼 타오른다. 무서울 때는 턱도, 온몸도 덜덜덜 떨린다.
나도 저 감정들이 이해되고 공감이 된다. 기쁠 때면 몸에서 뭔가가 자꾸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손뼉 치거나 웃으며 표현했다. 슬플 때도 마음이 가득 차 감당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눈을 자주 깜빡이고 침을 삼키고 손을 꽉 쥐어 눈물을 삼키거나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지금은 비교적 감정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감정에 대한 책들도 읽고, 사람들은 이런 감정일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펴보며 적용해보기도 했다. 어릴 때의 나는 감정 표현 방법을 몰랐던 거 아닐까?
시대가 변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도 SNS 메신저가 있었지만 컴퓨터를 이용해야 했고, 이모티콘도 다양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SNS 메신저도 활발해졌고,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이모티콘도 훨씬 다양해졌다. 내 감정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이모티콘을 고르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감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 표현을 해도 되는 걸까?
여전히 감정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항상 옳은지 모르겠다. 컨디션에 따라 잘 못 느끼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혹시라도 내가 감정으로 표현함으로써 누군가 상처 받지 않을까? 이런 부분들이 염려되어 여전히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 특히, 어두운 감정들.
감정을 밝고 어둡다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밝은 감정들은 표현했을 때 옆사람에게도 비교적 긍정적인 영향을 줄 확률이 높지만, 슬픔이나 우울과 같이 어두운 감정들은 옆사람이 싫어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가능한 적을 만들지 않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도 돼
중학교 때, 엄마가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사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내가 우는 걸 싫어했다. 슬픔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니까 가능한 울지 말아야지, 참아야지 하며 지냈다. 울어도 티가 안 나면 참 좋겠지만, 나는 너무나 티가 잘 났다. 눈도 빨개지고 이마도 빨개지고.. 눈물이 많은 편이라 가끔 도저히 참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화장실 가서 물 틀어놓고 눈물을 삼키거나 밤에 등 돌리고 누워 조용히 울곤 했다.
엄마가 우는 걸 싫어한 이유도 알고는 있다. 항상 엄마 혼자 우리를 지켜야 했고, 지키기 위해 버텨야 했기 때문에 눈물이 많은 엄마도 가능한 울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엄마도 함께 공부했다. 사회복지와 청소년에 대해 배우면서 엄마도 조금씩 변해갔다. 엄마와 친구처럼 대화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나누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사춘기가 왔다. 느껴지는 감정은 많은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그 시기. 무슨 상황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기억난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며 "슬플 땐 차라리 엉엉 소리 내어 울어"라고 말해줘서 소리 내고 싶지만 그조차도 어색하게 느껴져서 일부러 "엉엉"소리를 내며 울었었다.
감정, 참 어렵다.
밝은 감정들은 전보다 더 잘 표현하고 있다. 웃는 표정도 훨씬 커지고 리액션도 더 커지고.
어두운 감정들은 여전히 어려워 참는 게 익숙하다. 뭔가 표현을 하고 나서 회복하지 못할까 봐, 지금의 내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우는 걸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형성을 하고 지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정을 알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관계 형성에 감정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평소 치료실에서 아이들과 만나 수업을 하면서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감정은 어떨지 생각해보는 과정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몸짓으로? 표정으로? 글로? 그림으로? 어떻게 그 감정을 알려줄지 고민을 많이 한다. 고민 끝에 지금은 감정 일기장을 활용하며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마다 활용했을 때 결과물도 다르고, 유도 방법도 다 달라서 계속 새로운 버전도 만들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고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현재 감정 일기장 ver1, ver2까지 만들어 사용 중이다.
"오늘 기분이 어땠어?"라는 질문에 "좋아요"만 대답한 아이가 있었다. 자신이 겪은 상황이 분명 짜증 나는 상황임에도 표현은 좋다고만 한다. 눈망울에 약간의 눈물도 맺히고 표정도 웃는 표정이 아닌데 말로는 좋다고 한다. 순간 '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누르기 위해 얼마나 힘을 쓰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안아주었다. "울어도 괜찮아, 어른들도 슬플 땐 다 엉엉 울고 그래. 마음속에서 울고 싶다고 말하면 그냥 펑펑 울어도 괜찮아"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니 아이 마음에서 조금씩 눈물이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엄마에게 들었던 한 마디가 지금도 힘들 때면 떠오른다. 그때의 따뜻한 토닥거림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