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관심이 없던 섬 소년이 섬을 지키는 해양경찰이 되었다.
해양경찰 김운민 경장을 만나고 나눈 인생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내다.
바다는 우리에게 놀이터였다.
서해 최북단 섬 중 하나인 인천 대청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섬에서 생활했던 김운민 경장은 학창 시절을 이렇게 추억했습니다.
"지금의 대청도도 도시에 비하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나의 유년시절에는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섬에서 유일한 놀이는 친구들과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잠수를 해서 전복과 해삼을 채취해서 먹는 것이었고, 바다는 우리에게 놀이터였다.
매일 하는 것이 바다 수영이었고, 나는 수영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나는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나의 첫 인명구조
김운민 경장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가족이 섬에 피서를 왔습니다. 김운민 경장은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는데 피서를 온 가족 중에 중학교 남자애가 튜브를 타고서 떠내려가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육안으로 가까운 거리로 보였고 친구들과 함께 재빨리 헤엄쳐 학생의 튜브를 잡는 데 성공합니다.
수영에 자신이 있던 김운민 경장은 당연히 쉽게 구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구조하는데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운민 경장과 친구들은 모두 탈수 증세가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안류(해류가 바다 쪽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해안으로 밀려오던 파도가 갑자기 먼바다 쪽으로 빠르게 되돌아가는 해류 현상이었고, 물에 빠진 중학생이 튜브를 타고 계속해서 떠내려가는 상황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튜브가 없이 헤엄쳐서 돌아왔더라면 더 빨리 구조에 성공했을 텐데, 수영을 잘한다는 자신감만 있었고, 이런 지식이 없었으니 전체적인 상황을 보지 못하고 구조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첫 구조를 힘들게 마치고 구조해준 학생의 부모님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며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셨고, 용돈도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내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수영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빨리 구조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방과 후에 어제 구조한 중학생의 누나가 물에 떠내려가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있었더라면 구조했을 텐데 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때 사건을 계기로 나는 수영을 더 전문적으로 배워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을 마스터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공부는 늦었다
하지만 길은 있다
내 인생을 설계해주신 체육 선생님
김운민 경장은 어촌의 환경에서 고3을 맞이했고, 공부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해 졸업 후 아버지를 따라 어업을 배워야겠다고 인생을 계획할 무렵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나를 잘 아는 체육선생님께서 진로를 상담해주셨는데, 나에게 너무 현실적이고 공감이 되는 인생 설계를 제시해 주셨다. 대략적인 설명으로는 내가 실행을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하셨는지 선생님은 자세한 인생 노선을 그려주셨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고 현실적인 직업의 경로를 대신 선택해주셨다."선생님께서는 김운민 경장에게 "너는 공부로는 늦었다. 운동신경이 좋으니 체대 입시로 4년제 대학을 가라!! 체대를 가서 ROTC를 지원해서 공군을 가면 헬기 조정수가 되거나 항공 정비사가 될 수 있다. 차선으로 관제기술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데 네가 4년제 대학을 못 가면, 전문대를 가서 생활체육에 관련된 자격증을 최대한 많이 취득해라!! 코치나 강사가 될 수 있는 기술적 요건을 만들어 놓고 군대는 특수부대를 지원해라!! 육군에는 707 특임대, 해병대는 특수수색대, 해군에는 SSU와 UDT등에 지원해 특수부대를 가야 한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버텨서 전역을 하게 되면 소방, 경찰, 해양경찰을 갈 수 있는 입직 경로가 생긴다. 너는 무조건 특수부대를 나와서 특채로 공무원 직업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김운민 경장은 이 설계가 내 인생의 맞춤 전략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도시에 대한 두려움을
수상 레저/스포츠로 극복하다
첫 번 째 경로 이탈 위기
선생님이 설계해 주신 인생의 루트를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지만, 체대 입시는 실기 성적도 중요한데 학교마다 다른 종목을 준비해야 하고 섬의 제한적인 교육환경과 내 실력으로는 4년제 대학은 무리였다고 생각한 김운민 경장은 결국 전문대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농어촌 특별 전형으로 지원했으나 정원이 적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전문대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후에 알아보니 일반 전형으로 지원했으면 더 수월하게 입학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못 선택한 지원 경로로 첫 단추부터 어긋날 뻔했지만 20살에 대학 입학과 함께 육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섬에서는 3층 이상의 건물을 보지 못했었는데 육지에 나와 처음 보는 높은 건물들과 도시 사람들에게 주눅이 들어 소외감도 느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김운민 경장은 섬에서 도시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모든 도시 사람들이 여름에는 서핑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노보드와 스키를 타며 누구나 다 레저/스포츠를 즐기며 멋지게 도시생활을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도시에 나와보니 소수의 사람들만 즐기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김운 민 경장은 섬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수영과 수상 레저/스포츠에 자신이 있었고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혁이라고 생각했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수영장에서 보내면서 수영, 스킨스쿠버, 생활체육 지도자, 인명구조, 인명구조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서핑보드를 접하면서 빠져들게 되었고, 국내에 전문가가 없어 독학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연마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군에 지원하게 됩니다.
공부를 포기해서 선택한 군대에서
공부하는 법을 익히다
두 번째 경로 이탈 위기
김운민 경장은 섬에서 성장하며 해군이나 해병대를 자주 보아서 군대를 가면 당연하게 해군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2005년 7월에 해군 부사관을 지원하게 되었고 3개월 동안 부사관 교육 훈련을 받고 수료를 2주 앞두고 보직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특수부대를 지원하려고 보니 이게 무슨 일인지 김운민 경장이 지원한 기수에서는 UDT와 SSU를 뽑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특수부대는 따로 모병 기수가 있는데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가장 빨리 입대를 할 수 있는 기수로 입대를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제시해주신 1안이었던 4년제 대학에도 실패하고, 전문대는 전형을 잘 못 지원해 탈락할 뻔하였고 이번에는 군대를 잘 못된 기수에 지원해 길을 잘못 들었다 생각이 들 무렵 부사관 교육이 끝나버렸고 결국 보직을 선택하는 기로에서 '해군의 꽃은 갑판이다'생각하여 갑판을 지원했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려서 탈락하였고 그때 남은 선택권은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다음 기수에 다시 입대하여 같은 훈련을 받고 특수부대에 갈 것 인가, 바로 입대 가능한 보직인 사격통제 (함정에서 미사일과 포를 다룰 수 있는 직책)를 갈 것 인가 김운민 경장은 다시 같은 훈련을 처음부터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사격통제를 지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학창 시절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는 판단에 체대와 군대를 통한 공무원 특채를 목표로 입대를 하였는데, 사격통제 주특기 교육은 16주간 전자회로와 레이더, 전기등을 매일같이 공부하여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문학부에서 체대를 지원한 김운민 경장은 전자회로나 전기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매주 시험을 보고 일과 내내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잠자는 6시간 빼고는 계속 공부만 했야 했고 그 과정에서 후회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나는 공부를 포기해서 군에 지원했는데 잘못된 보직 선택 때문에 군에서 공부를 하게 되다니'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내가 언제 이렇게 공부를 해보겠나 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 인내심이 생기면서 나름의 방법과 자세를 터득하게 되었고, 그렇게 8년간 사격 통제사로 복무를 하였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있다
길을 찾아 목적지로
김운민 경장은 해군을 전역하고 해양경찰 특채로 지원 가능 시기가 되었고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채는 공무원 시험과 체력검정을 통해 해양경찰이 되는데 김운민 경장이 지원한 특채는 군인 출신들이 경력을 인정받아 해양경찰이 되는 케이스입니다. 특채의 특징은 다른 사람보다 군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사회와 단절되는 기간이 길 수 있지만, 20대 시절에 직장인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군생활을 할 수 있기에 경제적 부담이 적었다고 합니다. 같이 해양경찰이 된 동기는 노량진과 학원가를 전전하며 4년간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속에서 낙방을 거듭하며 해양경찰이 되었지만 김운민 경장은 군인 월급을 받으며 혼자의 힘으로 좋아하는 수상 레저/스포츠도 즐기면서 해양경찰이 되었습니다. 군대의 경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동기는 3호봉에서 시작하지만 김운민 경장은 9호봉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같은 순경 계급으로 시작하지만 호봉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급여 차이가 발생합니다. 해양경찰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중간중간에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선생님이 알려준 루트와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생겼지만 포기하지 않았더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고 합니다. 공무원과 해양경찰이 꿈인 친구들에게 김운민 경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처럼 학창 시절에 공부에 소질이 없거나,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들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섬에서 시작한 저도 경찰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듯이 여러분도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찾기 어려웠을 뿐입니다. 지름길로 오지는 못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마세요."
꼭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해양경찰의 사명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해양경찰이 담당해야 하는 구역이 넓다 보니 사건이 터졌을 때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경비구역에서 사건 구역까지 30분~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한적인 인원과 장비의 부족으로 모든 해역을 커버하기는 어렵지만 최선의 대응을 위해 모든 해양경찰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상 어디선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당부해드리고 싶은 말씀을 하나입니다.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 꼭 버텨주세요!!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꼭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
항상 믿고 기다려줘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해양경찰이라는 직업과 남편으로의 역할
김운민 경장은 해군 시절부터 연애하면서 위기라고 생각한 적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근무하고 출동을 하다 보니 핸드폰 사용이 제한적이어서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와이프에게 항상 미안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평도 포격 상황 때 동원이 되어서 출동을 하였는데, 그 날 데이트 약속이 있었습니다. 2주 동안에 아무 연락해주지 못했고, 상황 종료 후 미안한 마음으로 와이프를 만났는데 와이프가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너무 힘들었지"라고 먼저 말해주는 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해군도 8년 정도 복무를 했고, 해양경찰로 근무하는 지금도 함정 근무를 하기 때문에 근무를 나가면 1주일 내내 볼 수가 없습니다. 여느 부부처럼 아침과 저녁을 함께 보내며 여가 시간도 항상 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근무기간 동안에는 얼굴도 못 보고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항상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모습의 와프에게 너무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 김운민 경장은 가정에 충실한 남편, 직장에서는 우수한 해양경찰을 목표로 계속 노력한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 해역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느 사람이 있다면 제가 되고 싶고요. 누군가가 재산피해를 입었을 때, 피해를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해양 영토 경계선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우리 어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 고향을 지킨다는 의미와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