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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Aug 05. 2019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다산북스

 사내 책 읽는 모임인 스프린터에서는 달마다 함께 읽을 도서를 한 권 정한다. 그리고 매 달 한 번 이른 아침에 모여 생각을 공유한다. 7월의 책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이었다. 철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최근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매대에 올려져 있던 책이라 내용이 무척 궁금했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왜 대중에게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기획적인 관점으로 생각을 정리해본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다산북스

 이 책은 철학 입문서다. 한 주제를 가지고 이론과 연구를 깊이 있게 다루는 책이 아니라, 학문 카테고리 안의 수많은 학자들의 철학과 사상들을 얕고 넓게 펼쳐 놓는 형식의 책이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엮어야 하기 때문에 구성에서 많은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저자는 대부분의 입문서처럼 서사의 흐름으로 내용을 구성하지 않고 철학자들의 다양한 개념들을 사람, 조직, 사회, 사고 4가지로 나누어 목차를 구성했다. 나열된 목차만 보더라도 주제와 개념을 연관 짓는 방식이 흥미롭고, 각 글의 전개와 수사가 기대된다.



제1장 사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01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프리드리히 니체_르상티망)
 02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칼 구스타프 융_페르소나)
 03 성과급으로 혁신을 유도할 수 있을까?(에드워드 데시_예고된 대가) 
 04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_수사학) 
 05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장 칼뱅_예정설)
 06 타고난 능력이란 없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존 로크_타불라 라사)
 07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에리히 프롬_자유로부터의 도피)
 08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_대가)
 09 인생을 예술 작품으로 대한다면 (장 폴 사르트르_앙가주망)
 10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_악의 평범성)
 11 자기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넓지 않다 (에이브러햄 매슬로_자기실현적 인간)
 12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꺼이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 (레온 페스팅거_인지 부조화)
 13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다(스탠리 밀그램_권위에의 복종)
 14 언제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_몰입)

 제2장 조직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조직은 바뀌지 않는가?’

 15 뛰어난 리더의 조건 (니콜로 마키아벨리_마키아벨리즘)
 16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존 스튜어트 밀_악마의 대변인)
 17 붕괴된 가족과 공동체의 새로운 대안 (페르디난트 퇴니에스_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18 변화는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쿠르트 레빈_변화 과정) 
 19 권위를 만드는 세 가지 요소 (막스 베버_카리스마)
 20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만 하는 이유 (에마뉘엘 레비나스_타자의 얼굴)
 21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진다 (로버트 킹 머튼_마태 효과)
 22 협조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존 내시_내시 균형)
 23 왜 기장이 조종할 때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을까?(헤이르트 호프스테드_권력 격차)
 24 안정이 계속될수록 축적되는 리스크(나심 니콜라스 탈레브_반反취약성)

 제3장 사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5 시스템은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가 (카를 마르크스_소외)
 26 독재에 의한 질서 vs. 자유가 있는 무질서 (토머스 홉스_리바이어던)
 27 구글은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수 있을까? (장 자크 루소_일반의지)
 28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애덤 스미스_보이지 않는 손)
 29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찰스 다윈_자연도태)
 30 업무 방식의 개혁 앞에 놓인 무서운 미래 (에밀 뒤르켐_아노미)
 31 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관계 (마르셀 모스_증여)
 32 성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시몬 드 보부아르_제2의 성)
 33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한다 (질 들뢰즈_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34 공평한 사회일수록 차별에 의한 상처가 깊다 (세르주 모스코비치_격차)
 35 감시당하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 (미셀 푸코_파놉티콘)
 36 사람들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돈을 쓴다 (장 보드리야르_차이적 소비)
 37 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 (멜빈 러너_공정한 세상 가설)

 제4장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38 ‘결국 이런 뜻이죠?’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 (소크라테스_무지의 지)
 39 이상은 이상일 뿐,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지어다 (플라톤_이데아)
 40 오해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_이돌라)
 41 생각은 아웃소싱할 수 없다 (르네 데카르트_코기토)
 42 진보는 나선형 발전으로 이루어진다 (게오르크 헤겔_변증법) 
 43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 (페르디낭 드 소쉬르_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44 때로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에드문트 후설_에포케)
 45 과학적인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칼 포퍼_반증 가능성) 
 46 에디슨은 축음기를 유언장의 대체품으로 발명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_브리콜라주)
 47 조급해하지 마라, 세상은 그렇게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토머스 쿤_패러다임 전환)
 48 이분법을 넘어서라 (자크 데리다_탈구축)
 49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앨런 케이_미래예측)
 50 사람은 뇌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생각한다 (안토니오 다마지오_신체적 표지)

 50개의 에피소드를 4가지의 카테고리로 큐레이션한 작가의 노력은 과잉 정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유효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입문서치고는) 글 속에 저자 개인의 경험과 시의적인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되어 철학서적 보다 실용서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이렇게 철학자들을 분류할 수도 있구나'라며 저자의 방식에 동조하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도 머릿속에서 철학의 개념들을 나열하고 재배열한다. 그 과정 중에 발생하는 재구조화가 철학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다. 수험생 시절, 일련의 기준대로 정렬하여 '달달달' 단순 암기하던 많은 사상가들과 그들의 키워드들이 십 수년 후 정돈되기 시작한다. 그래. 그 유명한 소 잃고 뇌 약간 고치는 격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철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 철학자들의 사유의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의의를 강조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교훈을 도출한다. 마키아밸리가 <군주론>을 왜 썼는지에 더 많은 글을 할애한다. 콘텐츠보다 콘텍스트에 더 비중을 둔다. 그래서 많은 호응을 얻지 않나 생각한다. '입문서'라는 목적에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와 같은 철학 하수들에게는 개념 원리나 수학의 정석인 셈이다. 처음 실력을 닦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철학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 때부터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말고 나중에 읽어볼 걸 하는 후회다. 왜냐하면 철학은 어젠다를 만드는 행위인데, 그에 반해 이 책은 누군가의 생각의 답안을 모아놓은 참고서이지, 결코 철학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유의 범위를 침해하고 철학하는 행위를 제한한다. 반드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철학 서적을 미리 탐독한 사람만 책의 제목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시 집을 읽기 전 평론가의 해설서만 탐닉하는 꼴이지 않을까. (안 읽는 것보다 좋으려나?) 이렇게 글을 마치고 싶은데, 이러면 무지에 대한 푸념뿐만 안될 것 같아, 책 한 권을 추가하여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프랑스 부모는-..>나카지마 사오리/예담

 <프랑스 부모는 아이에게 철학을 선물한다> 라는 책이다. 프랑스 사람과 결혼해서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본인 여성의 에세이 글이다. 우리의 수학능력시험처럼 프랑스에서도 고등학생이 학교를 졸업할 때 반드시 치러야 하는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라는 시험이 있는데, 저자의 자녀들이 바칼로레아를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매년 6월 중순 철학 과목부터 바칼로레아가 시작된다. 아래는 철학 시험 문제의 예시다 . 

"자유에는 그 어떤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가?"
"불가능을 바라는 것은 부조리한 일인가?"

 대체 왜 프랑스는 자국민들에게 평생의 한 번은 이런 문제를 필사적으로 고민하게 만들까? 중등 교육을 마치는 학생들이 왜 이 질문에 답을 왜 해야 할까? 문제의 답안 작성은 고민이 되겠지만, 문제를 푸는 이유는 단순하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앞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 시험은 그동안 생각하는 힘을 얼마나 길렀는지에 대한 측정의 시간이다.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이야기를 살펴볼수록 현재 우리나라의 진로 교육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경우, 평가하는 시험은 따로 없지만 진로 교과 시간 동안 학생들은 스스로에 대해 사색할 수 있고 동시에 사회에 대해서 탐색할 수 있도록 시간과 교육을 제공받는다. 이와 같은 철학적인 과정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역량을 갖춘다. 학생, 교사, 학부모 대상으로 진로교육 강의를 주로 하는 내 강의안에 철학자들의 이론과 사상들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문송'한 요즘

 간혹 철학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냉대를 받지만 사실 이렇게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이다. 

철학은 이렇게 삶의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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